[김영호 칼럼] 미스터 카이 국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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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미스터 카이 국수집
  • 승인 2017.06.0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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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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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면 이미 여행을 했던 한국 사람들의 여행 후기를 많이 보게 된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찾아간 명소와 맛집들은 기대를 저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요새는 한국 여행객들의 블로그나 후기는 신뢰도를 많이 잃었다는 것이 오래된 여행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대신 트립어드바이저라는 어플의 외국인 여행객들의 후기를 많이 본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쓴 후기이므로 비교적 믿을만한 신뢰도를 가진다. 그러다가 더 오래 살게 되면 그냥 동네 주변의 평범한 밥집, 가격 저렴하고 가기 편한 곳들을 찾는다. 그렇게 지나다가 우연히 들른 국수집에서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특별함이 있어 별 것 아닌 식당 이야기지만 함께 나누고자 한다. 

위치는 대로변이지만 인도가 좁아 사람들의 통행이 많지 않은 길가의 국수집. 내부는 넓지만 대부분의 국수집이 그렇듯 에어컨 시설은 없다. 그리고 태국의 이런 식당들은 대부분 파리와 모기가 식사시간을 괴롭히기 일쑤라 외국인들에게는 꽤 불편한 곳이기도 하다. 숙소 근처라 우연히 들른 태국식 국수집 사장님은 50대 중반정도 되어 보였고 뿔테안경을 끼고 두건을 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장님은 모든 손님에게 태국식 합장(合掌)을 하며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힘찬 ‘사왓디 캅’ 목소리는 맛없는 식당에 들어온 건 아닐까 하는 작은 두려움을 안심시켜주고도 남을 모습이었다.

가게 직원들은 모두 미소를 띄고 있었고 손님을 존중하고 배려해준다는 느낌이 말과 태도에서 배어나왔다. 한 끼 70밧(2500원 내외) 국수집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허름한 외부 개방형 식당이지만 모든 테이블이 깨끗했다. 그리고 수저를 내어주는데 대부분의 식당처럼 수저통에서 꺼내 먹는 것이 아니라 수저와 포크까지 비닐에 포장된 상태로 손님 수만큼 내어주었다. 
 

◇태국의 미스터 카이 국수집.


미스터 카이 누들이라는 식당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수를 잘 한다니 태국 북부식 카레 국수 카오쏘이를 시켰다. 국수를 먹어보니 진짜 잘한다. 맛있다. 게다가 같이 시킨 주스는 사장님이 식당의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면서 직접 갈아주는데 가격도 외부 노점과 비슷한데 맛있고 깨끗하게 내어준다. 음식을 먹는데 문득 이상한 점이 느껴진다. 다른 식당에서 그렇게 많던 파리 모기가 없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테이블 밑에 모기향이 피워져 있다. 

그런데 그 연기가 손님 쪽으로 올라오지 않도록 나무로 가림막을 해두었다. 모기향을 손님이 없는 테이블에서도 하루 종일 태우고 있었다. 그 덕에 파리, 모기 없이 편안하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아들이 화장실을 가자고 해서 태국의 저렴한 로컬식당들은 청결도가 썩 좋지 않아 걱정했는데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청결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충분히 느껴졌다. 우리 가족이 식사를 하는 동안 쏟아진 국지성 폭우로 식당 앞에 세워둔 손님들의 오토바이가 비에 흠뻑 젖었다. 그런데 먼저 계산을 하고 나가는 손님의 오토바이 안장 부분을 직원이 나가서 마른 수건으로 닦아주며 미소로 인사하는 것을 보며 또 한 번 감탄을 한다.

우리도 계산을 하고 나가는데 식당 이름이 담긴 작은 열쇠고리를 준다. 또 다시 이곳을 기억해달라는 메시지인 듯하다. 이곳 사장님의 장사 이력과 내공이 보통이 아님을 느낀다. 나갈 때도 사장님은 합장하며 인사를 했다. 사장님의 에너지를 담고 싶어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아! 잘 먹었다. 이곳에 다시 오고 싶다’ 는 생각이 든다. 

위에 소개한 점들은 한의원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만한 요소들이다. 그런데 그 어떤 것보다 이 식당에서 느낀 가장 큰 것은 <사장님의 에너지>였다. 입구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활기찬 에너지, 식당을 기억해달라는 특별한 복장과 모습, 직접 주스를 갈아내면서 직원들의 응대를 관리하고 있는 모습들이 손님 입장에서는 굉장한 에너지로 느껴졌다. 

식당을 위해 사장님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이 팍팍 느껴졌다. 손님들과 눈이 마주칠 때는 바로 웃는 표정으로 아이 컨택을 하는 모습도 보통 정성이 아니다. 

사장님이 식당을 완벽히 컨트롤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손님들은 그 에너지를 느끼고 다시 찾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환자나 식당을 찾는 손님이나 그곳을 다시 찾고 싶은 이유는 평균 이상의 실력만 된다면 그 다음은 오너(대표자)의 에너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된다. 조금만 궤도에 오르면 오너는 직원들에게 맡기고 쉬고 싶게 마련이다. 그런데 밖에서 손님들과 직접 만나고 활기찬 에너지와 웃는 얼굴을 잠시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오너가 되어보면 누구나 알게 된다. 

미스터 카이 국수집의 사장님! 이 분이 식당을 운영하는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며 맛있는 카오쏘이 한 그릇을 비웠다. 나를 찾는 환자들에게 과연 이런 에너지를 느끼게 해주었던가 반성도 해본다. 평범한 동네 국수집이지만 이곳에서 느낀 미스터 카이의 에너지가 동료 원장님들에게도 전달되었으면 한다. 이런 에너지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지구 어디에서, 무엇을 해도, 밥을 먹고 살 수 있음은 분명하다. 원장실에서 인터넷을 하던 시간이 머리를 서늘하게 스쳐가던 국수집에서의 시간이었다. 


김 영 호
부산광역시한의사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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