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780> - 『攷事新書鈔』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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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780> - 『攷事新書鈔』➁
  • 승인 2017.06.1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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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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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절 지참했던 미래의약 자산

 

  지난 주 이 책의 본문 내용 가운데 주목할 만한 부분으로 권미에 수록된 通信使行員額, 倭使接待儀 등 사행에 관한 내용들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통신사절단 일행에는 정사, 부사, 서장관으로 이루어진 三使를 중심으로 무려 300~400명에 이르는 인원이 파견되었다. 그 중에는 의약사무를 담당하는 의관도 반드시 참여하였는데, 良醫 1인과 醫官 2인이 동행하였다. 현재 전해지는 朝鮮通信使 행렬도에서도 이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당시 의관들의 복색이나 위상 등 의약외적인 사정도 확인해 볼 수 있어 아주 흥미로운 소재가 되고 있다. 
 

◇ 『고사신서초』

아울러 이들이 지참하였던 약재와 납약, 의서류 또한 사행원들의 필수 지참 품목이자 경비 일부를 조달하는데 쓰이는 중요한 교역품이며, 문화 교류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약재는 물론 인삼을 필두로 우황, 사향 등이 첫손 꼽혔으며, 납약으로 우황청심원이나 소합향원 같은 제조약류들이 인기품목이었다고 전해진다. 
 
 의서로는 『동의보감』이나 『의림촬요』같은 책들은 진즉 일본 사신들이 찾아와 여러 차례 애걸하여 구해갔으며, 『침구경험방』, 『무원록』 등 몇 가지 조선의서들은 일본에서 다시 간행하여 인기를 끌 정도로 수요가 많았다. 또 조선판 『경사증류대관본초』, 『외과정요』, 『어약원방』, 『부인대전양방』등이 일본에서 거듭 번각하여 유통되었으며, 『만병회춘』이나 『의학정전』, 『의학입문』등도 모두 조선판을 모본으로 삼아 간행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기억할 만한 사실은 무엇보다도 임진왜란 중에 약탈해 간 『의방유취』260여권을 목활자로 중간하여 펴낸 일일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중국에서도 이미 오래전에 산일되어 이름만 남고 실물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많은 수의 고전적이 세상에서 다시 빛을 볼 수 있었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역사의 아픔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의학발전을 위해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가오는 6월 9일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제6회 고문헌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一山 金斗鍾(1896~1988)박사 서거 30주년이 되는 해이라서 이를 맞이하여 기념 고문헌 학술행사를 갖기로 하였다고 한다. 이에 필자에게 1970년 동 도서관에 기증된 일산문고본 총186종 628책 가운데 의서류 전적에 관한 논고 집필과 발표가 의뢰되었다. 때문에 이를 계기로 일산문고목록과 의서류 해제를 대조하여 검토하고 실물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평소 간과하였던 적지 않은 지견을 얻을 수가 있었다. 
 
 일산문고 의서류 가운데에는 오늘 우리가 관심을 갖고 탐구하는 이 책 『고사신서』도 1종 들어 있었기에 더욱 관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차제에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일산문고본 『고사신서』의 간략서지를 살펴보니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청구기호 一山古 031-24, 攷事新書, 徐命膺 編, 금속활자본, 영조47년(1771), 전7책. 위의 금속활자는 芸閣印書體字라고 기록되어 있는 데, 이는 별칭이고 이 활자의 정식명칭은 교서관인서체자이다. 숙종 때 校書館에서 만들었기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으며, 明體를 자본으로 하여 주조하였으므로 ‘唐字’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필자가 국립중앙도서관을 직접 방문하여 조사해 보니 일산문고본은 전7책으로 결권이 없는 완질본이며, 두툼한 표지에 견실한 책지를 사용하여 상태가 비교적 온전하였고 인쇄상태 또한 매우 미려하고 명료하였다. 우리에게 남겨진 고마운 의약문화유산이자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지적자산이 담겨져 있는 소중한 고의서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 상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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