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통해 본 문화 이야기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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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통해 본 문화 이야기II
  • 승인 2003.12.1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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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과거’가 들어있는 유기체


지난주엔 이산가족 상봉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명절 때를 제외하고서는 도통 이야기 나누지 못했던 형님이 입시 문제로 출장을 오신 덕택입니다. 술·담배를 즐기는 저와 달리 워낙에 속칭 ‘바른 생활 사나이’인지라 좋아하면서도 가까이 하기 힘들었는데(?), 최근에는 사회생활에 따른 관록 탓인지 맥주 두어 잔 함께 할 수 있는 술친구로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바뀌셨답니다. 아무튼 근 1년만에 만나 그간의 회포를 풀었는데, 저는 덤으로 이번 주에 소개할 책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시간나면 책보고 거닐며 이 생각 저 생각하는 등 ‘혼자 놀기’의 진수를 터득한 형님이 그새를 못 참고 또 책을 여러 권 구입하셨기 때문입니다.

‘언어학’을 전공한 형님이 고른 책들 중 재미있을 것 같아 제가 강탈(?!)한 것은 김동섭 교수님이 지은 ‘언어를 통해 본 문화 이야기Ⅱ’였습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세계 각지의 여러 언어와 그들 문화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것인데, 저자는 언어가 문화의 단편을 보여주는 종속물이 아니라 한 집단의 역사관·세계관·종교관 등의 모든 것이 녹아 있는, 즉 살아온 과거가 송두리째 들어있는 유기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물론 김교수님이 제시한 방법을 따라간다면, 곧 ‘언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세계 각 민족·국가의 생활 양식, 사고 체계, 유형·무형의 문화 형태 등을 본다면, 누구도 언어가 생명이 있는 유기체임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책은 크게 10장으로 구분되어 있고 모두 유익한 내용이지만, 우리 같은 한의사들이 더욱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는 부분은 1장부터 3장까지일 것 같습니다. 저는 특히 미국의 언어학자 사피어(Sapir)의 주장 - “언어는 인간이 상징 기호를 사용하여 자신의 생각, 감정, 욕구를 의도적으로 전달하는 의지적 수단이다”, “우리들의 사고 과정이나 경험 양식은 언어에 의존하고 있으며, 언어가 다르면 그에 대응해서 사고와 경험이 달라질 수 있다”, “개별 언어의 상이성이 사고방식과 문화의 상이성을 초래한다” - 에 많은 공감을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좌우와 동서남북 등을 뜻하는 여러 나라의 말을 어원적으로 접근한 예들을 보며 우리 한의학의 陰陽·左右·陽生陰長 등의 의미를 떠올려 볼 수도 있었습니다.

서양의학의 인체관에 따른 부작용들이 속속 드러나는 까닭에 이를 보완하려는 움직임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통합의학 운운하며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취하려는 취지는 십분 이해되지만, 죠셉 니담(Joseph Needham)같은 대학자가 주도할지라도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피어가 언급한대로 너무나도 다른 언어를 사용한 탓에 너무나도 다른 사고체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방법이 없진 않습니다. 언어란 누가 뭐라 해도 인간들이 구사하는 의사소통의 도구이므로, 바로 우리들이 나서서 우리 언어(한의학 용어)를 보편화시키는 것입니다. 木火土金水·風寒暑濕燥火 등의 우리 언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의기투합을 한 만큼 한의학 전도사의 분발과 기여를 기대합니다.

안 세 영(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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