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 낯선 것에 대한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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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낯선 것에 대한 기다림
  • 승인 2017.05.26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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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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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 호
부산광역시한의사회
홍보이사

안식년을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와중에 외국 도시에서 한 달간 살아보기를 시작했다. 늘 마음속 휴식처로 자리 잡고 있는 태국의 치앙마이가 그 첫 여정이다. 이번에는 익숙한 동네를 떠나 완전히 새로운 곳에 한 달 숙소를 잡았다. 그런데 한 달 월세와 보증금까지 모두 계산하고 나온 후 이 동네에 대한 첫 느낌은 내가 바라던 휴식의 조건과는 많이 달랐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 불편한 도로와 매연, 여러 가지로 복잡하고 어수선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주변을 둘러보는데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계약을 파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가 ‘새로운 곳에서도 한 번 살아보자’ ‘늘 익숙한 그 동네는 택시타고 가면 되지’ 라는 몇 가지 타협 방안이 떠오른 후에 하루가 지났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이 되니 이곳이 꽤 괜찮은 숙소 같은 이유가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점은 하나 둘 늘어나서 이곳이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생각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내가 낯선 것들에 대해 생각보다 더 민감하구나!’ 싶다. 늘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성향 때문에 낯선 환경의 나쁜 점들만 부각되어 보였던 것이다. 

낯선 것이 불편한 사람이 많다. 그런데 낯선 불편함에 가려서 좋은 점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기다림이다. 기다리다보면 낯선 환경에서 오는 경고나 신호가 실제보다 크게 증폭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런 감정들이 Level Down 되면서 진짜가 눈에 들어온다.

감정이라는 것이 이렇다. 때로는 전부인 것 같다가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감정에 얼마나 많이 휘둘리고, 때로는 압도당하며 사는지. 특히나 낯선 사람이나 낯선 환경에 처했을 때 느끼는 불편한 감정은 더욱 그렇다. 내가 살아온 역사를 근거로 감정은 순간적인 반응을 한다. 그러다보니 가끔 오작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위험하다고 했다가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는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합리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런 과정이 불편한 경우도  종종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첫 만남에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누구나 있다. 이런 첫 느낌 때문에 좋은 인연으로 발전하지 못하기도 한다. 물론 첫 인상이 중요하지만 이런 불편함과 낯선 감정 때문에 진면목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앞서 소개한 경우처럼 조금 기다려보면 정확한 답이 나온다. 세상에 처음부터 완벽히 좋은 것들은 많지 않다.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괜찮은 것들이 훨씬 많은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익숙해지면서 천천히 진짜 모습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민감한 사람들은 낯선 상황에 처했을 때,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아주 빨리 만들어내기도 한다. 새롭고 낯선 것을 실제 모습보다 나쁘게 해석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기회를 놓친다. 나 역시도 그동안 많이 그랬던 것 같고, 누구나 그런 경험이 꽤 있을 것이다.

기다려야겠다. 불편한 마음이 훅 자리를 잡더라도 조금 더 기다려야겠다. 그리고 애써 좋은 점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낯설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우리는 과거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얻어가는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곳에 던져진, 어쩌면 그 환경이 불편할 수도 있는 모든 평범한 우리들. 조금만 기다리면, 어느새 이곳이 혹은 이 사람이 최고의 선택이라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SNS 어딘가에서 ‘우리를 발전시키는 것은 확신을 가진 추진력이 아니라, 모호함을 견딜 수 있는 자제력’ 이라는 글귀를 본적이 있다. 이 글귀를 갈무리한 뒤 문득,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도 불확실한 상황을 견디는 힘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나는 아직 멀었다. 이런 모호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매우 견디기 힘들어 한다. 그런데 존경하는 어른들을 보면 이런 불편하고 모호한 상황을 묵묵히 견디고 살아오셨다. 먼 타국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또 다른 요소를 하나 발견한다.

낯선 환경과 낯선 감정의 그 모호한 상태를 참고 견디다보면 우리는 아름다운 진실과 만나게 될 것이다. 비록 그 끝이 아름다운 장면이 아니라하더라도 괜찮다. 그 과정을 견딘 우리는 이미 익어가고 있다. 모호한 불편함을 의연히 바라보게 되는 그날이 오면 씩 웃으며 2017년 5월 치앙마이에서 쓴 이 글이 생각날 것 같다. 


김영호 / 부산광역시한의사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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