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담론을 소비한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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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는 담론을 소비한다①
  • 승인 2017.05.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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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범

정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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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정희범 원장의 ‘한약인프라 토론회’ 후기
정 희 범
한의사

건강하고, 뭔가 도움이 될 것 같고, 먹어도 부작용은 없고, 상대적으로 안전하며, 내 가족의 건강이 흔들려 보인다면’ 20년전쯤 지나가는 행인을 잡고 위의 문장으로 스피드 퀴즈를 냈다면, '한약'이란 대답을 제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2017년 지금, 같은 질문에 대중은 무엇이라 대답할까요? 

만약 대답이 바뀌었다면 우리는 대체당한 것입니다. 기존 담론의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최근까지 많은 분석이 있었습니다. '마케팅의 문제다, 자본의 문제다, 안전성의 문제다, 누군가의 조직적인 비방의 문제다, 규모의 문제다' 등등. 저는 제시된 수 많은 문제 원인 중 한약 안전성, 유효성의 발전을 도모하는 '한의학의 미래를 위한 한약 공공인프라 사업 토론회'에 다녀왔습니다. 

이번에 정부에서 한의계 공공인프라 구축 사업비로 300억을 출자하였습니다. 3개의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고, 그 중 100억이 부산대 한방병원의 원외탕전원(한약표준조제센터) 설립에 투자됩니다. 

부산대 한방병원은 이번 사업에서 ‘한약 탕전의 표준 조제 공정’을 만들려는 시도를 합니다. '세척 - 보관 - 제형 - 탕전 - 조제 - 멸균 - 수처리 - 포장' 등 QC(Quality control, 품질관리) 관련하여 많은 시도를 할 것이라고 발표하였고, 일단 HACCP 인증, 한약-한약제 이력추적 시스템 구축 등이 1차적인 미션이었습니다. 이는 지금 한의계에 계속 재기 되고 있는 탕약 생산과정에 대한 의구심을 해결하려는 좋은 시도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업형이 원외탕전이고, 실제로 원외탕전사업이 일반 한의사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토론 현장에서는 조금 논란이 있었습니다. 질문은 2가지 정도로 축약되었는데, 부산대에는 "결국은 부산대가 원외탕전원 수익 사업 하려는 거 아니요?", 복지부에는 "한의원 원내탕전을 금지하려는 전초단계 아닙니까?"라는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반대하시는 분들의 의견을 정리해보면 "조제 공정 표준화 좋지만, 기존 한의사의 이익을 침해한다면 반대한다" 였습니다. 이에 대해 부산대 한방병원 신병철 원장님은 “공공사업이고, 수익사업이 아니다” 말씀하셨고, 복지부 사무관님은 “원내탕전 금지할 계획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산대 한방병원의 사업이 성공하면 ‘한약표준조제센터에서 생산된 한약, HACCP 인증 한약’을 광고하는 한의원들은 많아질 것이고, 아마 사람들은 대부분 거기서 만들어지는 한약을 신뢰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자본금 100억원으로 시작한 원외탕전원(한약표준조제센터)의 한약 퀄리티에, 크게는 몇 십억, 작게는 10억 이하 자본을 기초로 하는 기존 사설 원외탕전원들은 밀려나는 모양새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부산대 원외탕전원이 높여놓은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앞으로 원외탕전 시장에 들어올 업체들은 더 많은 자본금을 들고 시장에 들어와야 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즉 부산대 원외탕전원이, 기존 그리고 앞으로 세워질 원외탕전원들의 설립기준이 될 가능성은 높아 보입니다. 그리고 원내탕전 금지는 복지부에서 굳이 계획하지 않더라도 자연 도태되어 갈 것 같습니다. 

부산대에서는 하루 365재를 예상 조제량으로 설정하였습니다. 이것이 사업 설득력을 위해 가공된 숫자라고 첨언 하셨지만, 현실화 되면 부산-울산-경남 지역 하루 수요의 30%에 달합니다. 당연히 이 수치는 기존 원외탕전 업체와 원내탕전으로 이익을 보고있는 한의사들에게는 위협이 됩니다. ‘공공인프라라면 한의사들 누구나 사용해서 이득을 봐야하는 것인데, 왜 기존 사업자가 피해를 보는 형태로 공공사업이 진행되야 하는 것인가?’ 필연적인 질문이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에 대한 부산대 한방병원 신병철 병원장님의 답변이 아쉬웠습니다. “공공사업이고, 수익내려고 하는게 아니다.”, “탕약 표준조제공정을 만든다”란 말씀은 부족한 답변이었습니다. 대다수의 일반 한의사 입장에서 풀이된, ‘이 사업이 나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답변이 구체적으로 준비됐어야 합니다. 

로컬에 있는 한의사들은 '결국 부산대 원외탕전원이 100억을 기초로 하여 성공했을 때 우리에게 이익을 줄까, 아니면 우리의 이익을 깎아먹을까. 만약 기존의 이득을 깎는다면, 향후 어떤 이익을 쥐어 줄 수 있는가.'를 궁금해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사업은 기존 한의사들이 처방하는 한약 조제 물량을 부산대에 보내줘야 성공할 수 있는 형태입니다. 그렇기에 개인 한의사들이 이번 공공사업에서 어떤 이득을 가져갈 수 있는지, 정확한 설명이 준비됐어야 합니다. 사설 업체들이야 원래 이익만을 목적으로 해도 무방한 곳이니 괜찮지만, 공공성 목적의 수행을 이야기했고 한의계를 대표하여 100억을 투자받았다면, 좀 더 준비된 답변을 기대하는 게 당연합니다. 경험담에 의거한 설명을 곁들이긴 하셨지만 의문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였고, 부족한 답변은 이 날 토론회를 청문회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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