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내면의 타고난 색깔 잃지 않는 한의사가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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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내면의 타고난 색깔 잃지 않는 한의사가 되고 싶어”
  • 승인 2017.03.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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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예진 기자

전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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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부산시한의사회 홍보이사 김영호 한의사

“자기 내면의 타고난 색깔 잃지 않는 한의사가 되고 싶어”
소명과 신명 찾고자 안식년 맞아…외국 강좌 수강 및 출판 계획

[민족의학신문=전예진 기자] “인생에서 나를 끝까지 완주하게 하는 소명과 신명 찾기. 이게 올 한 해 목표인 것 같아요.” 부산 공감한의원 원장이자 부산시한의사회 홍보이사인 김영호(38) 한의사가 8년여 간의 개원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듣기에도 생소한 ‘안식년’을 갖는다는 소식에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만나자마자 김 원장은 ‘소명’과 ‘신명’이라는 두 단어에 대해 자신만의 정의를 내렸다. ‘소명’은 하늘이 부여한 명령, ‘신명’은 영혼과 정신이 어둡다가 밝아지는 것이란다. 이 두 가지를 찾기 위해 과감한 선택을 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최근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잠시’ 마무리 했다.
남들처럼 군복무가 끝나고 나면 당연히 개원하는 건줄 알고 한의원을 열었다. 뚜렷한 소명의식이 없이,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한 것. 물론 개원준비는 굉장히 오래 했다. 3년 동안 각종 디자인 전시회만 30번 넘게 다니고 전국에 있는 인테리어 박람회도 여러 곳 가봤다. 동선뿐만 아니라 모든 디자인을 직접 할 만큼 열심히 꾸몄다. 한의원도 운영이 안됐다면 거짓말이고, 먹고 살만큼 됐는데 임상 생활을 하면서 5~6년간 신경성 질환이 있었던 데다가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때 즐겁지가 않았다.

내가 이 업(業)을 아이들에게 똑같이 시킬 수 있을까 스스로 물음을 해보니 ‘아니’라는 답이 나왔다. 한의사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지금의 나에게 꼭 맞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맞는 게 아니라는 판단에 벗기로 결정했다. 직업은 옷이라는 생각이 든다. 잠시 벗어둘 수 있는 것 말이다.

과거 공중보건의 시절에는 주 5일 내내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출근을 했다. 업무 강도가 높은 편이었지만 아침마다 보건소에 가고 싶었다.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고 운동을 할 정도로 직원들과 친했고 사람들 속에서 어울려 지낼 수 있어 좋았는데 한의원은 혼자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다 보니 부담이 됐다. 아침이 기다려지지 않고 재미가 없는 삶이 그만 두게 된 원인이 아닌가 싶다.

▶안식년이라는 개념은 흔하지가 않다. 이유가 무엇이며 그 기간 동안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몸도 아팠지만 마음도 아팠다. 회복하는 시기라고 생각하려 한다. 안식년 동안 뭘 할까, 그저 시간만 보낼까 아니면 놀까 고민하다가 평상시에 못해본 일을 하고 싶었다. 바로 외국의 어느 도시에서 한 달 이상 살아보는 것이다. 한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외국에 유학을 가는 일이 거의 없다. 여행이 아니라 한 달 정도 머물러 보고 싶다. 외국에 나가보면 각 도시마다 외국인을 위한 강좌가 있는데 예를 들어 그 나라의 전통 요리, 어학, 스타트업 기업들을 위한 창의력 강좌 등이다. 기회가 된다면 수강해보고 싶다.

▶책 출판을 계획했다고. 어떤 책을 준비하고 있나.
출판을 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지만 올해 안에 성사되지 않아도 괜찮다. 오랫동안 스크랩을 해왔다. 스크랩 노트가 10권 정도 되는데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한의학 관련 기록으로 2001년도부터 지금까지 두꺼운 스프링 노트로 4권 정도 된다. 또 하나는 아들에게 주는 ‘인생 교훈’이라는 이름의 노트다. 지금 생각하는 것들, 옳은 삶, 멋지고 재미난 인생과 관련해 영감을 얻는 글을 전부 스크랩 하고 옆에 코멘트를 달아뒀다. 이 노트는 2008년부터 만들어왔는데 아들이 2012년생이다.(웃음) ‘언젠가 아들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미리 쓰게 됐다. 노트북이나 패드로 작성하는 워드 파일에는 생각을 하는 당시의 고유한 ‘냄새’가 없다. 직접 신문지를 오리고 풀칠을 하고 붙일 때 비로소 그때 느낀 감정과 비슷한 필체와 글귀가 남는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한의사라서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인데 대부분의 아빠들은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도 물리적인 시간이 없다. 아이들에게 아빠로서 갖고 있는 어떤 생각을 전해줄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없다. 그래서 이 스크랩 노트를 갖고 이 시대의 아빠들에게 좋은 책을 하나 만들어주고 싶다.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고 옆에는 빈 공간을 마련해 다른 아빠들이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직접 적을 수 있도록 구상중이다.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우리 또래의 아빠들이 아빠의 생각을 자녀에게 전해줄 수 있는, 세대를 잇는 그런 책이길 바란다. 이 책을 어느 출판사가 받아 줄지는 모르는 일이다. 일단은 기획을 해놓고 여러 출판사와 접촉을 해보려고 한다.

▶본지 외에도 칼럼은 여러 곳에 기재했다. 김영호에게 ‘글’이란.
국제신문은 3개월에 한 번, 부산일보는 부정기적으로 쓰고 있다. 부산일보는 주로 의료 관련된 칼럼을 부탁 받으면 쓰고 국제신문은 민족의학신문과 비슷한 성격의 글을 쓰고 있는데, 일상을 사는 분들한테 공감을 줄 수 있는 글을 위주로 2~3개월에 한 번씩 기재한다.

‘글’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사람들은 전부 자신의 고유 생각과 색깔을 갖고 태어나는데, 이를 표현하기에는 방법들이 너무 어렵다. 그림이나 음악은 배워야하고, 노래는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차이가 크다. 하지만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한의사 김영호는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감정, 생각이 남들보다 많은 편이다. 글을 통해 바깥으로 꺼내는 작업을 거쳐야만 소멸되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과 연결이 되고 더 나아가 공감이 형성될 때면 그로써 힘이 된다. 한 마디로 ‘글’은 나의 표현 창구이자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 통로, 이를 이루기 위한 가장 쉬운 도구다. 

▶부산시한의사회 홍보이사를 맡고 있다.
2008년부터 10년째 하고 있다. 아마도 지부 이사로는 오래 하고 있는 편이지 않나 싶다. 홍보이사를 하면서 네 번째 회장을 만났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제안이 들어와서 하게 됐는데 회장이 바뀌어도 계속 이어가게 됐다.

홍보이사로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은 한의계에 ‘공모전’을 도입한 것이다. 2008년부터 대학생 공모전을 시작해서 올해로 9회 째인데 이전에는 한의계 뿐만 아니라 의료계에 공모전이라는 개념이 흔치 않았다. 부산 지역 대학생들과 함께 공모전을 하다보면 작품도 작품이지만, 공모전을 통해 학생들이 한의학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니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홍보가 되는 셈이다. 결과가 9년째 누적되고 있다는 것도 큰 보람이다. 이것이 시초가 돼 중앙회나 서울 지부에서도 공모전을 시작했다는 데에 자긍심이 있다.

또 하나는 ‘슬로건’이다. 현재 한의계에서 쓰이고 있는 수많은 슬로건들 중에 내가 만든 것들이 여러 개 있다. ‘침·뜸은 한의사에게, 한약은 한의원에서’를 예로 들 수 있다. 최근에 만든 것은 ‘3·3·3’이라고 교통사고를 모토로 만들었는데 각 지부에서 반응이 좋은 편이다. ‘교통사고는 3일 이내에, 가벼운 사고는 3주까지 치료, 큰 사고는 3개월까지 꼭 치료 받으세요’라는 뜻인데 빨리 내원해 치료를 받으라는 것, 빨리 합의하지 말고 충분히 치료받으라는 것을 궁극적으로 말하고 있다. 내가 만든 홍보물로 인해 개별 한의원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때 뿌듯함을 느낀다.

▶‘사직동 시대를 마감했다’고 했는데.
‘사직동 시대를 마감했다’는 것은 그 동네에 다시 들어가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기존 한의원을 다른 원장님한테 양도 하고 왔기 때문이다. 다만 환자 차트를 그대로 갖고 왔기에, 비록 사직동을 떠나더라도 언젠가 다시 한의원을 할 듯하다. 스스로 소명이 무엇인지 찾고, 아침에 일어나는 게 신명나는 일이 됐을 때 몸과 마음이 회복될 것이라고 본다. 자신감이 생기고 에너지가 충만해지면 다시 시작하려 한다. 그렇지 않고 떠밀려서 하거나 안식년이 끝나도 회복이 되지 않았다면 개원을 서두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의원에 대한 미련은 남지 않는데 ‘나의 청춘, 30대가 여기서 다 지나갔구나’ 생각하니 애잔한 마음이 든다. 여기 있으면서 결혼도 하고 애 둘도 낳았는데 이제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오래 만난 연인과 헤어지는 느낌이었다.

▶어떤 한의사가 되고 싶은지.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 내면의 타고난 색깔들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한의사가 되고 싶다. 태어날 때는 총천연색으로, 무지갯빛보다 더 다양한 색을 지니고 태어나는데 나이가 들고나면 무채색이 되는 느낌이다. 여러 가지 색을 전부 섞으면 검정색이 되는 반면, 다양한 색의 빛을 섞으면 흰색이 되듯 오로지 물질만을 추구하는 인생의 마지막은 검정색이 되지만 자기 자신이 빛을 잃지 않고 있다면 색이 다 섞이더라도 여전히 빛으로 남을 수 있다. 스스로 빛을 잃지 않으면서도 내 인생에 만족하는 즐거운 한의사가 돼야한다고 생각하고 또 나를 마주하는 환자들도 분명 느낄 것이다. 

가능하다면 10년에 한 번씩은 안식년을 갖고 싶다. 올해 39살이니까 다음 안식년은 49살이라든지. 30대가 지나고 40대를 준비하고 40대를 마치고 나면 또 다른 50대를 준비하듯 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때, 안식년을 통해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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