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 (285) - 權英植의 醫案(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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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 (285) - 權英植의 醫案(4)
  • 김남일
  • 승인 2017.02.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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類中風案

내용) 1968년 1월 모일. 36세 여성 박○○. 체격이 富大하고 方字形의 顔面으로 골격도 壯大하고 살이 상당히 두텁고 얼굴 色은 검은 편. 하루 전에 식사 후 소화가 불량하더니 아침에 일어나 안면신경마비로 口眼喎斜가 되어서 鍼治療를 받으러 왔다고 하였다. 類中風으로 진단하고 또한 氣平血實人으로 진단하고 頰車地倉에 施鍼하고 患側 반대편의 合谷과 足臨泣에 鍼을 놓았더니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에 氣平血實人이 먹어야 할 太陰調胃湯과 牛黃淸心元을 주었다. 그러나 歸家한 후에 이 약을 복용한 후에 2시간이 지나서 다시 口眼喎斜가 더 심해졌고 寒氣가 나면서 심해졌고 오후 5시경 다시 한의원에 오게 되었다. 필자는 다시 地倉, 頰車와 曲池, 外關에 자침하니 舌卷, 囊縮이 되고 말았다. 類中風은 틀림없으나 氣虛血平人을 氣平血實人으로 誤診한 것이었다. 이에 환자의 膻中 一穴에 艾火 三球를 着肌施術하고서 問症하니 환자의 舌卷은 停止되고 言語는 如常하나 口眼喎斜는 如前하고 脚足部가 痲痺가 되었다고 호소한다. 그래서 中脘穴과 氣海血에 뜸 三球씩을 灸하고 問한 즉 다 평안하나 足趾末이 痺症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公孫穴 左右에 施灸 一壯씩하였다. 그래서 完全回復하였다. 牛黃淸心元은 回收하고 氣虛血平人에게 쓰는 藿香正氣散 5첩을 지어 주었다. 그래서 2∼3일 조리하고 그 후 한차례 膻中, 中脘, 氣海에 3壯씩 施灸하고 服藥하여 完全히 治療하여 주었다. (『醫林』제68호, 1968년 ‘類中風治驗例’)

按語) 權英植(1900∼?) 선생은 한의학 학술잡지인 『醫林』에 수많은 한의학 관련 논문을 게재하여 학술적 논쟁을 이끌어간 인물이다. 특히 후배들에게 四象醫學의 중요성을 역설한 인물로 유명하다. 위의 醫案은 類中風으로 판단되는 환자의 口眼喎斜를 치료한 기록이다. 특히 “氣虛血平人을 氣平血實人으로 誤診”하여 잘못 치료하여 口眼喎斜가 더 심해진 것을 스스로 자인하고 다시 치료하여 완치해내고 있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과실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가 이 환자에게 처음에 太陰調胃湯을 투여한 것은 이 환자를 太陰人으로 진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氣平血實人’은 ‘太陰人’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金鍼은 太陰人이 제일 잘 듣고 少陽人이 그 다음이고, 少陰人이 그 다음이나 몇일간 통증이 있는 것이 보통이다. 太陰人은 鍼灸를 병행하여도 무방하나 少陰人은 鍼으로 인하여 脫氣되기 쉽고 부작용이 심하다. 그래서 鍼을 禁하는 것이 제일안전하고 대신 灸를 행하여야 적합할 줄로 믿으며 少陽人은 灸는 不可하고 鍼이나 행하여야 하는데 만일 뜸을 행하여 流汗이 되면 亡陰이 되기 쉬우며 따라서 병도 잘 치료되지 아니할 줄로 믿어 마지 아니한다. 이 氣虛血平人인 類中風患者 치료에 있어서 氣平血實人으로 誤診하여 初에는 거의 殺人할뻔 하다가 心機轉換으로 순간적으로 死境에서 구출하여 難病을 治癒케 한 것은 기쁜 일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氣平血實人은 太陰人을 의미하며, 氣虛血平人은 少陰人을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의안기록은 權英植先生의 진솔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것으로서 후세에 귀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김남일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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