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생리학을 한의학에 적용한다면?
상태바
시스템생리학을 한의학에 적용한다면?
  • 승인 2016.12.29 0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은주 기자

신은주 기자

44juliet@http://


인터뷰 : 김창업 가천대학교 한의대 교수

시스템생리학을 한의학에 적용한다면?
“한의학의 전일론적 경험체계를 분석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어”

 

[민족의학신문=신은주 기자] 최근 열린 대한동의생리학회 학술대회에서 ‘시스템생리학과 동의생리학의 접목’이라는 내용의 강연이 주목됐다. 시스템생리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이 어떻게 한의학과 접목될 수 있을지 발표 주제부터 청중의 관심을 모았는데, 발표연자인 김창업 가천대 한의대 교수를 만나 시스템생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시스템생리학이란 무엇이며, 한의학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나.

시스템 생리학이란 미시적인 생명현상을 밝히는데 주력하던 기존의 생명현상에 대한 연구들과 달리, 미시적 요소들이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함으로써 ‘창발(emergence)’하는 거시적 현상의 이해에 집중하는 생리학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거시적 관점의 연구는 환원주의의 미시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정량적 연구임을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통한의학의 오랜 경험과 관점이 여전히 훌륭히 작동하고, 많은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와 치료수단을 매개하는 전통한의학 용어들은 현대과학의 생물학적 실체에 대한 지식에 바탕을 두지 않으며, 이 때문에 매우 주관적이고 모호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지속적 발전을 해나갈 수 없다.

유전체(genomics), 대사체(metabolomics)와 같이 분자 수준의 정밀함을 바탕으로 전체의 ‘패턴’에 대한 정보를 주는 오믹스(omics) 데이터들은, 한의학에서 오랜시간 이야기해와던 한열허실기혈 이면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증, 열증으로 진단된 환자들의 유전자 발현의 패턴과 변화된 분자 네트워크를 살펴보고, 복합처방들의 다양한 성분들이 생체에서 표적하는 단백질 네트워크를 조사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시스템생리학의 한의학 접목 시 기대효과는.

기존의 환원주의 일변도의 생물학적 연구들은 복잡한 거시적 생명현상의 원인을 특정 유전자나 단백질로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만약 한약의 약리작용을 연구한다면, 수많은 성분들 중 대부분은 불필요하거나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해됐으며 단 몇가지의 활성성분만이 한약의 효과를 책임질 것이라 기대된다. 따라서 바람직한 연구는 이 활성성분을 분리, 신약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질병이란 하나의 유전자, 하나의 단백질 때문이므로, 약은 하나의 표적에 고도로 선택적으로 작용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 하에서 ‘한의학의 과학화, 현대화’라는 모토로 진행되는 연구들은 전일론적 관점과 경험체계를 핵심으로 하는 한의학에 잘 맞지 않는 옷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때문에 많은 한의사들은 “현대과학은 한의학과 패러다임이 달라 한의학을 이해,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만으로 현대과학적 접근 자체를 부정하고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21세기에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시스템 생리학의 연구방법론은 한의학의 현대적 연구에 잘 맞는 옷이라 할 수 있다. 시스템 생리학 연구를 통해 밝혀지는 생물학적 실체에 대한 내용들은, 한의학의 전일론적 경험체계를 분석적으로 이해하고 더욱 정밀하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실체 없이 느슨하게 정의된 한의학의 용어들이 일단 실체에 기반을 둔 언어로 번역이 되고 난 뒤엔, 한의학도 여타 분야의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에 올라타 함께 발전해나갈 것이다.

반대로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나가는 현대과학과 의학기술의 파급력을 피해, 자꾸만 좁아지는 영역 어딘가로 숨어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연구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소개하자면.

2016년 9월에 자리를 잡아 현재 연구실을 막 꾸리기 시작한 단계다. 사실 그 전엔 한의계 밖에서 주로 신경과학, 정보의학, 인공지능, 통계등의 공부를 계속해왔고, 본격적으로 한의학 연구를 수행하진 못했다. 데이터 과학, 기계학습과 같은 방법론을 중심으로 임상 데이터에 적용하는 시스템 의학(systems medicine) 연구, 고전문헌이나 실험 DB 정보를 통합,분석하고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네트워크 약리학(network pharmacology)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고, 세포 및 뇌영상 수준에서의 신경과학 연구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한의학의 미래를 위해 한의계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시스템 수준의 연구방법들이 빠르게 의과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꿔나가고 있는 최근의 흐름은, 한의사에게 반가운 일인 동시에 큰 위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늘 하던대로 머물러 있는다면, 오랜시간 상대적 비교우위 영역으로 삼았던 많은 영역들이 손가락 사이의 모래알처럼 사라져갈 것이다. 현대의 일기예보에 오운육기학을 이용하지 않듯,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과 유전체학으로 맞춤의학을 구현하는 시대에 사상의학은 점차 경쟁력을 잃어갈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한의사들이 해야 할 일은, 우리 스스로 한의학을 해체하는 일이다. 나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옳아야 한다고 버티다가 타자에 의해 해체되어 뒤안길로 밀려나는 것보다, 첨단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스스로를 해체하고 재구성해나감으로써 미래의학 발전에 주체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훨씬 아름다운 시나리오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의학이 가진 독특한 사유와 경험체계는, 우리가 스스로를 얼마든지 해체할 수 있다는 전향적인 마음을 갖고 있을 때 진정으로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