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삶, 진지하지만 담담하게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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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삶, 진지하지만 담담하게 바라보다
  • 승인 2016.12.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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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성진

황보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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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 죽여주는 여자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상대적으로 노인 빈곤률과 자살률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불명예를 얻으며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예전에는 대가족이라는 사회 관습으로 인해 노인 세대들이 젊은 세대들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대 사회는 핵가족화로 인해 구성원들이 따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독거노인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게 되었다. 이는 자기 나름대로 독립된 생활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경제력 상실과 홀로 남겨지는 고독 등을 느껴야 하는 단점도 발생한다.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65세의 박카스 할머니 소영(윤여정)은 노인들 사이에서는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로 입 소문을 얻으며 가장 인기가 높다. 그녀는 트랜스젠더인 집주인 티나(안아주)와 장애를 가진 가난한 성인 피규어 작가 도훈(윤계상), 성병 치료 차 들른 병원에서 만나 무작정 데려온 코피노 소년 민호 등 이웃들과 함께 힘들지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한 때 자신의 단골 고객이자 뇌졸중으로 쓰러진 송 노인으로부터 자신을 죽여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받고 죄책감과 연민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러다가 그를 진짜 죽여주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은 고객들의 부탁이 이어지고, 소영은 더 깊은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분명 우리 주변에 있지만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죽여주는 여자>는 이중적인 의미의 제목답게 영화를 보는 내내 먹먹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모든 노인들이 이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은 상황은 아니겠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해야 하는 나이 듦과 죽음이기에 문득 어느 순간 감정이입하여 영화를 보고 있는 자신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올해로 연기 인생 50주년을 맞이한 윤여정은 인생연기라고 해도 될 정도로 지금까지와 또 다른 그녀의 연기를 보여주며, 배우가 천의 얼굴을 가졌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한 눈에 느끼게 해준다. 만약 윤여정이 주인공을 맡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감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죽여주는 여자>를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사>, <스캔들>, <여배우들> 등을 통해 세련된 연출을 선보였던 이재용 감독의 작품인 <죽여주는 여자>는 전작과는 다르게 현실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주려고 노력하며,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가감 없이 그리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소개했던 존엄사를 다룬 영화인 <미 비포 유>와 비교했을 때 확연히 다른 결말을 보여주면서 ‘웰빙(well-being)’뿐만 아니라 ‘웰다잉(well-dying)’ 또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런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고 있다. 연말연시를 준비하는 요즘, 우리 가족과 더불어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2016년을 마무리하고, 힘찬 2017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황보성진 /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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