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PDF보기  기사제보  광고안내  싸이트맵
최종편집 : 2017.4.24 월 17:29
> 뉴스 > 문화/과학 > 도서비평
     
[한의사 윤희정의 도서비평] 송년 선물
봄날
2016년 12월 08일 () 09:00:40 윤희정 mjmedi@mjmedi.com
   
임철우 著
문학과지성사 刊

나는 올해 마지막을 퍽 우울한 기분으로 보냈다. 우울함에서 벗어나고자 잠시 산책을 나가서도 우울했다. 임철우의 「봄날」이 발단이었다. 그간 광주 5.18을 다룬 작품들을 꽤 읽었고, 많은 자료를 통해 실상을 잘 알고있다고 자부했던 참이라 새로울 게 없을 거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임철우의 「봄날」을 읽는 내내 한 소설가를 떠올렸다. 사실주의 문학을 조롱했던 클로드 시몽으로, 그는 문학이 작가 스스로 구체적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다면, 가망없는 총체성-끝도 시작도 없는 이야기-에 빠져 소설이 곧 우주가 되어버리고 말것임을 경고했다. 그는 한 편의 소설은 (정보의)기록임과 동시에 (정보의)누락이어야함을 주장했다. 클로드 시몽편에 섰던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역시 기록 못지않게 누락은 한 작품의 독창성을 결정짓고, 바로 이 독창성이 설득력의 관건임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소설의 설득력의 조건은 누락과 정보숨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임철우의 「봄날」을 읽는 동안 나는, 임철우가 아마도 시몽이 혐오했던 가망없는 총체성을 지향했고, 그는 이 소설을 5권이 아닌 20권, 100권으로 썼을 수도 있었으리라 장담했다.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으리라.

80년 5.18 광주 사건 당시 열흘간을 임철우는 10년의 작업을 통해 담아낸다. 서두에서 그가 밝혔듯, ‘끝내 아무도 달려와 주지 않았던 그 봄날 열흘, 저 잊혀진 도시를 위해’ 바쳐진 이 기록을 한 줄 한 줄 힘겹게 읽어 내려가며 우리는 30여년 전 광주의 참혹함과 어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한다.

학생 중심의 지식인 엘리트 주도의 초기 항쟁에서 민중, 시민 주도로 변화하는 항쟁 말미까지 치열했던 광주의 투쟁과 감격스러운 시민들의 연대, 해방 광주, 잔혹한 죽음들, 짓밟힘, 그리고 고립, 광주의 외롭고도 처절했던 고립! 서술에 그 어떤 허세 없이 임철우는 80년 광주를 완벽히 재현한다.

그러므로 클로드 시몽은 틀렸다. 때때로 훌륭한 소설은, 한 작품의 진실성은, 적절한 누락이 아닌 꼼꼼한 기록에서 연유하는 까닭이다. 더 이상 언어로 서술할 수 없는 상황을 (작가의 고백에 의하면) 모든 힘을 다 쏟아 서술하며, 서술할 수 없음의 서술이라는 역설을 통해 임철우는 종국에 텍스트의 설득력을 획득했다. 바로 이 진부하게 충실한 기록에서 독자는 새로움을 발견한다. 「봄날」의 서사에 몰입하며 독자는 그 때 사건을 온전히 겪는다.

이렇듯 성공한 리얼리즘은 시간 초월적 체험을 선사한다. 다양하고 참신한 독법이 존재하는 지금 시대에, 「봄날」은 그 어떤 텍스트보다도 전통적 독법(1장부터 순서대로 읽기)을 따라야할 작품이다. 올바른 독서는 작가와 훌륭한 텍스트에 대한 예의이다.

우울함 속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우울한 기분이건 그 무엇이건 지성을 넘어 영성(사랑)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거름이 되어주리라. 타인의 고통과 절망위에 세워진 나의 안락함, 일상의 진보앞에 겸손하기. 역사 속에 희생된 목숨들을 망각하지 않는 것. 이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하나임의 인식-의 출발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삶을 통해 어리석은 인간(어리석은 독자)에서 참된 인간(훌륭한 독자)으로 성장하는 것이기에. 삶을 살아내는(그리고 책을 읽는) 모든 이가 말이다. 성장의 여정에서 만나는 소중한 글들과 아름다운 세상을 꿈꿨던 작가 소개는 내년에도 계속된다.

내 서평에 대한 서평을 해주는 가까운 이들, 이 누추한 짧은 글을 기다려주는 이들. 나는 그들과 자주 만나지 못했고, 좀더 긴 시간 이야기 나누지 못했다. 귀찮다는 이유로 내게 애정을 쏟아준 그들을 나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다. 미안함과 감사함을 담아 임철우의 「봄날」을 선물로, 올해 마지막 인사를 모두에게 보낸다. (값 1만3000원)

 

윤희정 / 광주 광역시 한의사

 

윤희정의 다른기사 보기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척추진단교정학회 학술대회 공지
제53차 한의학미래포럼
2016 경기한의가족 대화합한마당...
2016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
산청 명의 의약사적 발굴 학술발표...
경기도한의사회 신규회원 대상 보험...
신개념 척추교정기술, 공간척추교정
영화읽기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안내불편신고조직도찾아오시는 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동작구 성대로 1길 2 | Tel 02-826-6456 | Fax 02-826-6457
등록번호:서울특별시 다06529 등록연월일:1989-06-16 발행인 · 편집인: 임철홍
청소년보호 책임자 : 임철홍
Copyright 2009 민족의학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medi@mjmed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