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 당신이 서 있는 곳의 색(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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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당신이 서 있는 곳의 색(色)
  • 승인 2016.12.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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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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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전은 휴진이다. 이 때 부산의 번화가, 서면에 나가볼 시간이 생긴다. 중고 서점에서 책을 발견하는 목적으로 지하상가를 걷다보면 이 오래된 역사를 가진 지하상가에는 다양한 가게가 있다. 옷 가게만 해도 20,30대 여성을 위한 옷가게부터 중 장년층 여성을 위한 가게, 임산부를 위한 가게, 면접복장만을 취급 하는 가게 등 정말 다양하다. 일반 백화점이나 마트와 달리 사장님들의 개성이 듬뿍 담겨있는 옷들은 오랜 장사경험의 까다로운 안목(眼目)을 통과하고 가게에 자리 잡은 늠름한 신상품들이다. 안목은 곧 주인장의 성격이고 취향이며, 살아온 인생이다. 가게 주인의 안목과 코드가 맞는 손님은 그 가게의 단골이 된다. 이 과정은 단순히 물건을 구입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의 내면과 내면이 만나는 아름다운 과정이다. 마치 아티스트의 작품에 흠뻑 빠져 팬이 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순간이다.

 이 아름다운 만남이 일어나는 지하상가에서 발견한 것은 바로 <다양성>이다. 다양성이 아직은 유지되고 있는 생태계. 다양한 가게가 다양한 성격으로 존재하는 상권에서는 상인들 간에도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콜라보레이션이 이루어진다. 다른 가게를 통해 영향을 받고 안목이 넓어지며 상권 전체의 수준이 높아진다. 이런 다양성이 유지되는 공간은 외부 영향을 덜 받는 고유의 생명력이 생기고 사람들을 흡입하는 힘이 생긴다.

 유럽에는 이런 힘을 가진 오래된 전통 시장이 많다. 이 시장들은 오래되었음에도 대형 마트보다 훨씬 생명력이 넘치고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다양한 상인이 있고 새로운 상인들의 유입이 활발하니 손님들이 많은 것도 당연하다. 뉴욕에 갔을 때 도심의 큰 광장 유니온 스퀘어에서 주말 마켓이 열리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뉴욕 외곽의 농장주들이 자신들의 농산물과 그 가공품을 가져와 팔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멋지고 활력 있었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사과 농장의 주인이 자신의 농장에서 아침에 짜서 가져왔다는 얼음물에 담긴 사과 주스들은 금새 다 팔렸다. 대형회사에서 나오는 가공된 주스가 아닌 농장마다의 독특한 맛이 살아 있는 이런 주스나 가공품들이 있기에 뉴욕시민들이 사랑하고 즐겨 찾는 명소가 된 듯했다.  

뉴욕이야 말로 다양성이 살아 움직이는 도시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이 도시가 세계 최고의 도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된 것도 바로 다양성 때문이다. 반대로 죽어가는 공간, 앞으로 쇠퇴할 지역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안목과 개성으로 생명력을 얻은 곳이 프랜차이즈와 대형 상점들로 획일화되기 시작하면 그 곳은 생명력이 쇠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양성을 잃은 공간은 사람을 끌어오지 못한다. 사람들은 공간의 생명력과 활기를 느끼기 위해 찾아온다. 그리고 그런 생명력과 활기는 일상 속에서 내가 보지 못한 새로움을 볼 때 느껴진다. 여러 가게들의 다양한 개성이 살아 있는 공간은 그 가게들만이 내 뿜는 독특한 색깔이 있다. 이런 개성 있는 색깔들이 사람을 모으는 힘이 되는데 이 힘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야만 나타난다. 이미 알려진 브랜드 가게나 커피전문점들을 통해서는 그런 힘이 나오지 않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장벽을 치고 강한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정책을 펼 것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이민자나 다양한 문화가 미국을 떠나게 된다면 미국의 힘, 뉴욕의 힘은 반드시 약해질 것이다.

 사회도 다양한 의견과 문화가 안전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주어야 경제적 흡입력과 영향력이 생긴다. 실리콘 밸리나 상해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도 결국 다양한 스타트업 기업들이 편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환경만 조성되면 그 다음은 구성원들끼리 상호 시너지효과가 발생하고 강력한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자연히 성장하게 된다. 결국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모든 발전의 출발인 셈이다.

 그런데 다양성이 항상 동반하는 것이 있다. 바로 충돌이다. 충돌이 때로는 장애물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충돌은 그 사회를 더 건강하게 하고 살아 숨 쉬게 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감기를 많이 하는 것은 환경 속에서 자리 잡기 위해 적응하는 충돌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꼭 필요한 항체와 면역을 획득하듯이 충돌은 미래를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다. 충돌을 이유로 다양성을 억압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뿐만 아니라가 한 개인에게도 다양성은 생명력을 강하게 하는 필수요소다. 현대인들이 일상을 힘들어하는 이유는 단순 반복적인 일상이 우리의 생명력을 쇠퇴시키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감정을 충분히 내면에 녹여내면 그 다양한 것들이 시너지를 발휘하게 되고 생각지 않았던 결과들을 만들어준다. 여러 가지를 보고 듣고 느끼려는 모든 노력은 결국 내가 조금 더 건강하고 잘 살기 위한 마음의 목소리인 셈이다. 이 소리들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의 일상이,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 혹은 내가 속한 사회가 과연 건강한 곳인지 ,혹은 앞으로 발전할지 궁금하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지금의 나와 내가 속한 이곳은 어떤 색깔로 느껴지는가?” 다양한 색이 아닌 무채색이나 단색으로 느껴진다면 새로운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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