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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윤희정의 도서비평] 별과 권총
성과 속
2016년 10월 29일 () 09:00:47 윤희정 mjmedi@mjmedi.com
   

M.엘리아데 著

한길사 刊

오패산에서 전자발찌의 남성이 경찰을 권총으로 쏴죽였다. 같은 날, 또 다른 뉴스는 베를렌의 권총 경매소식을 전한다. 나는 ‘영원’에 대해 말하려는 참이다.

시인 베를렌의 권총이 겨냥한 랭보는 영원을 가슴에 품은 시인이었다. 구멍난 바지를 입고 길에 시를 뿌린 랭보의 존재의 원천은 별이었다. 인간들의 약속과 관습 너머의 영원성을 일찌감치 자각한 랭보는 거짓된 삶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했다. 랭보의 방랑 뒤엔 별이 있었다. 별들의 도움으로 영원성, 시간의 정지, 최고의 기쁨을 체험한 사람이 또 있다. 어린 시절 밤하늘의 별들은 그를 성스럽고도 신비로운 세계로 입문시킨다.

전 세계적으로 ‘엘리아데 현상’이라는 특수한 문화 현상을 일으킨 루마니아의 종교학자 엘리아데 뒤에도 별이 있었다. 별은 엘리아데가 역사적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시간을 되찾게 한다. 영원히 지속되는 순간을 살아야함을 알았던 그는, 평범한 일상 속에 성스러운 세계가 숨겨져 있음을 논증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환상일 뿐인 역사의 희생자로 살고 있지만, 우리 주변엔 여전히 성스러움이 감춰져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적 시간으로부터의 자유와 초월은 엘리아데 사상의 핵심이다.

그는 성과 속 두 가지 존재양식을 언급하며, 가장 탈신성화된 실존마저도 성(聖)의 흔적을 보존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속적인 것에는 성스러움이 어느정도 내포되어있다는 것이다. 예로, 첫사랑의 장소는 분명 특정한 세속적, 현실적 장소이지만 한 개인에게 예외적이고 특별한 의미의 장소이기도 하다. 첫사랑이 없는 안타까운 이는 고향을 떠올려보자. 엘리아데에 의하면, 탈신성화는 특히 지식인 계층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가장 지적으로 세련된 학자들마저도 여전히 종교적 후광과 신성성의 자취를 지닌다. 엷어지고 모습이 변화했을 뿐, 세계의 완벽한 탈신성화를 증언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사례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엘리아데의 증명은 치밀하고 성실하다.

세계 안의 두 가지 존재양식에 대한 엘리아데의 특별한 작업이 흥미진진하다. 시간과 공간, 인류의 역사와 종교, 우주와 자연에 대한 그의 방대한 연구를 따라가다 보니 책은 온통 밑줄투성이다. 하나도 놓칠 수 없다!

정착의 상징인 집이 한편 출구를 지녔듯, 인간도 한 존재양식에서 또 다른 존재양식으로 이행이 가능함을 그는 보여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데, 이러한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보다 완전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두 번째 삶으로의 입문에 (상징적)죽음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엘리아데는 인간 사회의 윤리의 씨앗, 샤먼들의 작두타기, 삶의 시련과 고통에 대한(맹목적 의미부여가 아닌)가능한 해석, 애초의 결혼(결합)의 상징,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의 뿌리, 다중우주와 평행우주의 정체까지 아우른다. 왜 의사는 치료에 앞서 환자에게 치료 내용을 크게 설명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엘리아데를 통해 중요한 한약재이기도 한 조개와 진주의 비밀을 알게됐다. 진주반지를 주문해야하나 고민하게 만든다. ‘인간은 소우주’라는 한의학의 중추적 사유의 생성 기원도 이참에 탐색하자.

단순한 현재 안에서의 삶을 더 파고들고 싶은 이들, 기존의 것과 역사, 오래된 것과 아주 오래된 것의 지속적 관계에 관심있는 이들, 무엇보다 우리는 각자 차원(수준)의 편견의 노예라는 사실을 인지한 자들에게 엘리아데의 저서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천재적인 애보트의 「플랫랜드」가 일깨우듯,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 알고 있어” 대신 겸손이다. 차원을 뛰어넘기 위해 대담한 발상의 전환과 존재이전을 위한 과감한 결단이 요구되는데 엘리아데의 책은 보다 온화한 계기를 마련해준다. 나는 인류 전체만이 아니라 한 개인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차원 도약과 영원성 회복을 위해 지금까지의 익숙한 삶과 결별하기. 결별의 준비물은 겸손, 부단한 노력, 그리고 밤하늘의 별.

별이야기로 시작했었다. 운이 좋으면 그대에게 오늘밤, 별은 자유를 회복하고 영원 속에 머무르는 빌미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랭보에게 아름다운 시와 존재의 원천이 되어주었듯. 엘리아데에게 역사적 시간을 초월하는 시발점이 되었듯. 그런데 랭보는 엘리아데식으로 말하면, 그 날 베를렌 앞에서 한 번 죽은 것일까? 아니, 다시 태어난 것으로 해두자. (값 2만원)

한의사 윤희정 / 광주 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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