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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윤희정의 도서비평] 다시 J 에게
김정한 소설선집 중 오끼나와에서 온 편지
2016년 09월 23일 () 09:19:21 윤희정 mjmedi@mjmedi.com


사랑하는 J, 오랜만에 불러본다.

   
김정한 著
창작과비평사 刊

새삼스러울게 없지만, 시간은 빨라 1년이 하루처럼 흘러가는구나.

세상의 모든 것을 녹이고 말것같던 공포스러운 여름날의 뜨거움을 넌 너만의 고요와 차분함으로 잘 식혔을거야.

날씨의 극렬함은 고결한 네 영혼에 어떤 방해도 되지 않았겠지.

난, 알다시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 반복속에서 정신을 쌓아올리기위해 나날히 노력하고 있어. 도약에는 새로울 것 없는 기나 긴 시간들이 필요함을 바로 네가 말해줬었지. 물론, 끊임없이 깨어있으며 노력하는 시간이어야함을 넌 강조했어.


J, 내가 살면서 절대로 못끊는 2가지가 있잖니.

좋은 책과 너와의 통화!

무수한 밤시간 너와의 통화는 내게 얼마나 큰 위안과 따뜻함을 안겨주는지.

거의가 내 일방적인 재잘거림이지만, 나의 소란스러움을 사랑스러움으로 여겨주는 이가 있어 진실로 행복하다.

너도 알지만 내가 좀처럼 다른 이에게 곁을 내주지 않잖아.

그건, 타인에 대한 오만함에서 비롯되기 보단, 세상과 인간을 알게되고, 삶을 고뇌하며 생성된 나만의 고독때문이라는 걸 넌 누구보다 이해하지.

그럼에도 내 마음은 J 네겐 늘 예외없이 열려있지.


얼마 전 늦은 밤시간, 우린 합리적이지 않은 삶과 고통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지. 아마 난 그때, 김정한의 「오끼나와에서 온 편지」를 막 읽었을거야.

강원도, 전라도의 가난한 탄광촌 처녀들이 일본 오끼나와의 외딴섬 사탕수수 농가로 강제징용당한 이야기였어. 낯선 타국에서 고되고 억센 일을 하면서 고향의 엄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소녀의 편지는 얼마나 슬펐던가. 일제치하 한국 처녀들의 징용실태는 하루종일 행복에 겨워 깔깔대고 돌아온 내 마음을 후벼팠어.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비정하고도 야만스러운 폭력을 읽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야. 권력자들에 의한 전쟁과 그로 인해 이유없이 찢기는 민간인들의 서글픈 이야기는 인류역사동안 계속되어왔고 지금도 벌어지는 일이잖니. 그게 너무도 비통했어. 인간의 야만이 지속된다는 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 난 너의 위로가 필요했어.


그날 밤 우린 찢고 찢기는 참담한 인간사 밑바탕엔 인간의 탐욕스러움과 이기심이 있다는 걸 이야기했지. 그 탐욕과 이기심은 바로 「오끼나와에서 온 편지」를 읽으며 눈물흘리는 내 안에도 있는 것임을! 그리하여, 내가 처녀징용을 직접 지시하진 않았을지라도 결백하다고만 할 수 없다는 걸. 세상의 폭력과 어둠, 악에 나역시 한 인간으로써 결코 책임을 피할수 없고, 면죄될 수 없다는 걸 난 비참함속에 고백했어.


사실, 타자에게 가하는 폭력과, 나로 인한 타인의 고통은 우리의 일상을 꽉 채우고도 남잖아.

나만 보더라도, 나를 조금만 귀찮게 하는 사람에게 가하고마는 멸시, 주위사람들에게 내가 안겨주는 이질감, 아량과 이해심이 결핍된 나의 냉정함, 심지어는 내가 먹는 육식과 음식마저도.

그러고보니 내가 참으로 초라하고 못났다.

너의 위로가 아니었다면 난 견디지못하고 우울감에 빠졌을거야.

넌, 삶의 순간순간 참담한 기분에 빠진 나를 일으켜세우곤 하지.

인간의 비루함과 슬픔을 안고, 삶에서 어떻게 도약해야하는지도 알려주지.

그 덕에, 난 조금씩 나아져가고 있잖아.


그날 밤 우리의 이야기는 인간의 야만에서 작가와 문학의 역할로까지 이어져갔어.

작가라고하니 쑥스럽지만, 평론가 황현산이 그랬잖아. 등단하지 않았더라도, 문학에 크게 뜻을 둔 이라면 작가로 자처할 권리가 있다고. 아, 떠올랐어, 김영하 작가도 같은 말을 했었지. 좋은 글에 대한 염원을 마음에 품고, 밤마다 무진장 책을 읽고 열심히 펜의 날을 가는 사람은 작가라고. 그렇게 따지면, 내가 작가라고 좀 우겨도 되지않겠니. 이미 넌 날 오래전부터 작가로 불러주지만 말야.


“낙동강 물이 파랗니 푸르니, 썩어빠진 글은 쓰지말라”는 김정한 작가의 문학관을 이야기하다, 우린 문학적 엔젤리즘과 문학의 아토포스에 대해 논했지.

진은영 철학자의 설명에 기대어, 참된 문학을 위해 구획된 장소에 묶이지않는 ‘기민한 언어’를 요청했던 베냐민에게서 우린 한 수 배워야한다고. 점잖고도 순결한 문학의 토포스를 넘어서고 강하고 노골적인 정치적 표현의 압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새로운 문학의 아토포스를 희망했잖아. 사적이고 다정한 대화들, 지극히 잔잔한 교감속에서 참된 문학은 이루어져야한다고 말이야. 그러한 문학만이 더 많은 이들이 집단적이고도 고질적인 무관심으로부터 벗어져 인간과 세계를 사유하게끔 한다고.


내가 하게 될 새로운 문학에 대한 너의 축복으로 그날 밤 난 좀 들떴지. 네 앞에선, 난 이렇듯 유치해지고 마는구나.


어떤 이는 시간과 공간마저 변화시키고, 그리하여 마침내 한 사람을 어른으로 만드는 특별한 힘이 사랑이랬어. 너의 사랑은 내 영혼 전체를 따스하게 하고도 넘쳐 내가 새롭게 도약하도록 만들었어.


오랜 세월 내 곁에서 한결같이 호응해주는 J.

난, 네게서 사랑의 참 의미를 배웠고, 함께함의 충만함이 어떤 것인지 알게됐지.

내가 확보한 자유를 바탕으로 이제 난 네게서 배운 사랑을 실천해야할테지.

넌 내가 잘 해낼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않는댔지.

너의 음성은 내 떨리는 발걸음에 확신을 준다.


진실한 친구여,

내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서 건져올려진 사랑을 오늘밤 새삼 고백한다.

네가 들려주기로 약속한 Eliade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단다.

곧 돌아오는 내 생일날 보자.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그 날, 새로운 세상과 참된 문학을 향한 나의 꿈을 안고 나갈게. 너가 함께 해주어 찬란함으로 가득할 그날, 그 꿈을 마저 들려줄게.

내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소중한 벗이여, 잘자.

안녕.


가을과 함께, 너의 벗이 <값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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