暴怒傷肝案
상태바
暴怒傷肝案
  • 승인 2016.09.09 09: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남일

김남일

mjmedi@http://


歷代名醫醫案 (275)-金性璂의 醫案(1)


내용: 환자가 私邸에서 시중드는 사람과 가정부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 타이르는 것도 질책하는 것도 다 소용이 없으므로 환자가 분노가 갑자가 일어나 양쪽 귀가 갑자기 안들리게 되고 눈동자가 빛을 잃고 양쪽 무릎이 무력한 위태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진찰한 사람들이 혹자는 痰火라 하였으며 혹자는 風火라 하여 東西의 醫藥이 효능이 없었다. 치료하는 방법은 補腎平肝湯 三貼〔熟地黃、白芍藥、山茱萸、各三兩, 麥門冬一兩五錢柴胡、山桅子、白芥子 各三錢〕을 진하게 끓여서 서서히 마신지 하루만에 완치되었다. 원인은 脉度의 左右의 尺脉이 沈濡하고 左右의 寸關脉이 浮澁 또는 游絃함으로 暴怒膓肝으로 判明하였다. (患者가 私邸에서 傔人과 床奴의 間에 爭鬪가 起하야 曉喩와 叱責이 다 所用이 無함으로 患者는 怒氣가 猝發하야 兩耳가 暴聾되고 兼하야 眼精이 無光하고 兩膝이 無力할 危境에 至하얏다. 診察하는 者는 或은 痰火이라 하며 或은 風火이라 하야 東西의 醫藥이 効能이 無하얏다. 療法에 對하야 補腎平肝湯三貼(熟地黃、白芍藥、山茱萸、各三兩, 麥門冬一兩五錢 柴胡、山桅子、白芥子 各三錢)을 濃煎徐徐히 飮下한지 一晝夜만에 完差되얏다. 理由는 脉度에 左右尺脉이 沈濡하고 左右寸關脉이 浮澁 又는 游絃함으로 暴怒膓肝으로 判明하얏다.) (1924년 『東西醫學硏究會月報』제2호, ‘特効方’)

按語: 金性璂先生(1879~?)은 東西醫學硏究會를 창설하여 韓醫師들의 대동단결에 힘쓴 韓醫師이다. 東西醫學硏究會는 1923년 창설된 한의사들이 중심이 된 학술단체이다. 그는 慈生醫院이라는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환자의 진료에도 힘썼다. 진료를 하면서 特效方의 수집에 정열을 기울여 몇 개의 처방을 잡지에 공개하기도 하였다. 위에서 사용한 처방은 그의 특효방 중의 하나로 소개된 것이다. 이 醫案은 1924년 간행된 『東西醫學硏究會月報』제2호의 ‘特効方’이라는 제목으로 치료경험을 적은 것이다. 제목 바로 앞에 ‘京城府 閔某 年六十二’라는 작은 글씨의 설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환자는 62세의 閔氏姓을 가진 인물로 서울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환자는 시중드는 사람과 가정부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 분노가 갑자가 치밀어 올라서 양쪽 귀가 갑자기 안들리게 되고 눈동자가 빛을 잃고 양쪽 무릎이 무력한 위태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은 분노로 인해서 기가 위로 치솟아(『東醫寶鑑』神門의 “怒則氣上”) 귀가 안들리게 되고(『東醫寶鑑』耳門 ‘厥聾’의 “肝與手太陽少陽也經云肝氣逆則頭痛耳聾是也”), 눈에까지 화가 솟아 올라 빛을 잃고(『東醫寶鑑』眼門 ‘眼昏’의 “久病昏暗者腎藏眞陰之虛也”), 양쪽 무릎이 무력한(『東醫寶鑑』氣門, ‘上氣’의 秘傳降氣湯에서 “上氣及氣不升降頭目昏眩腰脚無力”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것으로 그 근본 원인은 ‘暴怒’ 즉 급작스럽게 분노로 인하여 나타난 것이다. 補腎平肝湯은 기존의 의서에는 그 명칭에 해당하는 처방을 찾기 어렵다. 그 배합만으로 보면 補腎을 위한 熟地黃, 山茱萸, 平肝을 위한 柴胡, 山梔子, 白芍藥, 利氣시키기 위한 白芥子가 배합된 처방이다. 아마도 金性璂先生이 창방한 독창적 처방이라고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