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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내리는 한약에 대한 오해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원전학교실 백유상 교수
2016년 09월 02일 () 09:14:57 백유상 mjmedi@mjmedi.com


한의학에서는 본초의 특성을 전통적으로 기미론(氣味論)으로 설명해 왔는데, 특히 한열온량(寒熱溫凉)의 사기(四氣)가 한의학 고유의 이론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산고감신함담(酸苦甘辛鹹淡)의 미(味)는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미각을 통하여 느낄 수 있는 대상이지만 약성이 차가운지 뜨거운지에 대한 것은 환자의 반응 속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므로 그 가운데 한의학의 주요 이론들이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의학에서 열이라는 것은 체온기를 통하여 객관적으로 측정되는 열이 아니라, 다양한 열성 증상들을 유발할 수 있는 잠재된 하나의 병적 성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는 실제로 감지되는 발열을 포괄하기도 하면서, 한편 겉으로 열이 느껴지지 않더라도 내부에 열이 잠재되어 있는 경우까지를 ‘열이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한의학적 개념의 ‘열’을 억제하거나 없앨 수 있는 효능을 가진 한약은 매우 다양한데, 땀을 내는 더운 성질의 약을 쓰기도 하고 맛이 쓰고 차가운 약을 써서 직접적으로 열을 내리기도 한다. 여기서 더운 성질의 약을 써서 열을 내린다는 것은 열을 내리는 데에 다양한 기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열이, 무조건 우리 몸의 양기(陽氣)가 성해져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기의 흐름이 막혀서 나타날 수도 있고 우리 몸 전체의 한열 균형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나타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음기(陰氣)가 성해져서 궐증(厥證)이 오는 과정에서도 열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단지 기가 울체(鬱滯)된 것을 풀어주는 약을 쓰기만 해도 열이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차가운 성질의 약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약을 써서 열을 내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양의학에서 사용하는 해열제와 비교해보면, 해열제는 객관적으로 감지되는 열을 내리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며, 뇌의 시상하부에 작용하여 인체의 온도 설정 자체를 변화시키므로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오히려 반작용으로 고열이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인체의 생명활동과 질병 억제에 필요한 양기(陽氣)를 약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자주 사용하게 되면 결국 정기(精氣)의 손상을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해열제의 부작용은 많은 의사들이 이미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의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인들 중에는 한의학에서 열을 내리는 한약과 서양의학의 해열제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즉, 열 내리는 한약은 매우 차가운 성질만 가지고 있어서 인체의 정기(精氣)를 손상시키는 해열제처럼 부작용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열’은 일반적 발열과는 다르며, 또한 그것을 없애는 방법도 무조건 직접적으로 지나치게 차가운 성질의 약만을 쓰지 않으며, 약물 간의 군신좌사(君臣佐使) 관계를 통하여 부작용을 최소화 하면서 신중하게 사용되어 왔다.

열 내리는 한약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한의사들이 일반인들에게 한의학에서 말하는 열이 무엇이며 어떠한 과정으로 그 열을 조절하는지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서양의학에서 사용하는 해열제와 비교하여 그 효능과 기전이 어떻게 다른지도 설명해야 한다. 설령 처방 가운데 차가운 성질의 한약이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때 ‘차갑다’는 의미가 해열제처럼 시상하부에 작용하여 체온을 직접적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오장육부와 경락이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정기신혈(精氣神血)과 진액(津液)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복합적인 인체 작용의 결과로서 열을 내리게 하는 효능을 가진다는 의미이다.

한의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한의학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예전부터 한약은 독성이 많아서 간에 해롭다고 비난해 왔다. 세상에 어떠한 약이든 부작용을 유발하는 성질이 없을 수 없는데 이를 일반화하여 침소봉대한 것이며, 심혈을 기울여 처방을 투여하는 한의사의 전문성을 전혀 무시하는 주장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열을 내리는 한약에 대한 오해가 커져서 마치 인체에 크게 위해를 주는 약인 것처럼 인식될 우려가 있다. ‘열을 내려야 한다’라는 한의학적 설명이 일반인들에게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나 그 본질적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병행되어야 하며, 또한 한의학에 대한 몰상식적인 비난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열을 내리는 방법이 한의학에서는 매우 다양하여 오히려 정기(精氣)를 보(補)하기도 하며 전문가인 한의사의 지도하에 안전하게 열 내리는 한약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주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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