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이익만을 위해 폭주하는 거대 제약회사에 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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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이익만을 위해 폭주하는 거대 제약회사에 맞서
  • 승인 2016.08.2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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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mjmedi@http://


의약에서 독약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많은 사람들이 화학성분 패닉에 빠져든 느낌입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치약·샴푸·화장품에도, 간편식으로 섭취하는 가공식품·패스트푸드에도 수십 종류의 화학물질이 들어있는데, 이것들을 날마다 먹고 쓰고 하면서도 과연 무탈할까 두려운 것이지요.

미켈 보쉬야콥슨 외 著
전혜영 譯
율리시리즈 刊

이상한 점은 양약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하고 또 무관심하다는 사실입니다. 설마 양의 탈을 쓴 늑대라서 잘 알아보지 못하는 걸까요? 화학합성제의 최고봉은 단연 양약이건만….

「의약에서 독약으로」는 한마디로 양약의 폐해를 속속들이 파헤친 책입니다. 대표 저자인 미켈 보쉬 야콥슨(Mikkel Borch-Jacobsen)은 서문에서 “결코 의약품에 반대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윤 추구에 눈이 먼 제약 산업을 고발하기 위함”이라 했지만, 책 속의 모든 내용은 ‘빅 파마(Big Pharma)’ 시대에 시스템적으로 돌아가는 현 양방 의료계의 민낯이기에, 시쳇말로 ‘도긴개긴’이지요. 이렇게 멋진(?!) 우리말 제목을 붙인 까닭도, 출판사가 사태의 본질을 명확히 꿰뚫었기 때문 아니겠어요?

지은이는 워싱턴대학 교수 미켈 보쉬 야콥슨을 비롯해서 모두 13명입니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의사·대학교수·기자 등이 힘을 한데 모았는데, 이들은 10여 년 전부터 초국가적 진용을 갖추고서 판매량에 따른 이익만을 위해 폭주하는 거대 제약회사들에 강력히 맞섰다고 합니다.

가령, 카디프의대 정신의학과 교수 데이비드 힐리(David Healy)는 프로작[Prozac]같이 자살충동을 유발하는 항우울제의 부작용을 최초로 규탄했고, 하버드의대 외과 교수 존 에이브람슨(John Abramson)은 COX-2 소염제의 부작용을 세상에 처음으로 밝혔으며, 전염병 전문의 볼프강 보다르크(Wolfgang Wodarq)는 신종 플루(H1N1) 백신의 허상을 만천하에 공개했거든요.

책은 총 3부 23장에, 앞뒤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덧붙인 구성입니다. 우선, 프롤로그 ‘완전범죄’에서는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를 위시한 세계적인 의약스캔들을 시기별로 살펴봅니다.

이어 1부 ‘빅 파마의 절대권력’에서는 거대 제약회사들의 정체와 활동상을 자세히 설명하고, 2부 ‘제약산업의 마케팅; 모든 방법을 동원하라’에서는 이들이 자유경제체제에서 의약품이라는 상품을 팔기 위해 어떤 기술적·홍보적 전략을 펼치고 있는지 다각도로 분석하며, 3부 ‘제약 마케팅의 담보가 되어버린 과학’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신뢰하는 소위 ‘근거중심의학’이 어떻게 도리어 우리의 건강을 위협할뿐더러 제약산업의 실속을 챙기는 수단으로 전락했는지 집중 조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 ‘궤멸위기에 처한 진정한 의학’에서는 모든 것을 약으로만 해결하려는 이 시대를 개탄하며 진짜 의학이 사라지고 있음을 경고합니다.

읽노라면 요즘의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보다도 더 섬뜩한 기분이 들 겁니다. 비난할 영혼도, 채찍질할 육체도 갖지 않은 존재인 거대 제약회사들이 “건강한 사람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병을 가진 환자다”라며 최대한 많은 변수들을 비정상의 범주에 넣으려 발버둥치는 모습이 눈에 선하거든요.

항생제 내성률 세계 최고인 이 땅의 양의사들이 혹 여전히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있다면, “프리뭄 논 노체레(primum non nocere;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의 속뜻을 깊게 곱씹어봐야 할 것입니다. <값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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