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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윤희정의 도서비평] 나의 아침기도-에코 형식에 기대어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2016년 07월 29일 () 09:12:13 윤희정 mjmedi@mjmedi.com


방 안이 문득 캄캄하다. 작업은 중단됐지만 사유는 깊어진다. 아줌마가 공교롭게 들렀다가 아사리판의 책상 앞에 바퀴벌레처럼 웅크린 나를 보곤 전구를 사다 끼워준다. (조정회 여사님, 그는 내 원활한 일상의 숨은 공로자다. 폭우를 뚫고 내게 빛을 선물해준 그는 천사의 후예다.) 환해진 전등아래 다시 작업을 이어가자.
 

   
버지니아 울프 著
예문 刊

근래에 만난 어떤 이는 책 줄거리가 부재한 내 도서비평에 강한 불만을 표했다. 문학 비평의 사표, 테리 이글턴은 작품 줄거리를 주저리 나열하는 것을 가장 저급한 비평으로 꼽았다. 텍스트를 그저 그런 말로 풀고, 자신의 견해를 대충 끼워넣는 것이야말로 독창적이지 못한 비평양식의 전형이라고 이글턴은 말한다. 그러므로 한심한 이여, 그대의 불평과 무모한 평가를 부디 중단하길 바란다.

나는 이 서평란을 꿈보다 ‘몽상’으로 채우고 싶었다. 가스통 바슐라르가 언급했듯, “드라마와 사건, 이야기가 없는 몽상이야말로 우리에게 진정한 ‘여성성의 휴식’을 주며, 존재의 확장을 이루게 하므로”. 줄거리, 사건, 스토리로 이루어진 꿈은 우리 영혼을 어지럽힐 뿐이다. 바슐라르에 의하면 몽상을 위해서는 우선, 삶 전체가 책읽기로 채워져야한다. 끊임없이 많이 읽기, 그러나 빨리 읽지 않을 것. 책은 몽상의 값진 자료다.

독자의 역할을 중시했던 수용미학의 주창자 볼프강 이저는 “한 권의 책을 공들여 독파했을때 우리가 읽은 것은 우리 자신이다.”라고 했다. 정성을 쏟아 읽어낸 책으로 독자의 의식은 비약하고, 이는 심층 무의식적 몽상의 힘찬 토대가 된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사적이지만 창조적인 몽상을 펼쳤던 여성을 소개한다. 버지니아 울프. 그녀는 오랜 문명과 남성이 틀지운 정형화된 여성상에서 벗어났고, 그만큼의 용기와 치열함으로 삶의 최후까지 고뇌하고 결국 승리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남성의 욕망과 계획으로 억압, 희생당한 여성들에게 각성을 촉구한다.

그녀에 의하면 여성들은 일상의 경험마저 남성들을 통해 한다. 대단한 통찰력과 진보적 사고, 혜안을 갖춘 이 여성작가는 여성이 경험을 스스로 겪고,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로 표출할 것을 조언한다. 관습으로 굳어진 거대한 문명을 날카롭게 인식하기 위한 부단한 배움과 독서, 타인에 의해 틀지워진 인생살이가 아니라 삶을 스스로 엮어가는 용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일상에서의 성실한 노력. 이는 울프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울프는 가장 창조적이고 위대한 마음은 양성적인 마음임을, 양성이 협력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임을 알았다. 울프는 지나치게 성을 의식하는 사회적 풍토를 지적하며 각자 내면의 양성의 힘을 잘 융합시키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남자와 여자의 결합(결혼, 사랑)에서 완벽과 최고의 만족, 행복을 찾아왔던 인간의 비합리적이고도 오래된 본능을 들며, 그처럼 본능에 충실한 만큼 각자 내면의 양성의 조화를 먼저 완성해야함을 주장한다. 울프는 성을 특별히 분리시켜 사고하지 않는 것을 완전하게 발달된 마음으로 본다.

한편, 그녀는 뭔가 더 높은 목적을 갖고 세상에 영향을 주려 하는 것 보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임을 일깨운다. 일상에서 부단한 노력으로 창조적인 마음을 갖출것. 그리하여 궁극에 자유롭고, 해방된 존재가 되기. 이를 위해 울프는 여성이 우선, 몽상과 사색을 위한 자기만의 방과 연간 오백파운드의 고정적 수입을 가져야한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 그 누구의 팔에도 매달리지 않고 홀로 나아가기!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으며, 우리는 모더니즘의 대명사인 한 여성작가의 놀랍도록 지적이고 차분하며 학술적인 삶에 충격을 받는다. 오래 전의 글들이지만 결코 낡지 않다. 여전히 신선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그녀의 통찰력과 사유는 가슴을 울린다. 수치스러울 정도로 무지하고, 중요한 것들을 전혀 알고 있지 않은 젊은 여성들(젊은 여성뿐이겠는가)을 주저없이 야단치며, 스스로 사유하고 그 사유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라는 울프의 가르침은 세월을 넘어 지금도 유효하다.

그녀의 글이 여성뿐 아니라 안일한 관습과 게으른 일상에 빠져있는 모든 인간의 가슴에 파고들길 바란다. 이는 남성이 틀지운대로 의심없이, 또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남성에게 의존하는 안타까운 여성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주체적 사유와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타인과 관습으로부터 자립못한 인간들이 함께 귀기울여야할 이야기이다.

가장 비참한 삶은 타자적 삶이다. 울프는 그녀의 글과 삶을 통해 자유를 얻는 길을 제시한다. 그녀의 자유는 굳게 잠근 자기만의 방에서 오랜시간 방해받지 않고, 읽고 사유한 결실이다. 리차드 로티는 말했다.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자신만의 사적인 관심이 비로소 삶을 충만하게 만든다고.

버지니아 울프의 방에서 다시 내 방으로 건너오자. 매일 아침, 나는 기도를 올린다. 가스통 바슐라르가 책상 앞에서 올린 기도이다. ‘독서의 신이여, 오늘도 일상의 배고픔을 주소서’. 이는 독서가의 기도이고, 자기만의 방에서 몽상을 꿈꾸는 자의 주문이다.

그대, 혹 뜸하게 읽는가? 그렇다면 그대, 뜸하게 존재할 뿐이다. 뜸하게만 사유하고 몽상하는 자, 존재를 진정으로 누리지 못하는 셈이다. 버지니아 울프를 읽고, 바슐라르 기도에 동참하며, 존재의 확장을 이루자. 그것은 틀에 박힌 일상이 아닌 새로운 형식의 삶으로 가능하다. 창조적 삶은 그대가 ‘무엇을 읽었는가’에서 비롯한다. 새 전등에, 한층 밝아진 내 영혼까지 합세해 어느 때보다 환한 밤이다. 새롭게 환한 이 밤, 내 읽기와 몽상은 계속된다. 바로 나만의 방에서.

 

*처녀시절 버지니아 울프를 탐독한 나의 엄마는 내 삶을 애초부터 (말할 수 없이 풍요롭게) 바꿔놓았다. 그러므로, 나는 울프에게 전적으로 빚졌다. 빚갚는 심정으로 문학과 책을 사랑했고, ‘시대’를 열었던 울프를 오늘 포교한다. 이 서평은 인용하는 글쓰기의 정당성을 주장한 에라스무스와 파스칼에 힘입은 에코의 방식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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