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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한의사회장으로 의권사업에 열심히 참여한 한의사
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248): 金允燦(1933∼?)
2016년 06월 17일 () 09:07:08 김남일 mjmedi@mjmedi.com


金允燦先生은 평안남도 대동군 청용면 소오유리에서 의사인 金聖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 金聖鍵先生은 金谷醫院을 운영한 의사로서 당시에 드문 엘리트였다. 金允燦先生은 평양에서 光成중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한국전쟁 후에 월남하여 경희대학교 한의학과에 입학하고 1958년 제7회로 졸업하였다. 1963년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운영하는 예방의학 과정을 수료하였다. 1969년에는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의학석사를 취득하였다.

   
◇1973년 대한경행인사록에 나오는 김윤찬 선생 관련 기사.

그는 인천시 중구에서 동양한의원을 개원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5년에는 인천시한의사회 부회장을 하였고, 1971년에는 인천시한의사회 회장으로 봉사하였다. 1981년 인천시가 경기도로부터 분리되어 인천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9월 4일에 인천시한의사회 창립준비위원회가 설립되는데, 이 때 신경희, 조동한, 김현규, 손홍근, 박광영, 권혁문, 최상철, 조원호, 이홍강과 함께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9월 10일에는 총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87년 2월 27일에는 송도비치호텔에서 제7회 정기총회가 개최되어 신경희 선생이 의장으로 선임될 때 부의장으로 조동한 선생과 함께 선임되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3년 한국에서 제3차 세계침구학술대회를 개최하게 됨에 따라 그는 1972년 11월에는 일본침구학술대회에 참가하여 국제적 시각을 넓히기도 하였다. 1976년 4월 제8대 인천시한의사회 회장으로 선임된 후 약사의 한약조제 문제로 약사법 개정 투쟁을 선봉에서 지휘하였다. 그해 12월 8일부터 시작된 농성에 전 회원이 분회별로 적극 참여, 단합된 회세를 과시했다.

열렬한 기독교 신자로서 사회적으로 인천시 로타리클럽의 회원이었다. 운동은 배구와 축구를 취미로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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