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725>-『扁鵲倉公傳彙考』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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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725>-『扁鵲倉公傳彙考』②
  • 승인 2016.04.2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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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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扁鵲으로 상징되는 醫藥偉人傳


그럼 이번 호에선 ‘扁鵲倉公傳彙考’의 저술 경위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본문 첫 장에 서문을 대신하여 多紀元簡이 취지만을 밝힌 간략한 글이 실려 있는데, 이글에서 저자는 “편작과 창공은 太史公이 전한 바라 오래 되어 뜻이 통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곳이 많다.”고 문제점을 제기하여 글을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태사공은 『사기』의 원작자인 司馬遷을 지칭하며, 그는 아버지인 司馬談에 이어 太史令의 직위에 올랐기에 太史公이라고 불린다.

◇ 『편작창공전휘고』

이어 그는 “내가 보던 『史記評林』본의 원문 위아래에 어휘에 대한 비고와 行間에 의문을 적어두었던 바, 이제 이 두 열전을 의학교에서 가르치게 되어 여러 동료들이 모두 빌려보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작은 글씨로 적었기 때문에 보기에 어려워서 …… 따로 1책을 베껴서 索隱과 正義를 붙이고 滕氏의 割解를 참작하였으니 ……”라고 하였다. 여기서 ‘割解’라고 말한 것은 아마도 아사이 도난(淺井圖南, 1706~1782)이 1766년에 펴낸 『편작창공열전할해』(전2권)를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또 “천박하고 편협하며, 어리석고 번잡하여 비록 啓發한 곳이 없이 심오한 뜻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혹간 稽古할 적에 조금이라고 얻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하여 짤막하게나마 이 책이 나오게 된 경과와 취지를 함축적으로 잘 요약해 전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의 끝에는 “癸丑少春之望, 櫟蔭精舍書, 元簡.”이라고 적혀 있어 원작이 처음 집필되기 시작한 것은 1793년으로 이미 알려졌던 것보다 훨씬 먼저였음을 볼 수 있다.

이 책의 공저자라 할 이들 3부자는 考證醫學派의 거두란 명성에 걸맞게 이 위인전의 一字一句에 대한 세심한 어휘 풀이와 더불어 史傳을 고증해 수록했는데, 책장을 열자마자 ‘편작’이란 이름 자체에 대한 여러 가지 異說과 是非를 분간하고자 하였다. 이어 渤海郡, 鄭人, 姓과 名인 秦氏와 越人에 대한 설명, 그리고 長桑君을 비롯한 등장인물에 대한 세심한 고증작업이 펼쳐진다.

그래서 편작전은 한낱 한 사람의 명의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의사라는 특수한 직능인에 대한 역사비평적 省察을 담은 人物傳이라 할 수 있다. 『사기』열전을 통해 익히 알려졌던 편작에 대하여 명의로서의 일생과 史傳이 문헌을 통해 고증되었을 뿐만 아니라 醫者의 입장에서 재해석되고 분석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의 교재로서의 성격은 影宋本 『扁鵲倉公列傳』의 권미에 기록된 丹波元堅의 後識에 잘 나타나있다. “이 편작창공열전 1권 및 太史公自序 가운데 1조문은 …… ○○ 소장 南宋 建安 黃善夫刊本을 그대로 본떠 새로 찍어 醫家의 講習에 대비한 것이다. 嘉永2년(1850) 9월 江戶에서 丹波元堅 적음.”

이 같은 내용은 책을 간행한 이후에도 여전히 편작전을 분석하고 새로운 해석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마찬가지로 본서 다음에 또『影宋本扁鵲倉公傳考異』라는 연구 분석서가 뒤를 이었는데, 이 책 역시 『편작창공전휘고』에서 나타나는 사소한 오류를 보정하고 본전에 등장하는 문자 가운데 大義에 관계된 것들의 異同을 찾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권미에 붙여 놓은 것이다. 그런데, 교정할 때 사용된 여러 가지 판본을 기록해 둔 ‘校訂諸本’에는 이른바 朝鮮本도 들어 있어 관심을 끈다.

조선에서는 이미 『의림촬요』· 역대의학성씨를 통해 고금의 명의들에 대한 역사적 의미가 설정되었지만 이렇듯 상세한 학술적 고구가 이루어진 것은 의학자들의 생애에 대한 한층 더 심도 깊은 조망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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