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비상사태 긴급 점검(2)- 한약을 노리는 무리들
상태바
한의학 비상사태 긴급 점검(2)- 한약을 노리는 무리들
  • 승인 2003.03.17 14: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고사위기 제약업계 한약제제로 탈출 모색
늘어난는 한약제제, 의약분업· 의료일원화 선택 압박

6월 11일 한국제약협회 강당에서 식약청이 주관한 의약품허가제도 설명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날 행사는 천연물의약품 등에 대한 입법 취지와 내용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약회사·병원 관계자 150여명이 자리를 모두 채워 한약의 제제화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한의계는 몇몇 한방병원 관계자가 참석했을 뿐 이다.

국내제약회사가 한약에 관심을 쏟게 된 일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특별한 관심을 쏟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양방 의약분업이었다. 의약분업으로 의약품 거래마진이 허용되지 않자 의료기관은 이왕이면 오리지널 약을 처방하자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다국적 제약회사가 국내 의약품시장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반면 카피약은 팔리지 않고, 그렇다고 신약을 개발할 능력이 없는 국내제약회사들은 의약품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한약제제의 생산이다.

한약제제는 신약과 같이 R&D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안전성·유효성이 확인되어 제형변경 정도만 성공하면 얼마든지 제품허가를 받을 수 있다. 식약청은 죽어가는 우리나라 제약산업을 살리는 방안으로 한약제제를 주목하고 이번에 ‘천연물약품 연구·개발 관련 제도 개선안’이라 하여 의약품허가에 필수항목인 의약품 안전성·유효성 심사를 면제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내걸고 입법예고했다.

이 법안이 확정되면 현재 제품화된 한약제제 350여 종에 더해 최대 1만 4천개의 처방이 한약제제로 허가될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약제제는 몇 가지 문제를 한의계에 던져 주고 있다. 현재로서 문제가 되는 대목은 한약제제 중 한의사의 처방에 의해서만 조제할 수 있는 전문한의약품이 한 건도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제제화한들 모든 한약제제가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된 이상 비전문가에 의한 약물오남용을 방지할 수 없음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맥문동탕’ 사건이 미치는 파장

실제로 양의사들은 한약제제를 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울산에서 모 양의사가 복지부에 맥문동탕 처방이 현행 의료법에 저촉되는지 유권해석을 의뢰했는 바 복지부내에서 ‘합법’과 ‘불법’ 사이를 오가다 지금은 공식적 답변을 보류한 채 내부적으로만 ‘모든 한약제제가 일반의약품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양의사가 처방해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식으로 봉합해 사실상 묵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일반의약품’이 양방의약품이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 사건으로 한의계는 양의사들도 한약제제를 쓰고 있고, 설령 쓴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결국 후대 한의사들에 의해 한약제제 처방권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대한 분수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반면 한의사는 한약제제의 처방을 기피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와 한약제제의 귀속권에 암울한 전망을 드리우고 있다. 한의사의 한약제제 처방 기피는 한의학의 가감원리에 맞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유는 한 가지다. 그것은 바로 경제적인 이유에서라는 것이다. 알약으로 나오는 한약제제 투약으로 받게 될 소액의 약제비로는 채산성이 맞지 않아 대다수 한방의료기관이 외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선 한방병·의원 사정에 밝은 S제약회사 부사장은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한의사들은 한약제제를 안 씁니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의사들은 제형이 변경되면 쓰겠다고 합니다.”

게다가 한약제제 시판후 임상시험을 양방병원에서 하게 되면 한약제제의 귀속권을 주장하는 양의사의 목소리가 더욱 커져 겉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닫게 될 위험성도 도사리고 있다. 마치 미국 국립보건원(NIH)가 ‘침’의 효능·효과를 공식 인정한 것을 한국 양의계가 양방침구의 기원으로 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전문의약품 분류의 딜레마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하는 일이 최선의 방안이냐는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하면 비전문가에 의한 한약제제의 무분별한 사용은 억제될 개연성은 있지만 그것은 한방의약분업을 수용해야 하는 위험성을 수반하게 된다.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은 어차피 의약분업을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전문의약품을 확보하려다 의약분업에 걸려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한약제제를 몽땅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도록 방치하여 양의약사의 손에 내맡겨 둘 수도 없는 딜레마가 있다.

의약품 분류와 상관없이 한약제제의 가지수가 늘면 늘수록 첩약의 사용이 줄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효능에 별 차이가 없다면 비싸고, 불편한 첩약보다 싸고, 간편한 한약제제를 찾는 환자가 늘 것은 뻔한 이치다. 한약의 산업화는 한의사의 이익과 반비례하는 감이 있다.

평소의 논리 축적이 중요

한의사 수입의 80%를 차지하는 한약. 바로 그 한약을 양약사에 이어 양의사도 쓰려고 입질을 하고 있다. 바야흐로 한의사의 생존권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의약분업으로, 또는 의료일원화로 튈 수도 있다. 한의학의 명운이 걸린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어쩌면 구 약사법 시행규칙 제11조 제1항 제7호(한의원내 한약장 설치 조항) 삭제와 버금가는 중대한 사태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한의계는 이 문제를 주요의제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일선 회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회장이 관련 기관을 항의 방문하는 일이 전부인 것처럼 비친다.

뜻있는 관계자들은 한의학회가 나서 한방의료기관 경영모델을 조속히 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식약청이 추진하는 한약제제의 유효성·안전성 심사 면제, 양의사가 하는 한약제제 처방의 문제, 한약제제를 일반의약품으로 규정한 약사법 문제, 머지 않은 장래에 닥칠 한방의약분업 문제, 한약사의 적정 배출 수 등을 미리미리 연구해놓아야 행정당국의 유권해석이나 법개정, 또는 제도 시행에 기동성있게 대비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평소에 논리를 쌓지 않고 일이 벌어진 뒤 임총 소집이나 거리시위를 벌여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 오랜 회무경험에서 우러난 핵심적 결론이다.

김승진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