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어린왕자 신영복 선생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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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어린왕자 신영복 선생을 추모하며...
  • 승인 2016.03.0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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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옹

정유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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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지난 1월 15일 신영복 선생이 투병 중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불현듯 20여 년 전 그의 강의를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당시 대학생들에게 필독서였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유명한 저자가 학교 근처에서 초청 강연회를 연다는 사실에 흥분해 만사 제치고 강의를 들었다.
 

신영복 著
돌베개 刊

동양의 고전에 대한 강의였는데, 그의 강의는 화려하거나 유창하지는 않지만 힘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학교에서 외우기만 했었던 내용들을 우리의 정치·사회와 연관지어 설명해주었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됐었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강의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고인을 기리며 그의 책 중에 최근 발간된 『담론』을 읽어보게 되었다.

죽음을 예견이라도 했었을까? 2014년 겨울학기에 그는 자신의 연구를 집대성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강의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 강의를 녹취록으로 만들어 겸손하게도 『담론(談論)』이란 이름으로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에는 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인생을 반추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학생들에게 고전을 읽으며 전달하고 있다. 그는 꽃다운 20대 초반의 나이에 간첩으로 몰려서 재판을 받게 되었고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형무소에서 그는 삶을 포기하기보다는 삶에 대해 생각하고 깨달아가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독서와 명상으로 하루를 보내고 재소자들과 인간적인 유대를 통해 가까워지며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깊은 사색을 하게 된다. 책 반입이 까다로운 감옥에서 오랫동안 읽기 위해, 동양의 고전인 사서삼경과 같은 책들을 가까이 하였다. 이러한 경전들을 읽으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철학적으로 분석하였다.

이 책에서 자신이 자살하지 않고 수형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햇볕’이라고 밝히고 있다. 비록 하루에 잠시 동안 한 줄기 빛으로 들어오는 햇볕이지만, 따뜻하고 감사하게 느끼며 그는 현재의 삶에 충실했었던 것이다.

그는 사람을 사랑했었다. 감옥을 사회학, 역사학, 인간학 교실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그 곳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배우면서 함께 생활하였다. 좁은 감방에서 서로 몸을 밀착하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더울 때는 자신의 욕심과 내재적인 분노를 들여다보기도 하였고, 추울 때는 사람의 온기를 통해 따듯하게 살아가는 것을 고마워하기도 하였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동·서양 철학은 물론이고 정치, 경제 그리고 역사까지 꿰뚫은 그의 학식에 감탄하게 된다. 이렇게 감옥에서 쌓은 학식을 바탕으로 출소하자마자 성공회대 교수로 임용되고, 학생들에게 인문학 강의로 인기가 높아졌다. 그리고 교수가 된 이후에도 그는 교도소 재소자 모임인 대전대학 동문회, 전주대학 동문회 등에 참석하여 20년의 인간관계들을 유지하기도 하였다.

그는 붓글씨로도 유명하다. 그가 쓴 ‘더불어’는 지금도 야당의 당명으로 쓰이고 있으며 ‘처음처럼’은 국민 소주의 이름이 되어 남아있다. 그는 어릴 때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을 공부한 탓에 서예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전교도소 재소시절에 추사 김정희의 맥을 잇는 정향(丁香) 조병호 선생께서 직접 교도소를 방문해서 서도반을 이끌며 지도하셨다고 한다. 그의 서체는 부드러우면서 강하고, 글씨가 모여 잘 어울리는 것이 특징이어서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책을 읽다보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기에 사람을 20여년이나 가두어 놨을까?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도둑질 한 것도 아닌데,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을 사형시키고 무기징역을 살게 했던 시대가 있었다니 원통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 그것에 대한 억울함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동양 고전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조언해주고 있다.

그가 자주 붓글씨로 쓰는 말 중에 ‘함께 맞는 비’란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비가 오면 함께 우산을 쓰거나 내 우산 중에 여분이 있으면 빌려주면 될 터인데, 비를 같이 맞아 마음을 함께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 것이다. 물질적인 도움보다는 마음으로 자부심을 지켜주면서 어려움을 함께 하는 것이 진정으로 돕는 것이란 뜻이다.

4·13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의사회에서는 한의사협회장 선거로 열기가 뜨겁다. 후보들 모두 각자의 비전을 제시하고 자기가 선택되기를 바란다. 열기가 뜨거운 나머지 상대방에 대한 거짓 비방과 인신공격이 난무하기도 한다.

누가 선택되던지 간에 중요한 것은 회원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회원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회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결집해서 나간다면 힘이 있다. 그렇지만 혼자서 앞서 나가다가는 분열과 갈등만 초래할 뿐이다. 선거가 끝나면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 승자도 패자도 모두 한 배를 탄 동지이다. 승자는 패자를 감싸안고 소주 한 잔 기울이며 협조를 구해 마음으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신영복 선생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마지막으로 영면하신 신영복 선생님 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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