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의료인 폭행 방지법’…의료인 폭행 대안 마련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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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의료인 폭행 방지법’…의료인 폭행 대안 마련 시급
  • 승인 2016.01.2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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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호 기자

김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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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90% 진료실 내 폭행 경험… 1차 의료기관 대처 쉽지 않아


[민족의학신문=김춘호 기자] “원장실 책상유리를 명패로 파손하고 행패를 부려 경찰에 신고접수만 했습니다. 일주일 이상 잘못했다고 빌고 90대 노모까지 와서 사정해 맘이 약해져 다시 침 치료를 해줬는데 그때 관계를 끊지 못한 게 후회됩니다.”

지난 해 말 대구 모 한의원에서 환자 박 모 씨에게 염산테러를 당한 김 모 원장의 진술이다.

박 씨는 신장투석을 장기간 해 온 만성신부전 환자였다. 지난달 30일 김 원장은 2009년부터 진료한 피의자 박 씨를 상담했다. 이 과정에서 “이제는 안 낫는 겁니까? 몸이 다 된 겁니까?”라는 박 씨의 질문에 “우리 몸의 건강상태는 파도와 비슷하게 안 좋을 때도 있고 컨디션이 좋을 때도 있지 않느냐”고 대답한 후 치료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김 원장이 차팅하고 보험청구하느라 모니터를 보는 중 박 씨는 플라스틱 물총 형태의 물건을 김 원장의 얼굴에 정조준하고 다 뿌린 후 밖으로 도망쳤다. 물총 안에는 10% 염산이 들어 있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한의원 치료에 불만을 품은 40대 남성이 병원 직원들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화염병을 던져 불을 지른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서울 강남의 한의원에서 당뇨병 치료를 받아왔는데 다른병이 생기자 모든 걸 한의원 탓으로 돌렸다. 한의원 측에 그동안 냈던 치료비를 돌려달라고 떼를 썼지만 한의원 측에서 거부하자 휘발유와 칼로 다 죽이겠다고 수차례 전화해 협박했다.

이와 같은 의료인에 대한 폭력과 관련 대처방안은 없는 것일까? 지난해 10월 의협이 주관한 ‘진료실 의료인 폭행, 이대로 괜찮은가?’ 세미나에서 유인술 충남대 교수는 해외의 사례를 전하며 “미국은 타인에 대한 폭력은 매우 엄격해 폭력을 제압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국민이 동의하는 분위기”며 “일본 병원의 안전요원은 준사법권을 가져 응급실 폭력 발생 때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등의 실력행사를 하며, 병원은 폭력이 발생하면 사법당국에 철저하게 고발한다고 한다”고 발표했다. 국가적 지원을 강조한 유 교수는 “의료기관을 국가주요시설로 지정해 경찰을 상주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사법권이 있는 청원경찰을 허용하되 병원과 정부가 인건비를 반반씩 나누는 방법도 있다”고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보건의료단체에서도 의료인 폭행 방지법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2013년 8월 안전한 진료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대한한의사협회를 비롯해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 등 5개 의료단체는 ‘환자와 의료인 모두를 위한 안전한 진료환경 만들기’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의사의 90% 이상이 진료공간에서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난 조사결과는 의료인에 대한 폭행이 만연해 있음을 보여준다”며 “의료기관은 환자에 대한 진료와 치료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안전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의료인 폭행, 기물 파손 등 안전성을 위협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박완수 한의협 수석부회장은 “진료실 내 의료인에 대한 폭행사건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1차 의료기관의 경우 의료인 단독으로 개원하는 경우가 많아 폭행에 대한 대처가 쉽지 않다”며 “의료기관 내 폭행사건은 다른 환자들에게도 손해로 돌아가게 되는 만큼 국민들을 위해서 마땅히 합리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인 폭행 방지법’에 대한 입법 논의도 꾸준히 제기됐으나 현재까지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김명연 의원은 2013년 “국내 의료기관 종사자는 100만명 이상이지만, 이들을 위한 신변보호차원의 안전장치는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안전한 진료환경을 조성하여 환자와 보호자의 진료권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의료행위를 방해하는 자에 대한 처벌은 강화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료인 폭행방지법은 현재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 통과 후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이견이 없었으나, 법사위에서 같은 의료법에 묶인 명찰패용 의무화 및 미용ㆍ성형광고 규제 강화 조항의 위헌 여부를 문제 삼아 제2법안소위로 회부된 상태다.

의원들은 미용목적 성형광고 규제 강화는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고 의료인의 명찰 패용을 의무화하라는 등의 내용은 헌법합치 여부까지 판단해야 한다며 제2소위에 넘겨 심도 있게 논의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지난 12월 임시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제2법안소위에 해당 의료법이 상정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의료법에 묶인 의료인 폭행방지법도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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