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명의의안 256] 習慣性流産案-朱甲德의 醫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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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명의의안 256] 習慣性流産案-朱甲德의 醫案(1)
  • 승인 2015.12.0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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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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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63년 한의사지정업무(公醫) 그대로 忠北 청원에 配置中의 體驗으로 所謂 洋方을 兼하던 中에 姙娠 5개월 된 婦人의 말이 5개월 되면 胎兒가 내려앉아 自然流産을 네 번이나 하였다고 한다. 今般 姙娠도 5개월이 되니 氣分의 豫感이 流産되지 않을까 하는 念慮가 된다고 한다. 조심하여 子宮內診을 한 즉 子宮이 擴張이 되어 있었다. 또 流産의 徵兆는 確實하다는 생각에서 妙方을 考案하다가 脫陰症과 脫肛症에 대한 治法을 代案하여서 蔘芪湯을 投藥하였다. 이 方이 적중하여 40첩을 투약하니 經過가 良好하여 男兒를 分娩하였다. 그 다음 筆者의 妻가 이와 같은 증상이 있어서 試用하고 成功하였다. 그 다음 12년간 32人을 治療하여서 대략 성공하였다.

蔘芪湯: 人蔘, 當歸, 黃芪蜜炙, 當歸, 生地黃, 白芍藥酒炒, 白茯苓, 白朮 各一錢, 升麻, 桔梗, 陳皮, 乾薑 各五分, 甘草三分 水煎服.
깜짝 놀라기를 잘하는 者 즉 心臟이 衰弱한 姙娠婦는 蔘芪湯과 歸脾湯을 잘 合方하여 쓰는 것이 좋다. (朱甲德, ‘婦人病 및 消化器治驗方’, 「漢方春秋」, 1975, 11)

按語: 朱甲德 先生(1920~?)은 함경남도 북청 출신으로서 일제 강점기에 중동중고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物理學校를 졸업하였고, 京畿道醫生講習所를 졸업하고 醫生이 되었다. 1939년 昭和工業機械科를 나와서 항공회사의 기사로 재직했다가 해방 후 1946년에 경기도에서 실시한 제1차 한약종상시험에 합격하였고, 한국전쟁 직후 동양의약대학(경희대 한의대 전신)에 입학하여 1957년에 졸업을 하였다.

1962년에는 수도의대에서 실시한 예방의학의 보수교육을 받고 충청북도 公醫로 배치되어 청원군에서 2년간 公醫로 근무하였다. 그는 이후 미아동에 청화한의원을 개원하였다. 이 醫案은 충북 청원군에 公醫로 근무하는 기간 동안 치료했던 경험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 醫案은 5개월만 되면 습관적으로 유산되는 부인을 黃芪湯으로 치료한 경험을 적은 것이다.

蔘芪湯의 처방의 구성을 살펴보면 四君子湯, 四物湯, 甘桔湯, 補中益氣湯 등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東醫寶鑑』에서는 脫肛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는 “脫陰症과 脫肛症에 대한 治法을 代案하여서 蔘芪湯을 投藥하였다”고 단서로 삼고 있는데, 朱甲德 先生의 입방의 기본 이론적 근거였다.

「東醫寶鑑」에서는 蔘芪湯이 脫肛을 치료하는 처방으로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治肛門虛寒脫出. 人蔘, 黃??蜜炒, 當歸, 白朮, 生地黃, 白芍藥酒炒, 白茯苓 各一錢, 升麻, 桔梗, 陳皮, 乾薑炒 各五分, 甘草灸 三分. 右剉作一貼 水煎服.”

朱甲德 先生이 사용한 처방이 바로 이 처방으로서 그가 「東醫寶鑑」을 활용하였음을 증거한다. 아울러 깜짝 놀라기를 잘하는 心臟이 衰弱한 姙娠婦에게는 蔘芪湯과 歸脾湯을 合方하여 쓸 것도 소개하고 있다. 歸脾湯을 合方한 것은 「東醫寶鑑」에서 이 처방의 주치로 언급하고 있는 “治憂思勞傷心脾健忘怔忡”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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