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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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
  • 승인 2003.10.1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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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僧 草衣禪師의 일대기


산적한 일 더미에 파묻혀 정신없이 바삐 지내다가도 문득문득 ‘인생무상’을 느끼는 때가 있습니다.

대개는 조문(弔問)갔을 때 이런 감정이 많이 들곤 하는데, 망자(亡者)의 나이가 또래인 경우는 더욱 심해지지요. 세월이 약인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금 ‘망각’의 축복을 누리게 되지만, 한동안은 한층 숙연해질뿐더러 그간 무관심했던 종교 - 제 경우엔 특히 불교 - 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보곤 합니다.

한승원 님의 ‘초의’는 조선 후기의 선승(禪僧) 초의선사(草衣禪師)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책을 구입한 것은 올 여름 휴가 때 결혼한 지 15년만에 처음으로 아이들 떼어놓고 아내와 단 둘이서 합천의 해인사를 들렀을 때인데, 10월초 ‘인생무상’을 재삼 느끼고 난 후에야 서가에 들어박힌 책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초의선사는 20여년 전 대학 초년생일 때에도 잠시 주의를 끌었던 분입니다.

당시 잠깐이나마 차 마시는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초의선사는 동아리의 조종(祖宗) 격이나 다름없었거든요. 때문에 차를 통하여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볼 수 있다는 다선일미사상(茶禪一味思想)의 선승께서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선배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곤 했었는데, 이처럼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 없었던 데다 철 또한 들지 않은 탓에 그간 도통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작가 한승원 님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해남 대둔사의 일지암과 강진의 다산초당을 수도 없이 오갔고, 다산 정약용의 시문집과 추사 김정희의 문집 등 초의선사와 교유했던 당대 지식인들의 여러 문집을 통해 그의 행적을 간접적으로 추적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저자의 이러한 노력 덕택인지, 저는 책을 읽으면서 초의선사의 어린 시절과 출가 이후의 행자 및 사미시절 행적이 영화처럼 속도감 있게 전개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 소개한 천퉁성 교수의 소설 ‘역사의 혼 사마천’처럼, 당시의 정치 사회적 상황까지 입체적으로 재현되어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으니까요.

가장 인상깊은 대목은 역시 초의선사와 정약용의 2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만남(다산은 나이 상으로 초의의 아버지 뻘에 해당)이었습니다. 소설 속에는 초의 스님이 25세 되던 해에 다산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는데, 극도로 불안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다산은 초의에게 마음의 안정을 얻었고 초의는 다산을 ‘정신적인 아버지’로 극진하게 모시며 차(茶)·선(禪)·시(詩)·화(畵)에 대해 소위 ‘敎學相長’하는 것으로 나오거든요. 또 초의와 동갑이며 평생 마음을 열고 살았던 김정희가 풀옷 스님이 선에 든 모습을 보며 지은 시 - ‘고요히 앉아 있는 곳에서는 차를 반쯤 우려냈을 때의 첫 향기 같고, 오묘하게 움직일 때는 물 흐르고 꽃 피듯(靜坐處 茶半香初 妙用時 水流花開)’ - 역시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갑자기 선생님을 위시하여 J원장 및 C선배가 더욱 그리워집니다. 만나자고 전화해서 곡차라도 일배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안 세 영(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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