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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병 시평] 며느리가 주도한 장맛 프로젝트
2015년 10월 08일 () 12:11:05 채윤병 mjmedi@mjmedi.com

요즘 요리 프로그램이 대세다. 새마을식당, 홍콩반점 등 요식업계의 큰손 백종원은 방송에서 요리 레시피를 공개하면서, 누구나 한번쯤 나도 한번 만들어 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런 레시피는 요리 경험이 부족한 사람에게나 새롭게 도전해보는 음식에 있어서는 도움이 된다.

   

채 윤 병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경혈학교실 교수

진료 현장에서 매일 매일 우리는 수많은 결정을 한다. 정확한 진단을 하기 위해 환자의 작은 정보 한가지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최적의 치료를 위해 적합한 처방을 찾기 위해 애쓴다. 잘 접해보지 않은 질병이나 새로운 유형의 환자의 경우 이런 의학적 판단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럴 때에는 잘 설명해 준 매뉴얼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한의사협회, 대한한의학회, 한방병원협회, 한국한의과대학장협의회, 한의학교육평가원, 한의학연구원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표준한의임상진료지침 개발이 진행된다고 한다. 기존의 개발된 10개의 질환 (및 증상) 외에 고혈압, 중풍 등 신규 진료 지침 대상질환 22개가 1차 선정되었다. 질환 선정, 진료 지침의 개발 방법, 진료 지침 개발 시스템 등 원칙적인 부분부터 고려되고 있다.

국내 서양의학계에서는 이미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통해 국가임상진료지침정보센터를 운영하여, 각종 임상 진료지침 및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임상진료지침은 복잡한 의학적 의사 결정을 도와주기 위해 체계적인 방법으로 개발된 도구이다.

임상진료지침 개발과정에는 진료지침 주제선정, 진료지침 개발그룹 구성, 기본 진료지침 검토, 개발 계획 수립, 핵심질문 결정의 기획단계, 근거의 검색, 평가, 종합, 권고안 작성, 권고 등급 결정 및 합의안 도출의 개발단계, 마지막으로 외부 검토 및 갱신계획, 출판의 최종화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진료지침 개발의 투명성, 합리성,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체계적 문헌고찰을 비롯한 근거중심의학적 방법론의 원리가 임상진료지침 개발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임상진료지침은 진료행위를 표준화하고 규격화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학파의 치료법을 포괄하는 한의학이 임상진료지침의 형태로 재구성된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만약 임상진료지침이 백종원의 레시피처럼 많은 한의사에게 최소한으로 보장되는 효과를 가져오는 프로토콜로 작용하는 목적이라면, 임상의 다양성과 정책이 요구하는 표준화 그리고 치료행위의 자유와 최소한의 의무 사이에서 그에 따라 어떻게 하면 절충이 가능한지 충분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임상진료지침 개발 과정에서 이러한 고민이 어느 정도 공유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근거에 기반한 진료지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현재 상황에서 한의계 임상 진료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근거중심의학의 관점에서 현재 한의학의 임상 현장의 치료법의 근거는 과연 충분한가? 기존의 침구 임상 연구의 체계적 문헌고찰의 결론은 “효과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아직 없다”가 대부분이다. 이는 특정 질환에 침구 치료가 효과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지지할 만한 제대로 된 임상연구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임상연구에서 주로 다루는 핵심 주제인 환자(P: Patient), 중재(I: Intervention), 대조군(C: Control), 결과(O: Outcome) 모든 면에서 한의계 실제 진료 현장에서 다뤄지고 있는 부분을 반영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질병 혹은 증상을 통해 환자의 병을 관찰하고, 한의학적 치료 원리를 찾기 위한 변증과 진맥, 그리고 한약 및 침구 처방의 과정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고혈압이나 뇌졸중의 경우도 실제 치료의 방식은 환자의 상태나 다른 증상의 특성의 관찰을 통해 변증 및 치료가 진행되고, 한약 및 침구 처방도 환자 개인의 특성에 따라 매우 다양한 치료적 접근이 진행된다.

또한 치료의 본질적 요소가 무엇인지에 따라 대조군도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아직 어떤 치료법이 가장 효과적인지 확인할 수 있는 비교우위의 검증은 진행된 바 없다.

IBM 슈퍼컴퓨터 왓슨은 몇 년 전 제퍼디 퀴즈 챔피언을 이기고 유명해졌다. 이후, 왓슨은 수많은 자료와 논문의 정보를 바탕으로 암 치료 의사로 활동하며 어떤 치료가 가장 효과적일 지 판단하기까지 한다.

이는 최신의 업데이트되는 의학의 정보가 많아질수록 의사 한 명의 판단은 부족함을 보인다 점을 시사한다. 그러나 아직 왓슨이 모든 의사를 몰아내고, 진료실에 앉아 있을 것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의학적 판단에는 수많은 직관과 경험에 의한 휴리스틱한 과정들이 있다. 이러한 과정을 언어화된 표현으로 객관화하기 어려운 점이 존재한다.

세계최고의 서비스 기업 중 하나인 리츠 칼튼 호텔은 당초에는 종업원의 모든 행동 목록을 정하고 매뉴얼을 만들었다. 고객 대응을 프로세스로 보고 표준화를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매뉴얼에서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 계속되고, 고객 만족도가 하락하게 되었다. 그래서 호텔리어 개개인이 유연하게 대응할 것을 주문하였고, 적절한 맞춤형 대응을 통해 만족도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표준한의임상진료 지침 개발은 분명 필요하고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 있으면 초보 한의사들도 환자가 낫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함을 가질 필요 없이 자신감을 가지고 진료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필요한 충분한 임상 근거 자료들이 존재하는 지, 현재 한의학의 진료 현황이 반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한의학의 특성에 맞는 부분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송대 주굉(朱肱)은 우선 병명을 바탕으로 환자의 병(病)을 알아내고, 알아낸 병을 바탕으로 증(證)을 알아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한의학은 변증을 장점으로 하지만, 주굉은 변병을 기초로 하여 그 위에 변증을 진행하여 치료 효과를 높이려고 하였다. 한의학 질병 개념을 배제한 변증 개념은 그 의의가 퇴색하며, 현재와 같은 양방 병명만을 통한 표준임상진료지침은 한의학 병명뿐만 아니라 변증적 요소까지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표준이 잘못되면 후인들은 그 잘못을 답습하게 된다. 먼 길을 돌아 제대로 될 길을 찾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제대로 된 진료지침 개발에 대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고, 그 한계를 명확히 명시해야 할 것이다.

백종원이 제시한 레시피 그대로 만들어도 내가 만들면 맛이 별로 없을 때가 많다. 한편, 어떤 레시피들은 따라해 보고 싶은 마음이 아예 들지 않기도 하다. ‘똑똑한’ 며느리끼리만 모여 새로운 장맛을 연구하는 모습이 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선대의 장맛이 반영되어 누구나 따라 해보고 싶고 먹어 봄직한 레시피가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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