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명의의안 252] 肛門周圍炎案 大塚敬節(오오츠카 게이세츠)의 醫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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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명의의안 252] 肛門周圍炎案 大塚敬節(오오츠카 게이세츠)의 醫案(1)
  • 승인 2015.10.09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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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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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환자는 30세의 남자. 평소부터 痔核이 있어서 時時로 痔出血이 있다. 이번에는 10일전까지 痔出血이 있다가 그것이 止하니까 肛門의 부근이 아프다는 것이다.

진찰해보니 肛門周圍炎을 일으키어 이어 화농의 증세를 보이고 있다. 壓痛症도 있다. 대변은 어지간히 굳어 있다. 환자는 최근에 무리한 일을 하여 상당히 피곤하여 있었으므로 十全大補湯을 주는 동시에 소량의 大黃을 가하였다. 이를 복용하면 식욕이 나고 기분도 좋아진다 하기에 계속 복용시켰다. 그리하여 일개월 후에 내원하였는데 보니 아주 깨끗이 낫고 있었다.

痔疾로서 六個年 間 十全大補湯만 복용하는 환자도 있다. 이 환자는 늑막염이나 폐결핵을 겪은 일도 있으며 一年쯤 전부터 痔病이 있어서 수술을 받도록 권고가 있었다 하나 그것이 싫어서 나름 찾아와 진찰을 받겠다는 것이다. 영양은 그처럼 떨어져 있지는 않으나 혈색이 좋지 못하고 엉덩이에는 벌집 같은 구멍이 있고 군데군데에서 고름이 나왔다. 구멍과 구멍사이는 터널모양으로 뚫려있고 內服藥으로서는 고칠 通理가 없으므로 수술을 권하는 동시에 하여간 十全大補湯을 먹으라고 하여 이 약을 주고 왔다.

그 다음 환자는 약을 갖다 먹을 뿐 한번도 내원 한 일이 없다. 그런데 알아보니 요즘은 全治까지는 안 되었어도 일을 잘하고 何等의 疼痛도 없다는 것이다. (「醫林」제78호, 1969년)

按語: 大塚敬節 先生(1900∼1980)은 구마모토의전(熊本醫傳)을 졸업하고 1929년 유모토 큐우신(湯本求眞 1876∼1941)에게서 사사받아 한방의학을 배웠다. 1931년부터 한방 부흥의 선구적 활동을 계속하고, 1950년 일본동양의학회를 창립 회장,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4년 기타사토(北里)연구소 부속 동양의학종합연구소를 설립하여 초대 소장에 취임하였다.

그는 傷寒論을 중심으로 하는 古方硏究에 뛰어났다. 위의 醫案은 「醫林」제78호에 게재된 大塚敬節 先生의 「十全大補湯에 對한 經驗」이란 논문의 일부 내용이다. 그는 그의 스승이 傷寒論處方을 고집하고 後世方에 속하는 十全大補湯은 사용하기를 극히 꺼렸음에도 의외로 좋은 효과가 있었던 것을 몇 개의 醫案으로 정리했는데, 이것이 그중의 하나이다.

그는 十全大補湯은 四君子湯合八物湯에 桂枝와 黃芪를 가한 것으로서 그 출전은 「和漢局方」으로 하였다. 大塚敬節은 이 처방을 高血壓症, 神經炎, 肛門周圍炎, 寒性膿瘍, 尋麻疹, 肝硬變症 등에 효과를 거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醫案은 肛門에 나타난 痔出血, 壓痛症, 穿孔 등의 증상을 염두에 두어 사용하여 치료의 효과를 거둔 것이다. 넓게 보면 이러한 증상들은 증상의 출현 후 회복이 되지 않아 환부가 아물지 않고 그대로 이어진 상태에 해당되는 것으로 ‘氣血의 不合’으로 생각될 수 있다.

오랜 허로의 증상, 수술 후 체력의 저하, 노쇠, 품부박약 등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증상으로서 後世方에서는 雙和湯症, 八物湯症, 十全大補湯症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東醫寶鑑」에서는 이러한 증상에 八物湯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大塚敬節 先生은 十全大補湯을 활용하고 있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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