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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의 진료는 얼마나 변화해 왔는가?; 다양한 형태의 기록 보존의 의미
기고: 강연석 원광대 한의대 교수 ‘사라져 가는 기록들’
2015년 09월 23일 () 10:52:33 강연석 yeonseok.kang@gmail.com

2013년 대한한의사협회에서 발간한 한의사 100년사를 보면, 1974년까지 발급된 한의사 면허번호는 2487번으로 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받은 면허증은 아닌 것으로 예상된다.

   

강 연 석
원광대 한의대 의사학교실yeonseok.kang@gmail.com

경희대에 이어 1972년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개교 후 첫 신입생으로 받은 73년 학번들이 졸업한 1979년까지는 매년 각각 64, 83, 41, 54, 84명 등 두 자리 숫자만이 면허증을 받은 반면, 1980년 이후에야 121, 147, 179, 168명 등으로 한 해에 백명 대의 면허보유자를 배출하게 되었다.

1986년 한의사 면허번호는 4000번대를 돌파(4195명)하게 된다. 그리고 1차 한의약발전의 토대 마련을 위한 대정부 운동(일명 한약분쟁) 직후인 1994년에 면허번호는 8000번대(8508)를 넘어섰고, 2005년 1만6000번대(1만6184)를 돌파하였다.

즉, 한의사제도가 생긴 1952년 이후 약 20년 만에 2000여 명을 넘은 한의사 숫자가, 10여 년 뒤인 1986년에 두 배가 증가하여 4000여 명을 넘어섰고, 다시 10년 만에 8000여 명으로 늘어났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한의진료의 모습은 크게 변화하였을 것임은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대학교육을 받은 선배들이 그렇지 않은 한의사를 구분하려고 했던 것이나, 6년제로 전환된 이후의 졸업생들이 이전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선배들과의 차별화를 이야기했던 것을 되짚어보면 진료의 모습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몸소 체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80년대 이후 한의진료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한 첩, 두 첩 씩 첩지에 포장하여 조제한 첩약을 가정에서 직접 달여 먹던 투약 방식에서 벗어나, 한 제를 기본으로 하여 원내의 탕전실에서 전탕기를 이용해 탕전한 한약을 복용하는 방법으로 투약 형태가 전환된 것이다.

아울러 1986년 이후 국민건강보험에 한의진료가 포함되어 시술비를 환자가 직접 지불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보험공단 또는 보험사를 통해 지불받는 형태로 바뀐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내의 탕전실에서 전탕하는 패턴은 현재 어느 정도 보편적인 형태일까? 2014년 한국사회정책연구원(원장 박순일)에서 제출한 “한의원 경영수지분석(6차) 연구”(연구책임자 안종주)에서 실시한 설문조사(445명 응답)에서는 원내에 탕전실을 갖추고 있는 곳은 전체의 90.6%라고 응답하였다.

이를 개원 연차별로 분석해보면 10년 이상의 한의원에서는 98.2%가 탕전실을 갖고 있다고 응답한 반면, 5년차 이하의 한의원에서는 81.3%만이 원내에 설치하고 있다고 응답하였고, 원외탕전실조차 이용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곳이 무려 4.8%에 달하고 있다.

또 10년 차 이상의 한의원에서 39.4%가 인테리어 등의 시설재투자를 하였고 평균 3342만원을 지출했다고 하였는데, 10년 이내에 시설재투자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84.7%에 달하였다. 이는 이미 많은 한의원들이 크든 작든 다양한 형태로 한의원의 구조와 시설을 바꿔왔고 계속해서 바꿔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들이다.

또한 침시술 형태와 관련하여 개원 5년 차 이하에서는 51.8%가 근육의 기능과 구조를 감안하여 아시혈에 시술하고 있다고 응답한 반면, 경혈 및 경락이론(사암침, 오행침, 태극침, 체질침 포함)으로 체침을 놓는 경우는 44.1%라고 하였다. 개원 10년 차 이상에서는 근육과 관련하여 27.2% 및 경혈 및 경락이론 61.6%라고 응답하여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아울러 추나시술은 응답자의 41.5%가 직접 시술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199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척추신경추나의학회(회장 신병철)의 전국적인 워크숍이 보급되었고, 2000년대 이후에야 각 한의과대학에서 추나학이 강의되기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추나를 시술하고 있는 한의사의 숫자가 늘어났음도 알 수 있다.

2005년 중국은 제1차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대표작의 신청사업을 시작하여, 2006년 12월에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보호 및 관리의 잠정적인 방법>(문화부령 제39호)을 발표하였다.

2006년 국무원에서는 중국 제1차 국가급 무형문화유산목록을 공포하였으며, ①중의 생명과 질병의 인지방법(생리와 병리), ②중의진단법, ③중약포제기술, ④중의전통제제방법(처방제형), ⑤침구, ⑥중의정골요법, ⑦동인당 중의약문화(同仁堂中醫藥文化), ⑧호경여당 중약문화(胡慶余堂中藥文化), ⑨장의약(藏醫藥)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2007년에는 무형문화유산 전승인 인증제도가 시행되어, 2008년에는 <국가급무형문화유산 프로젝트 대표전승인 인증 및 관리에 대한 잠정 시행방안>이 발표(문화부령 제45호)되었고,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프로젝트 대표전승인 명단을 공포하였는데, 이에 2011년까지 전통의약류 프로젝트의 대표전승인 53명(전체 1488명)이 포함되었다.

특히 UNESCO의 권고사항에 따라 발표된 2011년 6월 11일 <무형문화유산법>에는 전통의약을 명확하게 무형문화유산의 범위에 귀속시켰다.

   

현재 중국은 이에 따라 세계급, 국가급, 성급의 분류에 따라 다양한 무형문화유산을 제도화하여 등록하고 있는데, 심지어 연변의 조선족무형문화유산 중 농악무는 세계급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으며, 사상의학의 중심지 중 한 곳인만큼 朝鮮族醫藥(신청단위 : 延邊朝醫醫院)을 성급 무형문화유산으로 보호하여 다양한 기록을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우리는 무심코 학창시절에 배워온 것, 또는 선배들로부터 들은 것으로부터 ‘옛날’이라는 기억을 더듬게 된다. 오랜 고문헌을 읽다보니 수십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에 둔감해지기도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잠시 생각해보면 아찔할 때가 매우 많다.

‘조선대침’은 일본 사람들이 들여온 ‘호침’과 대비하여 쓰던 표현이다. 일본에서도 100여 년 전 사용되던 침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쓰던 바늘 굵기의 침을 썼던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쓰는 스테인레스 재질의 코팅된 호침은 불과 몇십년 사이에 일어난 큰 변화 가운데 하나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2005년 이후 한국한의학연구원(원장 이혜정)에서는 한국침구치료기술에 대한 조사작업을 해왔고 나름의 성과를 낸 바 있다.

이 조사작업을 통해 한의사 제도가 정착하기 이전 또는 초반에 시술되던 다양한 침법들이 발굴되어 기록되었지만, 오히려 한의사 면허제도가 시행된 이후 한의사들에 의해 시술된 한의진료에 대한 체계적인 분류와 기록 작업은 계속하여 추진되지 못한 상태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인구학적인 분포를 분석하고, 지역과 분야별로 기록물과 당시의 경험과 기록을 제공해줄 인물을 찾아야 한다. 고령이기는 하지만 선배님들을 직접 방문하는 것을 통해 과거의 진료방법과 치료기술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발굴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76년 발간된 방약지침이 있다고 하여, 고 맹화섭 선생님의 진료방법이 온전히 남아 전수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동양의학회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고, 배원식한의원이 운영되고 있다고 하여 고 배원식 선생님의 진료가 그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있지는 않다.

고 맹화섭 선생님의 자제분께서는 이미 70을 바라보는 고령이지만, 과거 선친의 진료활동과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또한 배원식 선생님의 제자들 역시 다양하게 그 분의 모습을 증언해줄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진료기록이 합리적인 미래상을 담보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과거의 진료기록물들은 해당 시기의 현장에서 치열한 생존의 모습을 담고 있고, 그 모습 자체로 미래 세대들에게 줄 수 있는 많은 교훈을 갖고 있다. 역사 이래로 인류는 성과와 실패의 모습 모두를 기록에 남기려는 노력을 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국가기록물에 대한 수집과 정리는 법령에 의해 뒷받침되어 이루어지고 있다.

체계화된 진료의 경험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한의학 분야에서 100년, 1000년 전의 기록들보다 20년, 30년, 50년의 경험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확신한다. 1980년을 전후로 한의사 면허를 얻은 선배님들이 어느 새 환갑이 되었고, 연락 가능한 분들의 숫자는 1000여 명에 불과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1970년대 이전에 면허를 받으신 분들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보존하는 일은 매우 시급한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작업은 단발형 대형 프로젝트로 추진하기 보다는 규모가 작더라도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공공의 자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은 집단에 대한 기록과 데이터를 정기적으로 기록하고 공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장기 사업이 가능한 안정적인 기관에서 꾸준히 사라져가는 기록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기본적인 연구 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체계를 갖추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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