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정의 도서비평]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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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정의 도서비평]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독서
  • 윤희정
  • 승인 2015.09.1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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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비평 | 「페미니즘의 도전」

 
내 삶의 등불, 가스통 바슐라르는 일찍이 비평은 텍스트 분석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가 함께 벌이는 몽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슐라르는 ‘이중의 독서’를 언급하며, 몽상은 성실한 텍스트 다시 읽기에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그를 통해 참다운 몽상은 최초의 경험 즉, 인상이 걷힌 후 가능하며, 그 때 비로소 사물과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내 일상의 몽상에 그는 깊은 영감을 준다.

정희진 著
교양인 刊

결국 올바른 비평(그리고 몽상)은 작가와 독자의 공감에서 시작된다. 진지한 독서와 비평, 작가와 독자의 연대, 몽상과 혜안. 이들은 훌륭한 작가에 따라온다. 1+5를 선사하는 뛰어난 작가, 훌륭한 텍스트를 앞에 두고 잠을 이루기란 정말 쉽지 않다.

밤잠과 맞바꾸는 독서는 늘 긴장되고 즐겁다. 나는 지금, 하나를 알다 두 개를 알게 되는 기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며 그간 내 자신 얼마나 좁은 사유 틀에 갇혀 세상을 이해했는지(또는 이해하지 못했는지) 자각하는 가슴벅참을 이야기하는 중이다. 깨달음과 앎의 행위는 삶을 통해 끝없이 계속될 테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성찰의 희열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개인의 가장 값진 체험이다.

정희진의 글은 성찰의 시간, 자각의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한 칼럼으로 그를 알게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슬픔에서 헤어나질 못해 시묘를 하고서야 가까스로 위로받았다는 이야기. 짧은 칼럼을 읽으며 얼마나 펑펑 울었던지, 책상 위의 휴지를 새로 넣어야했다.

이 세상에 나만큼 엄마를 사랑하는 딸이 또 있다는 놀라움은 다음 문제였다. 그의 엄마를 향한 절절한 사랑으로 먹먹해진 가슴을 그 날, 나는 엄마와 통화를 하고 풀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페미니즘의 도전」을 만났다. 책을 펼치자마자 다시 한바탕 눈물을 쏟고 말았다. 서문의 ‘엄마, 심장이 뛸 때마다 보고 싶어요’라는 구절에서였다. 그와 나의 인연은 이처럼 흥미롭게도 글 이전에 ‘엄마’로 형성된 공감대 위에 맺어졌다. 그와 내가 함께 벌이는 바슐라르식 몽상은 우연히 ‘엄마’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건 그렇고, 다행히 나의 엄만 내 옆에 건강히 살아 이 글을 읽고 계신다.

선량한 평론가 정문순은 우리 사회의 모성에 대한 집착과 모성 뒤에 은폐된 정치성을 장황히 서술한 적이 있다. 정문순은 그 글에서 여성의 타자적 삶을 조장하는 관습적 모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여성 개개인이 각자 고유한 체험 위에서 주체적 삶을 살아가야함을 역설한다. 모성은 사회학자 조한혜정의 오랜 연구주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여성학 1세대이기도 한 조한혜정은 남성 중심적 세계관의 산물로써 우리 사회의 억압구조가, 뚜렷이 드러나기보다 일상의 사소한 사건에 누적되어옴을 일깨워준다. 조한혜정에 의하면 ‘모성’은 문화적인 것으로, 독점되어서는 안 되는 남녀가 공유해야하는 ‘경험’이다.

이러한 작업선상에 있는 정희진에게 여성학이란 남성에게 저항하기 위함이 아니라, 남성의 세계관과 남성의 경험 위에 세워진 문명, 인간의 보편적 역사를 투명하게 인식하는 작업이다. 정희진의 여성학(여성주의)은 여성뿐 아니라, 중심질서에서 소외되고, 주변인인 모든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새로운 인식방법이다. 바로, 바슐라르가 말한 불연속적이고 창조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지점이다.

「페미니즘의 도전」으로 여성학과 여성운동에 관한 오해를 깼다. 정희진이 소개하는 여성주의는 단순한 성적평등이 아니라 사회정의를 지향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권유대로, 불의를 박대함로써가 아니라, 주체의 앎과 각성을 통한 정의추구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모르는 가운데 외부로부터 강요당한 인식틀을 성찰하고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이라면, 단연코 이 책을 놓치지 말아야한다.

보편적 이성의 끈을 놓지 않는 하버마스에 반기를 든 리오타르는 이성의 계몽을 신랄히 비판하며 포스트 모던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진정한 계몽을 필요로 한다. 진실로 삶을 살아내는 자만이 죽음을 말하고, 올바른 계몽위에서 탈계몽을 부르짖을 수 있듯이, 주체의 해체는 주체의 바른 정립 이후에 가능하다. 하나의 각성한 주체들이 누적될 때 우린 비로소 다양성과 이질성의 세계를 논할 수 있는 것이다. 혼돈 그 자체인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를 총명하게 이끌어가는 것, 「페미니즘의 도전」 독서가 필요한 이유다.

능력 있는 독자를 바란 데리다처럼, 여기 우리 사회의 한 진정한 계몽가가 ‘존재의 전이(정희진의 표현을 빌리자면)’를 꿈꾸는 영특한 독자를 기다린다. 정희진을 만나며 각성의 기쁨, 창조적 인식의 희열을 맛보는 행운을 쥐어보자. <값 1만4000원> 

윤희정 / 광주광역시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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