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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정의 도서비평] 우리들이 만들어가는 텍스트
도서 비평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1, 2, 3」
2015년 07월 23일 () 13:54:38 윤희정 mjmedi@mjmedi.com

“오 빌어먹을! 늘 똥 마려운 듯한 그대, 성급한 독자여! 속물이여! 개새끼여!” 평생을 살아도 듣지 못할 격한 욕설을 듣고야 마는 나는, 또 한 명의 성급한 독자인가? 그 보다, 오랜 독서의 세월을 살아왔기에 작가가 시키는대로 할 만큼 순진하지 못한 영악한 속물(위는 작가 이인성이 그의 작품 서두에 독자에게 눈을 감으라 하고는, 감지 않는 독자에게 퍼붓는 욕설이다)? 아님, 엄마가 나를 부르는 애칭, 진정한 강아지?

   

조혜정 著
또하나의문화 刊

김윤식의 어느 평론에서 보듯,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소설은 허구다’라고 언급한 이래, 그 룰을 깨고 작가와 작중화자의 혼재는 자주 시도되었다. 따지고 보면 작가적 삶과 느낌을 밑바탕으로 써내리는 것이 소설이므로 모든 소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향한 도전이었다 할 수 있겠다. 매 작품 앞에서 ‘이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가 또는 허구인가’라는 물음은 부질없다.

그러나, 소설 전체가 드러내놓고 작가의 언설로 채워진 경우는 특별하다. 전위적 작가의 대명사답게 이인성은 「당신에 대해서」로 소설의 오랜 틀을 흔들어놓는다. 그를 마주한 독자 역시 혼란을 겪으며 낡은 독자의 틀을 벗는다. 텍스트와 조응하는 주체적 독자로 변신하여, 결국 소설을 읽기 이전과 이후, ‘실오라기 간격만큼이나마 달라지게 됨’을 체험하고야 만다(이 소설을 읽는 모든 독자가 그렇게 되길 나는 진심으로 희망한다).

소설만이 아니다. 어떠한 글을 계기로, 접하기 전과 후의 ‘나’가 확연히 달라짐을 자각하는 진귀한 경험은 복된 인생의 증거다. 텍스트와 대면하여, 텍스트는 끊임없이 사유를 조장하고, 궁극엔 비로소 익숙한 내 사유문법에서 벗어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데, 그러한 책들의 최후 페이지를 덮는 순간엔 어김없이 한숨이 뿜어져 나온다. 저 밑바닥, 영혼에서 길어 올려지는 안도의 숨. 이 텍스트를 만나지 못한 채, 삶이 계속되었더라면… 아찔함에서 비롯한 기나긴 숨이다.

조혜정의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1,2,3 」이 바로 그러한 텍스트다. 당시,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적지않은 분량을 밤을 지새워 읽었다. 우선, 놀랍도록 풍부한 그녀의 학식은 책을 놓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다. 이링페처, 그람시, 비트겐슈타인, 토마스만, 필립 로스, 하버마스, 마샬 버만, 기든스, 마르쿠제, 베버, 료타르, 데리다, 미셸 푸코, 앙리 르페브르, 프란츠 파농… 보기만 해도 현학적인 인명 나열에 주눅들 내가 아니지만, 선구적인 사회학자, 저명한 철학자, 뛰어난 작가의 진취적 사상을 음미하는 재미가 크다. 평소 조혜정의 글을 즐겨 읽으며 그 사상과 철학을 잘 알지만, 단언컨대, 이 책은 그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텍스트다.

서양학문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문화와 사회를 풀어내는 독립성은 그의 학자적 양심의 토대다. 숨김없는 강단 이야기로 엿보는 그의 교육자적 헌신과 열정, 학문적 동지들과 이웃을 향한 진실된 애정, 한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는 각성자의 면모는 가슴을 울린다.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사실 나는, 그 날 잠을 건너뛰고 말았는데, 주옥같은 텍스트 앞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 아니겠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의 장(場)을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참된 페다고지(가르침과 배움)에 대한, 무엇보다 탈식민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한 인간으로서 깊은 사유와 실천의 열쇠를 주는 텍스트이다. 감히 말하건대,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과 후가 분명 달라졌다. 텍스트, 작가(조혜정), 나(독자)의 강력한 조응으로!

결국 텍스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해석을 기다리는데, 이는 독자가 텍스트를 마주하여 새로운 삶의 ‘저자’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즉, 앎을 통한 실천적 삶.

다시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리자. 작가 이인성이 그토록 치열하게 고민했던(그래서 ‘전위’라는 딱지가 붙고만) 텍스트를 사이에 둔 작가와 독자의 공감, 조응과 협업은 이렇게 새로운 삶의 창조로 이어진다. 이는 미셸 투르니에가 ‘흡혈귀’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온 몸짓으로 설명하느라 애썼던, 우리의 ‘텍스트’ 이야기이다.

여기 텍스트가 있다. 텍스트는 끊임없이 다시 쓰여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은 독자의 새로운 앎과 전폭적인 성찰 이후 풍요로운 삶으로 쓰여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훌륭한 텍스트에 대한 예의이고, 훌륭한 텍스트의 바람이다. 여기, 준비를 마친 작가(조혜정)와 준비에 임한 독자(우리)가 있다. 또 하나의 진정한 텍스트, 그건 바로 지금 우리들이 만들어갈 세상이다. 우리 몫으로 남겨진, 펼쳐갈 각자의 삶이다. 공백의 텍스트가 저 앞에서 기다린다. 저기 텍스트가 있다.  <값 6800~8000원>

윤희정 / 광주광역시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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