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문헌에서 읽어 낸 초기 경맥 형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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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문헌에서 읽어 낸 초기 경맥 형성사
  • 승인 2015.07.1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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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희 기자

홍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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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 한의학의 봄

[민족의학신문=홍창희 기자] 한의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자인 저자 정우진 박사는 “이 질문은 철학적 질문으로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한의학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기의 존재론이나 동양의 사유방식과 같은 것들에 의거하지 않고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특정한 시대정신을 배제하고는 한의학의 시대적 전개 양상을 철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정우진 著
청홍 刊
저자에 따르면 철학자들은 사학자가 정리해 둔 사실, 사회학자 등이 보고한 현상 등에 의거해서 사변을 전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초기 한의학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초기 한의학사는 한의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보다 가까운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란다.

▶마왕퇴 고분 발굴의 의미

1973년과 1983년 중국에서는 충격적인 발굴이 있었다. 이곳에서 발굴된 문헌들로 인해 기존의 초기 한의학사는 전면 개정돼야 했다. 바로 마왕퇴(馬王堆) 고분의 발굴이었다. 발굴 문헌 중에는 고본 주역, 고본 노자와 역사, 지리, 군사, 철학, 천문, 점복과 의약 등에 관한 저술이 있었다. 그 중 의학과 양생 관련 문헌은 모두 14종이었다.

기혈이 통하는 기본 통로인 경맥. 이 발굴 이전까지 경맥의 초기 형성사는 근거 없는 추정에 지나지 않았다. 이 때 땅속에서 문헌이 발굴된 이후에야, 초기 경맥 형성사는 억측의 수준을 넘어설 수 있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발굴 문헌의 내용은 충격적이었고, 그동안 제기됐던 가설의 문제점을 폭로했다.

이 책은 초기 한의학사에 관한 것이다. 마왕퇴 고분 발굴 이후 3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한의학계는 이 분야에 대한 독창적 연구가 부재하며, 이것이 철학자로서 초기 한의학사를 직접 연구하게 된 계기라고 저자는 밝혔다. “오랫동안 형성돼 온 경맥의 성립 과정을 모르는 채, 경맥의 실체를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일까.”

▶한의학의 탄생

한의학의 탄생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기원전 2300~400년 전 중국에는 두 종류의 전문의가 있었다. 한 집단은 뜸법파였고, 다른 집단은 일종의 외과수술용 돌칼을 사용하는 폄법파였다.
뜸법파들은 뜸을 떠서 한증을 제어했고, 폄법파들은 날카로운 돌칼로 종기를 제거했다. 두 집단이 임상경험을 누적시키고 있을 때, 철학자들은 동양과학의 기초이론을 다듬어 나가고 있었다.
동양과학의 기본적 지향은 관련 있는 것들을 하나로 묶어나가는 것이었다. 서양에서도 유별(類別, categorization)은 질서지움의 기본이었지만, 동양의 유별은 독특했다. 전국 말부터 전한기에 활동했던 일군의 학자들은 유별을 이론적으로 다듬어 나갔다. 유별은 관계있는 것들을 묶는 방식이었으므로, 관계에 대한 규정이 시도됐다. 인과라는 관계지움은 보편자가 현상을 만들어내는 방식, 즉 질병이 증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이었고, 서양 지성 전통의 중요한 관계지움이었다.”

▶뜸법파, 폄법파, 침법파의 세가지 혁신

이 책에서 말하는 경맥이야기는 뜸법파와 폄법파 그리고 침법파가 이룬 세가지 혁신과 그런 혁신에 수반됐던 작은 변화들에 관한 아주 오래전 이야기다. 경맥체계가 형성되고 완성되는 사이에 세 번의 혁신이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최초의 혁신은 경맥체계를 창안한 뜸법파들에 의해 이뤄졌다. 뜸법파들은 철학자들의 논리를 수용했다. 폄법파들은 사혈을 창안해 냄으로써 두 번째 혁신을 만들었다. 이 사이에 진단법이라는 작은 혁신이 수반되었다. 폄법파들의 병인론인 사기의 침입은 맥동의 이상이 질병을 상징한다는 생각과 잘 어울렸다. 침법파들은 병리적 영역에 머물러 있던 경맥을 생리적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이것이 세 번째 혁신이었다.”

저자 정우진 교수는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경희대 한의철학협동과정에서 공부했다. 경희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경희대 철학과 연구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노자상이주역주’가 있으며, 공역서로 ‘강설황제내경1’ ‘강설황제내경2’ ‘한의학의 원류를 찾다’ ‘몸의 노래’ 등이 있다. <값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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