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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의 도서비평] 철학으로 저울질한 먹고 마시는 행위
도서 비평 | 「철학이 있는 식탁」
2015년 07월 02일 () 11:17:39 안세영 mjmedi@mjmedi.com
 
온 나라가 메르스(MERS)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불안한 마음에 사람 많은 곳을 가기 꺼려하는 탓인지 산업계 전반에 불황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는데, 아무튼 이 불행한 사태가 조속히 진정되기를 바랍니다.

   

줄리언 바지니 著
이용재 譯
이마 刊

그런데 세상만사라는 게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는 법!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도 분명 인기를 누리며 호황에 겨운 분야가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물론 그 중의 으뜸은 마스크 제조업체와 더불어 소위 ‘먹방’ 혹은 ‘쿡방’이라 불리는 TV 음식 관련 프로그램일 겁니다.

메르스로 인해 가뜩이나 건강에 경종이 울려진 마당에, 외출을 자제하며 집에 틀어박혀있는 사람들이 뭘 보겠습니까? 맛좋고 영양가 높은 - 당연히 면역력도 향상시키는 - 음식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철학이 있는 식탁」은 영국의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Julian Baggini)’가 쓴 원제 「The Virtues of the Table」을 우리말로 번역한 책입니다. 원래의 제목을 그대로 옮긴다면 ‘식탁의 미덕’이라 해야 할 듯한데, 설마 출판사에서 현 대통령의 모호한 국정철학에 대한 풍자 목적으로 이렇게 바꾸지는 않았겠죠?

“한 끼 밥상을 차릴 때도 수많은 생각과 고민이 필요하거늘, 하물며 중차대한 국사를 도모함에 있어서는 오죽하랴”라는 식으로 말이죠. 상상이 엉뚱한 방향으로 너무 많이 나갔나요? ^^

저자는 가장 사소하고도 일상적인 먹고 마시는 행위를 ‘철학’으로 저울질하며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들을 늘어놓습니다. 음식물 원재료의 생산에서부터 최종적인 요리로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심도 있게 추적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거리들 - 유기농·친환경·동물 복지·지역생산 재료·공정 무역·프랜차이즈 등 - 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것이지요.

읽노라면 자급자족이나 로컬 푸드가 최고라는 생각은 그저 막연한 환상임을 깨닫게 되는데, 이런 깨우침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랍니다.

책은 모두 4부 23장으로 구성되는데, 지은이가 철학자이기 때문일까요? 각각 ‘모임’ ‘준비’ ‘먹지 않기’ ‘먹기’ 등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도통 모호한 소제목 아래, ‘살펴보라’ ‘레시피를 찢어 버리자’ ‘아침 뷔페에 저항하라’ ‘은혜를 표현하라’ 등 캐치프레이즈와 같은 문구를 장(章)의 말머리로 삼았더군요.

물론 뒤따르는 글은 저자의 선전구호를 뒷받침할만한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글쓴이의 목적은 그저 유행으로만 소비되는 음식을 정치적·사회적·철학적으로 깊이 성찰해서 보다 나은 삶을 꾸리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재치·유머·비꼼 가득한 문장으로 읽는 재미를 한껏 제공하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각 장의 마지막에 밝힌 저자의 건강 레시피는 우리가 따라 하고 싶어도 문화가 달라서인지 생소한 것들이 많다 - 몽킨스(monkins)·후무스(hummus)·마르미타코(marmitako)·그래놀라(granola) 등 - 는 사실입니다. 이 또한 지은이의 주장처럼 레시피를 찢어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철학은 애매한 사변(思辨)이 아니라 수많은 지식을 바탕으로 삼은 지혜입니다. 해서, 저자거리의 장삼이사에게도, 국정을 책임진 고위층 인사들에게도 꼭 필요한 게 철학인데…. (값 1만7000원) 

안세영 / 경희대 한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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