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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정의 도서비평] J에게 보내는 편지
도서 비평 | 「마당깊은 집」
2015년 03월 19일 () 10:21:51 윤희정 mjmedi@mjmedi.com

가난한 친구, J에게
J,
어제 퇴근길은 어깨에 눈을 맞고, 내일 출근길은 목련을 기대하는 좀 알 수 없는 계절이구나.
떠나는 계절은 자리뜨기 아쉬워 궁둥이를 뭉그적대고, 다가오는 계절은 성급히 구둣발을 서두르고.
차가운 겨울을 따뜻한 마음을 지닌 너는 잘 견뎌냈을 거야. 네 소박한 방의 창문너머로 목련철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면서.
   
김원일 著
문학과 지성사 刊

네 단정하고 간소한 침대 머리맡에는 전날 밤 읽다 멈춘 책이 펼쳐진 채로 뒹굴고 있겠지. 책을 덮지 않는 너의 오랜 버릇은 여전할 거야. 눈에 선하구나.

J, 우린 얼마나 긴 시간 책과 함께였었니. 너는 아주 오래전 나를 책의 신비로운 세계로 안내했지. 늘 꼭 붙어, 얼굴을 각자의 책에 파묻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곤 했었지. 창밖의 해가 어느새 뉘엿뉘엿지고, 사방을 붉은 물 들일 때, 우린 비로소 얼굴을 들고 붉은 해가 지나가며 발갛게 흔적을 남긴 상기된 서로의 뺨을 보며 웃었지.
아…. 그리운 시간들이여!

오늘처럼 길었던 겨울과 봄이 만나는 지점 어느 밤이었던가.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을 읽고,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아냈어.
인간적 ‘삶’이 결핍된 채, 궁핍하고 비참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작가와 그의 가족, 그리고 이웃들(이 소설은 작가 김원일의 자전적 소설임). 가난한 사람들의 핏기없는 일상과 그들의 시커멓게 탄 가슴으로 책은 온통 하얗고, 또 까맸어.

읽는 동안 내 마음도 타들어가, 내 심장은 붉게 단풍들고, 급기야 네 앞에서 빨간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어. 창백하고, 어둡고 그래서 엄숙하기까지 했던 그 밤의 그 책! 작가의 체험은 작가를 넘어 나에게까지 깨달음을 주었지.

너는 잘 알잖니, 내가 얼마나 내 안의 세계에 머무르며 도통 바깥세상에 무지한지를. 그날 밤의 독서와 이후 무수한 문학적 경험은 내게 충격과 고통, 정신적 성장을 가져다주었어.

비록, 하나의 책을 읽어내야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는 식의 지극히 유아적인 학습형태를 띄긴 했으나. 하룻밤의 독서가 이어져 나는 세상의 고통에 대해, 인간의 어둠에 대해 눈을 뜨게 됐고, 덩달아 고민이 많아졌지. 말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어.
문학적 깨달음들은 나의 비문학적 세계를 새롭게 빚어냈어.
그리하여 지금, 나는 잘 안단다.
어둠을 품은 밝음이라야 진정하게 빛나는 것임을.
어둠을 진실로 안 자만이 밝음을 온전히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을!
눈물로 지새운 끝에 맞는 새벽빛이 얼마나 벅찬 것인지. 이제 비로소 안단다.

책은 너의 어둠과 아픔도 보여줬고,
책을 읽으며 너란 사람 더욱 이해하게 되었어.
그리고, 나날의 독서가 이어져 이제는,
네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가치있고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지.
나의 가장 오랜 벗이여,
네가 없으면 내가 아니고 말,
나의 가난한 친구, J.
소유하지 않는 너 앞에 서면, 내가 가진 찬란한 것마저도 초라해지고 마는... 나의 아름다운 친구여.
오늘 밤은 네가 유난히 그립구나.
목련이 피는 환한 날 꼭 얼굴보자.

-봄의 초입에서, 진실한 벗이 

윤희정 / 광주광역시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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