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학은 한국과 일본에 어떤 방식으로 수용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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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학은 한국과 일본에 어떤 방식으로 수용됐나
  • 승인 2015.03.1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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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은

김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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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일본 교토대학 개최 ‘전통의료문화 국제심포지움’ 참관기

동아시아 교류라는 관점에서 논의 진지
전통의료문화 국제심포지움이 지난달 22일 일본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 과학사연구실(전통의료문화연구회) 주최로 같은 대학 인문과학연구소 대회의실에서 개최됐다. ‘동아시아 「醫」의 聖典’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심포지움은 한국과 일본 양국 학자들의 발표 및 토론이 1,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김 태 은
도쿄대학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
먼저 고소토 히로시(小曾戶洋) 일본 기타자토대학 양의학종합연구소 의사학연구부 부장(일본의사학회 이사장)의 ‘일본의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醫心方의 역사와 의의’에서는 「의심방」이 일본에서 국가적으로 소장된 의학 텍스트라는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의심방」 이전 일본의 의학체계가 어떠했는지에 관한 설명이 있었다.

이를테면 일본에 중국의학이 전래된 기원을 논한 점이다. 고대 중국의 전통의학은 동아시아 국가들로 전파되어 각 나라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했는데, 이 과정에서 6세기 무렵까지 중국의학이 다른 문화와 함께 일본에 전래되었다는 것이다.

7세기부터는 일본 사절들이 수당시기의 중국으로 파견돼, 의학 업무에 요구되는 전문성을 포함해 경혈, 뜸, 약물학 등을 공부하면서 본격적인 학문 수용이 시작된 것이라 한다.

마야나기 마코토(眞柳誠) 일본 이바라키대학 인문학부 교수의 ‘중국古醫籍의 일본적 수용과 그 전존본(傳存本)’에서는 한의학을 국가지역별로 나누어 藏醫, 蒙醫, 中醫, 南醫, 韓醫, 漢方이라는 용어로 설명한 것이 특징이었다.

이것들이 중국 고의적(古醫籍)이라는 줄기에서 뻗어 나온 나무의 잎과 같다는 비유를 통해 각국의 공통점이 일원적 이해에 있음을 밝혔다. 또한 이것들의 차이점에 해당하는 지리, 역사, 풍토, 문화에 따라서 다원적 이해가 필요함이 강조되기도 했다.

마코토 교수는 아울러 당(唐), 신라, 일본 중세 각국의 의관(醫官) 육성의 교재에 관해 소개하였고, 「동의보감」에 중국서적이 인용된 횟수를 열거하면서 가장 많이 인용된 상위 10서를 보고하기도 했다.

결론으로 일본, 한국, 베트남이 명대 남방의학의 수용과 서양문명과의 접촉을 계기로 중국을 상대화했다는 점, 그리고 의학을 자국화했다는 점이 공통된 특징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의 ‘조선의 향약전통과 「동의보감」’에서는 우리의 주체적인 향약 개발의 노력에 관하여 「의방유취」와 「동의보감」등의 문헌을 중심으로 논의됐다.

발표에 따르면, 향약의학이란 우리의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의학 발달을 뜻하며, 동의보감으로 이어지는 의학전통의 확립이라는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향약의서가 고려 이전과 이후에 출현된 사례를 언급하면서 향약이 당시에 중요한 의학계의 과제였다는 분석이 이어졌고, 향약이 발달한 이유로서 고려 말기 원과의 무역 등 중국과의 교류가 단절된 점이 지적됐다.

「향약집성방」의 완성은 향약의학의 집대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데, 「향약집성방」으로 정착하게 된 향약전통이 「의방유취」와 「의림촬요」로 계승됐다는 것이다.

각 의서에 관한 정의에 따르면 「의방유취」는 약재의 국산화에 계속되는 의론(醫論)의 자주적 정리라는 의의를 지니며, 「의림촬요」는 「동의보감」 편찬의 철학 및 의학적 토대를 제공하였고 「향약집성방」의 치료방법을 다수 인용하였으며, 향약의학의 전통을 계승한 문헌이라 하였다.

◇전통의료문화 국제심포지움이 일본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지난달 22일 열렸다. 이번 심포지움에서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은 중국의학이 어떤 방식으로 양국에 수용됐는지 의견을 나눴다.

한편 조선 중기 이후에 완성된 「동의보감」은 동아시아 중요 의서 120여종과 조선의 전통향약의서가 집약된 문헌으로서, ‘탕액편’에는 당약(唐藥)과 향약(鄕藥)의 구분이 이루어져 있고, 매 문말에 단방(單方)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 언급되었다.

「동의보감」의 의학적 상관관계를 논하자면, 중국으로부터는 「황제내경」과 「상한론」, 「동원십서」(북의)와 「격치여론」(남의)의 영향을 받았고, 조선 내부에서는 「의방유취」와 「향약집성방」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으며, 「동의보감」의 영향을 받아 조선 후기에 「동의수세보원」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김남일 경희대 한의대학장의 ‘한의학의 현황과 발전 방향성’에서는 가장 먼저 한국 한의학의 대표적 인물로서 허준과 이제마를 소개하고, 2009년 동의보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사실을 보고하였으며 「동의보감」이 1610년 이전 동아시아 의학의 집대성이라는 점, 예방 중심의 의학사상을 지니고 있다는 점, 인간 중심의 의학론이라는 점, 내상 위주의 치료원칙이라는 점, 한국인이 쓴 책으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한국의 3대 의서로서 「의방유취」, 「향약집성방」, 「동의보감」을 들었고, 개항기 이후의 의생제도 및 의생대회, 학술잡지 간행, 동제의학교(1904~1907), 김영훈(1882~1974) 선생에 관한 소개가 있었다. 일본과의 교류에 관해서는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로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의 상한론 연구는 한국인의 저술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 둘째로 1939년 「한방의약」에 일본 黃漢醫學의 대가인 야카즈 도메이(矢數道明)의 글이 매회 실렸다는 사실, 셋째로‘怡雲學人’이라는 필명을 가진 한국인의 글인 「漢醫學의 外科」에서는 일본 의가들에 의한 문답형식의 글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 넷째로 해방 후 일본의 고방의학(古方醫學)은 李殷八, 孟華變, 蔡仁植 등에 의해 지속적으로 연구되었고, 지금도 많은 한의사들이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어서 1945년 조선의사회발족, 1947년 동양의학회 학회지 발간, 같은 해 결성된 동양의학관(1965년 경희대 한의대로 이어짐), 1951년 한의사 제도가 성립된 과정, 1971년 경희대 한방병원 설립, 1972년 무통침술마취 성공, 1973년 제3차 세계 침구학술대회, 1976년 국제동양의학회 개최를 소개했다.

또한 일본 동양의학회와의 교류 영상을 비롯해 한국의 한의과대학 및 한의학연구원이 설립되어 발전해온 다양한 활동 내용이 소개됐다.

신동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의 ‘「의방유취」의 간행 전후에 있어서 조선의학의 발전양상’에서는 조선 이전과 이후 의학의 학술적 상황을 보고하는 형태로 발표가 이루어졌다.

조선 이전의 학술적 상황으로서는 삼국, 통일신라 시대, 고려에 걸친 의학의 학술적 정황과, 당시에 편찬된 자국의 의서로서「濟衆立效方」, 「御醫撮要方」, 「備預百要方」, 「鄕藥救急方」이 거론되었다.

「향약집성방」이 편찬되면서 의학 정책 방향이 대전환을 맞이하여, 고려와 조선초에는 향약 전문의서 「鄕藥古方」, 「鄕藥惠民經驗方」 등이 나왔다는 점이 강조되기도 하였다.

또한 「의방유취」와 중국의학이 대대적으로 정리된 전 과정이 소개되었고, 고금의 의학서적 153종 전 내용이 90개 문(門)으로 분류 정리된 것과, 병증에 대한 이론과 처방, 약 뿐만 아니라 침구, 금기(禁忌), 식치(食治), 도인(導引)까지도 망라하였음이 언급되었다.

특히 「의방유취」의 편찬으로 인해 조선의학계가 중국의학 전통의 전모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은 중요한 의의로 꼽히는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조선의 유교문화적 측면에 있어서 이황과 이이 등 성리학 연구의 심화가 조선 의학서의 성립에 영향을 끼쳤던 사실은, 더 이상 조선이 유학과 의학을 비롯한 중국문물의 유입과 그에 따른 단순한 수용자에만 그치지 않게 되었음을 말해준다고 하는 견해가 덧붙여 제시되었다.

일본에서 ‘한방(漢方)’이라 일컬어지는 전통의학은 서양의학을 기준으로 하여 대체의학 수준의 것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일본측 발표내용에 따르면 일본에서도 고의서를 국가적으로 보존하고 실용적 효능을 중심으로 연구한 동향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한반도에서와 같이 향약 개발을 국가적 목표로 하여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향약 전통의 의학’을 창출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현대의 한국사회에서 정식으로 한의사를 양성하는 한의과대학이 설립되고 한의사 제도가 자리잡게 된 일련의 과정들은 전통의약문화가 현대화된 형태로 정착하여 실제 의료에 활용된다는 점에서, 보다 전문화되고 ‘살아 있는 의학’으로서 존재해왔음을 말해준다.

국외에서는 아직도 동아시아 전통의학을 곧 중국의학으로 간주하여, 한국과 일본의 발달 양상이나 성과가 배제된 채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번 심포지움은 바로 이런 측면에서 한국의 향약정신에 토대한 독자적인 의학 성과를 알리고, 다원적 이해의 필요성을 공유한 학술발표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최근 동의보감 기념사업의 성과로서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 개최, 동의보감 영문판과 CD(e-book) 개발, 웹사이트 ‘사이버 동의보감 박물관’ 등 참신한 사업 진행의 내용이 소개된 점은 한국 한의학이 이미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로 도약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한국 한의학을 세계적으로 알리고 확립하는 일은, 국내적으로는 우리 의약문화에 대한 우리 국민 스스로의 관심과 지원을 필요로 하며, 국외적으로는 중국의약만을 언급하던 기존 사고방식의 전환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과제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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