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補派의 거두 張景岳 신랄하게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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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補派의 거두 張景岳 신랄하게 비판
  • 승인 2015.03.0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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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훈

조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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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훈의 독서일기-<7> 章楠「醫門棒喝」

조남훈
원당경희한의원 원장
장남(章楠)의 역작이다. 장남은 瘟病學의 거두인 엽천사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래서 溫補派의 거두인 張景岳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견강부회하는 면이 많다.

책 제목이 어려운데, 불교의 수양 중에서 사용되는 몽둥이(棒)와 꾸짖는 소리(喝)를 지칭한다. 즉, 한의학을 수양함에 있어서의 몽둥이와 꾸짖음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장남은 유, 불, 선의 영향을 받았다는 논문도 있다. (‘장남의 의역사상에 관한 연구’, 김규열)

책은 크게 총론과 상한론 주석으로 나뉜다. 총론에서 장경악 비판과 여러 비판의 글이 볼만하다.

그리고, 책 중에 八卦의 卦象을 함께 기술하는 것이 꼭 이정래 선생님 책과 닮았다.

일부분 한글로 된 번역본이 있다.

條例(번역본 요약이다)

一. 하간이 六氣皆從火化를 논한 것은 六氣가 邪가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 병을 논한 것은 아니다. 사람의 체질은 동일하지 않아서 감수된 사기가 같더라도, 病變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六氣病에 凉藥을 일률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一. 단계가 陽常有餘, 陰常不足, 一水不勝二火라고 주장하여 知母와 黃柏을 남용하여 陽을 손상시키니 그 해가 심하다.

一. 경악은 陽常不足, 陰常有餘라고 말하면서, 大易, 丹書를 인용하여 입증하였으나, 확실하거나, 적절하지 못하고 한쪽에 치우친 말에 속한다. 경악은 단계와 더불어 冰炭처럼 상반되었으니, 후학들을 현혹시켜 따를 바가 없다.

一. 동원은 相火는 元氣의 적이라고 했다. 경악을 이를 비난하며 相火는 元氣의 근본이라고 했다. 東垣論其變, 景岳道其常

一. 暑病 중에 화에 치우친 것은 양증, 습에 치우친 것은 음증, 체질이 강하면서 화가 많은 자는 양증이 되고, 체질이 약하면서 습이 많은 자는 음증이 되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의문봉갈
傷寒傳經論
“六日에 邪氣가 궐음에 전해졌으나 낫지 않으면 七日에 다시 태양에 전해진다”고 말하더라도 생각컨대, 사기가 궐음의 지극히 깊은 곳에 침입했다면 마치 물건이 우물 속에 들어간 것과 같은데 어찌 하루만에 도리어 태양의 지극히 얕은 경으로 전해질 경우가 있겠는가!

“상한병의 사기는 足經에만 전해지고, 水經에는 전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인체의 경맥을 수족으로 각기 분재하여 관통하지 않는 것으로 본 것이니 이것은 더욱 잘못 이해한 것이다.

“상한병 一日에는 태양이 사기를 받는다, 六日에는 궐음이 받는다”고 한 것은 병이 천부에서 심부로 침입하는 단계를 밝힌 것이다.

“傳經하는 것은 正氣이고 邪氣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느 경전에서 근거했는지 알지 못하겠고, 正氣의 유행은 고리처럼 끝이 없어서 흔적을 알아볼 수 없으니 또 어떻게 전경하게 되는지 알겠는가?

장령소가 “병이 없는 사람은 경락의 기가 궐음에서 시작하여 태양에서 끝나고 병들면 그 기가 태양에서 시작하여 궐음에서 끝난다”고 하였다. 이정래의 ‘의역동원’에도 六經傳經을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궐음에서 태양으로, 태양에서 다시 궐음으로 연결이 논리적이지 않다.

즉 경락의 기가 궐음에서 태양까지 가고 나서, 다시 궐음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가장 淺部에 있는 太陽에서, 곧바로 가장 深部에 있는 궐음까지 양명, 소양, 태음, 소음을 거치지 않고 올 수 있을까. <의문봉갈>에서도 이점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만일 경락의 기가 一日에 궐음에서 시작하여 六日에 태양에서 끝나서 七日에 다시 궐음에서 시작한다면, 그 기가 양명, 소양, 태음, 소음 등을 넘어가야 할 것이 틀림없지 않은가?

素問辨疑
“秋傷於濕 冬生咳嗽”

“기백왈 冬傷於寒, 春必溫病/ 春傷於風, 夏爲飱泄/夏傷於暑, 秋爲痎瘧”한다고 한 것은 모두 각 계절의 사기에 손상당했으나 계절이 지나서 발병하는 이치를 말한 것인데, 오로지 가을은 조금이 계절을 주관하지만 유독 傷濕이라 말했다.

유가언만 濕이 燥자의 잘못임을 직단했으니 진실로 천고의 탁견이라고 하였다. 이 논설은 이후의 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기도 한다. 아무튼 한번 생각해 볼만 것인 같다.

論景岳書
처음부터 끝까지 이 편을 쓰기 위해서 이책을 쓴 것처럼, 실랄한 비판을 가한다. 결론은 陰常不足의 잘못을 陽常不足이라는 새로운 잘못으로 대체했다고 주장한다.

경악은 “惟是陽如君子, 陰如小人”하여 군자와 소인을 양과 음에 비유하여, 군자는 적고, 소인이 많음으로 양은 부족하고, 음은 유여하다고 주장하였는데, 장남은 이에 대해서 ‘웃음이 나올 만하다, 어찌 생각하지 않음이 이처럼 심한가’라고 비판한다. 실제로, 자연현상을 유교적 교리로 설명하려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비판인지도 모르겠다.

학문적 무게로 치면, 한참 미치는 못하는 이가, 가장 쉽게 학문적 성취를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선대 유명한 학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일 것이다. 그 비판이 오랜 숙고 끝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더욱 큰 효과가 있으리라.

후대에 장남은 다시 비판을 받는다. 경악의 이론을 잘 비판했지만, 너무 강하게 그리고 너무 견강부회하여 힐난했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장남이 장경악을 비판한 어조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害難言盡(그 해를 말로 다하기 어려울 것이다) 非爲知道矣(도를 안다고 할 수 없다) 迷者至死不悟 可慨野已(미혹한 자들은 죽음에 이르러도 깨닫지 못하니 개탄할만 하구나), 可發一笑(웃음이 나올 만하다), 其過甚矣(그 과오가 심하구나) 又何異村夫, 村婦之見哉(또한 어찌 村夫나 村婦의 견해와 다르겠는가)

蔞仁辨
瓜蔞仁을 사용하는 것은 오래된 관습에서 이루어진 것이자만, 瓜蔞實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汪昻의 「본초비요」에 瓜蔞實이 瓜蔞仁으로 잘못 기재되었고, 이후에 「본초종신」에서도 이를 그대로 답습하여 세간에 瓜蔞實을 瓜蔞仁으로 잘못 사용하게 했다고 밝히고 있다. 더구나 瓜蔞仁을 濕熱下利에 사용하는 것은 瓜蔞仁이 甘凉 油潤하기 때문에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장남은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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