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윤병 시평] 진화된 한의학은 왜 더 이상 한의학이라 부르지 않는가?
상태바
[채윤병 시평] 진화된 한의학은 왜 더 이상 한의학이라 부르지 않는가?
  • 승인 2015.02.26 15: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채윤병

채윤병

mjmedi@http://


- 과학적 진보에 따른 현대의료기기 사용, 한의학의 진화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채 윤 병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경혈학교실 교수
지난 10일 14일째 단식 농성중인 대한한의사협회장을 찾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 과학화, 표준화, 선진화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겠다”라고 하였다.

이에 협회장은 단식을 풀고 국회공청회와 협의체 구성 등 실무현안을 챙겨 한의학이 의료기기를 활용하여 정확하고 안전한 의학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20세기 초부터 진행된 중국의학의 근대화, 과학화로 인해 현재의 중의학(Traditional Chinese Medicine, TCM)은 과거의 중국의학과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한의학은 이미 내재된 의학적 가치가 충분하며, 협의의 ‘과학’이라는 틀에 맞춰 왜곡되거나 평가절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없다.

일부 한의사들에게 한의학의 ‘과학화’라는 말은 꺼려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한의학의 ‘현대화’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대화는 과학화보다 중립적이고 포괄적인 말이다.

그러나 한의학의 현대화는 과학화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고, 이미 과학의 내용과 형식으로 진화한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한방치료가 현대사회 속에서 의료행위로서 가치를 계속해서 인정받기 위해서 한의학 본디의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대과학의 변화 속도에 발맞추어 변모해 나가야 한다.

중국 청나라 강희제는 예수회 선교사가 병을 치료한 것을 계기로 서양의학을 신임하게 된다. 학질을 앓아 어의가 지어준 약을 복용하고 차도가 없었으나, 프랑스 선교사 퐁타네가 헌납한 ‘기나피(cinchona)’를 복용하고 바로 낫게 되자 기나피는 성약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기나피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유럽 의학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 페루 원주민의 토산 약초였다. 기나피는 본디 서양과학의 산물이 아니라 보통 약초였으나, 19세기 이르러 많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유효성분인 키니네(quinine)를 추출해 학질을 치료하는 약이 되었다.

1944년 하버드의 과학자 우드워드가 인공적 방법으로 키니네를 합성하여 기나피가 학질을 치료하는 현대 의약품으로 진화된 것이다.

서양의학의 과학적 방법론은 근세 수 백 년을 거쳐 만들어져 왔다. 프랑스 정밀과학의 초기는 데카르트와 뉴턴의 물리학의 기계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정확하지 않고 계량할 수 없거나 객관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과학의 전당에 들 수 없었다.

18세기 말 프랑스 과학원은 물리, 화학과 자연과학 회원 주도로 활동하였고 의학은 아직 신입생에 불과 하였다. 당시 물리나 화학, 자연과학과 비교하였을 때 서양의학은 원리의 완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자연과학과 동등한 학술적 지위를 얻기 위해 서양의학은 사변적인 색채를 벗어 던지고 정밀하고 실증적인 것을 기본으로 하여 과학의 전당에 들어가게 되었다.

서양의학은 끊임없는 자아성찰을 통해 200년간 주관적인 편견을 최소화하는 엄정한 방법을 추구하여 왔다. 1990년대는 임상역학과 생물통계학적 방법을 결합하여 실증지식에 근거한 의학이상을 통합적으로 구현함을 추구하는 근거중심의학이 현대의학의 선구적인 운동처럼 널리 퍼져 왔다.

최근 폐암의 유전자 치료, 뇌의 특정 부위 전기 자극을 통해 파킨슨 병 치료, 인공 피부, 인공 연골, 인공 장기 제작, 그리고 배아 줄기세포를 이용한 조직과 기관 복제 등은 21세기 현대 의학의 현 주소이다.

이러한 의학적 성과는 서양의학 본래의 것이라기 보다는 대부분 분자생물학, 유전자 연구, 줄기세포연구, 바이오칩 등 관련 과학기술 발전에 힘입은 것이다.

1944년 물리학자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유전자는 생명의 근본이라 단언하였고, 이 후 크릭이 유전자의 분자생물학 연구에 뛰어들고 왓슨이 크릭과 함께 연구하면서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하였다.

이 연구는 본래 의학과는 관련이 없었으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유전자 관련 기술이 발전하고 나서 의학에서 앞다투어 이를 응용하여 적혈구 생성효소, 인슐린, 성장호르몬 등을 포함한 약물제조에 신속하게 응용하기 시작하였다.

한의약 치료를 현대화하기 위해 한약재를 이용하여 제형을 변화하고, 유효성, 독성, 안전성 검사 등을 통해 과학적 원리가 투영되어 천연물신약으로 인정받으면 한의학과 멀어진 것처럼 여긴다.

한의학 원리에 기반한 한약재를 원료로 사용하여 현대과학적으로 연구한 것도 한의학의 진화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한의학 진단은 치료를 위한 전제조건이고, 환자의 몸 상태를 관찰하기 위해 망문문절의 사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학적 정보를 활용해야 한다.

과학적 진보에 의한 현대의료기기 사용 역시 한의학의 진화 중 하나의 모습이다. 과학기술의 진보 속에 한의학은 언제까지 눈뜬 장님처럼 돋보기만 이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의 한의사, 분명 이원화된 한국의 의료체계에서 의료인의 역할을 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한방 의료행위를 하는데 필요한 범위에서 현대과학적 의료기기를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보건의료 당국에게 묻고 싶다. 한의학이 수 백 년 전 허준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진료하는 것을 바라는 것인가? 앞으로 수 백 년 후에도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만 남길 바라는 것인가?

21세기 스마트한 창조경제를 꿈꾸는 대한민국에서 한의사만 여전히 문명의 미개인처럼 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길 바라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