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의 도서비평] 창작열과 씨름하는 작가들의 공간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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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의 도서비평] 창작열과 씨름하는 작가들의 공간 들여다보기
  • 승인 2015.02.1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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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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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비평 | 「그 작가, 그 공간」
최재봉 著
한겨레출판 刊

병원 리모델링 공사 때문에 연구실을 옮긴 게 햇수로 2년째입니다. 이제는 달라진 환경에 익숙할 법도 하건만, 아직도 가끔씩 불편한 느낌이 밀려오면서 널찍했던 옛 방이 그리워집니다. 작년 춘분 무렵에는 ‘광보우정(廣步于庭)’ 식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이런저런 생각을 갈무리했고, 창문만 열면 막힘없이 트인 바깥 풍경이 금세 다가왔었거든요. 제가 공간에 대해 너무 집착하는 걸까요?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연구실을 탓하다가 집어든 「그 작가, 그 공간」은 우리가 ‘작가’라고 일컫는 분들의 작업공간을 다룬 책입니다. 시·소설·수필·번역·평론 등 각종 글쓰기가 직업인 분들의 내밀한 창작공간을 그려낸 글 묶음이지요. 이제껏 단행본 서너 권 낸 주제에 유명 작가들과의 비교는 언감생심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서평이나마 쓰는 입장이니 문장가들의 거처는 어떨지 문득 궁금해지더라고요.

눈물이 짠 이유를 시로 읊은 강화도 인삼가게 주인 함민복, 앙상한 뼈대만으로 문장을 구성함으로써 수사학을 거부하는 수사학의 소설가 김훈,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육안(肉眼)과 뇌안(腦眼)을 지나서 심안(心眼)과 영안(靈眼)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트위터 대통령 이외수 등등. 어떤가요? 여러분은 내로라하는 이분들이 날마다 창작열을 불태우며 씨름하는 공간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으세요?

지은이는 한겨레신문의 문학담당기자 최재봉님입니다. 그동안 문학작품을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글을 전문적으로 써왔던 분이지요. 이전에도 그는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한국문학의 공간 탐사」「언젠가 그대가 머물 시간들」 등 독자들이 문학작품에 좀 더 수월하게 접근하도록 도와주는 좋은 안내서를 내왔는데, 이번에는 작가 혼(魂)이 연소되는 공간을 매개로 독자들이 해당 작가와 작품을 보다 친근하고 풍부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책은 ‘그 작가, 작업실’ ‘그 작가, 집’ ‘그 작가, 길’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3부로 나뉘는데, 형식은 거의 똑같습니다. 저자가 시인·소설가·번역가·평론가·PD 등 자신의 글을 쓰는 모두 스물여덟분의 은밀한 공간을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가들은 어떤 곳에서 글을 쓰는지, 그 공간은 작가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을 독자들에게 속속들이 보여줄 의도로 엮었기 때문이지요.

읽노라면 엿보기 호기심이 충족되듯 작가들의 사적(私的) 공간과 일상이 눈앞에 선연히 그려지는데, 이보다는 작가들이 내뱉는 일성이 귓속을 파고들며 가슴으로 다가와 큰 울림을 안겨줍니다. “몽정이 육체의 정열이 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그 육체를 사용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김경주)”, “새로운 문명과 문화에 배타적이면 그게 죽음이다.

풍향계처럼 외부의 새 바람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나의 이데올로기는 굳세게 지켜가는 것이 내가 ‘늙은 청년’으로 살고자하는 방식이다(박범신)”, “좋은 글이란 화려하거나 멋들어진 문장이 아니라 사실과 정보를 논리적으로 배치한 글이다(김훈)”, “사랑은 진행형일 때만 아름답다(전상국)”, “늙음은 좋지만 낡음은 싫다(한승원)”…

공간에는 머문 자의 흔적이 남기 마련인데, 우리들의 공간에는 어떤 자취가 남을까요? 분명 인술(仁術)의 심기(心氣) 은은한 가운데 한약 향(香)이 그윽하게 배어있겠지요? <값 1만5000원>  

안세영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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