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668] 온갖 것을 한데 모아, 가정의약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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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668] 온갖 것을 한데 모아, 가정의약상식
  • 승인 2015.02.1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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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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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庭要鑑」

설날 민속명절을 맞이하여 다시 새로운 마음가짐을 다지는 의미에서 지난 세기 新春에 즐겨 보던 대중의약서이자 통속의서 하나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예전 정초에는 민속놀이와 함께 1년 농사의 豊凶을 점쳐보거나 신년운세를 점쳐보기 위해 冊曆이나 土亭秘訣과 같은 비결서, 혹은 잡다한 생활상식과 함께 응급의약 지식이나 각종민원 서식이 가득 들어 있는 통속서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곤 하였다.

◇「가정요감」
오늘 소개하는 책은 1951년 세창서관에서 출판된 것인데, 전쟁 중에 펴낸 책이니 오죽 열악했을까 싶은 심정이 든다. 겉표지는 이미 잘 알려진 통칭 딱지본 소설에서 보듯이 울긋불긋 투박하고 촌스러운 컬러그림으로 치장되어 있다. 이른바 딱지본이라 불리는 서적들은 내용보다는 울긋불긋한 표지 그림 때문에 호사가의 관심을 자아내는데, 이 책도 역시 그런 대중적인 통속서로서의 차림새를 갖추고 있다.

지난 세월 책등이 훼손되고, 표지는 구겨져 있으며, 군데군데 벗겨지고 찢겨진 모습이 곡절 많았던 세상을 견뎌온 모양새임을 한눈에 직감할 수 있다. 꾸밈새는 볼품없이 헐어버렸지만 왠지 어려서 시골집 다락이나 책꽂이에서나 보았던 손때가 배이고 먼지가 켜켜이 쌓아있던 낡은 책들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라 정겹게만 느껴진다.

서양식 커튼이 드리워진 창가에 화분이 놓인 공부방에서 한복을 차려 입은 두 자매, 그리고 책상 위에는 양장본 영문서와 잉크, 필통, 주름 갓이 달린 스탠드등, 풍차 그림이 들어있는 액자, 자명종 등 서양풍의 거주형태와 좌식생활을 염원하던 세대들이 꿈꾸던 모습과 신구 생활방식이 교체하던 시기의 풍경을 담고 있다. 이 1장의 컬러화를 통해 1950년대 우리가 염원하고 갈망하던 행복한 가정생활의 전형적인 모습을 축소판처럼 들여다 볼 수 있다.

표지의 제목은 「溫各去是 家庭要鑑」, 한자로 되어 있는 題字 아래에는 글자마다 한자씩 한글로 음을 달아놓았는데 ‘온각거시 가정요감’이라 적혀 있다. ‘가정요감’이란 제목은 대충 어떤 내용일지 가늠이 되지만 ‘溫各去是’가 무슨 말인가? 한자를 아무리 새겨보아도 그럴듯한 의미가 붙여지지 않으니 필시 우리말 음을 차용한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 책 한권에 ‘온갖 것이 다 들어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리라.

이러한 부류의 책들이 호소력이 있었을 40∼50년대 당시만 해도 아직 구학문을 익힌 한문세대들이 사회의 주도층을 이루었을 시대라서 표지화에서 드러내고 있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이나 바람과는 사뭇 다르게 이렇게 한자 서명을 달아야만 손쉽게 구세대 독자층들로부터 이해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이렇듯 가정상식 필비서로서의 다양한 내용을 담아 통속서로 출판한 종류들을 통칭하여 ‘家庭寶鑑’류라고 부르는데 대개 조선 후기 민간에 전승된 의약지식이나 널리 알려진 의약서에서 우선 긴요한 내용만을 간추려 만든 要訣類 의서에서 진일보하여 민간의 書商들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출판한 것들이다. 이들은 누구나 익히 알만하고 또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얻기 위하여 기존의서의 인지도를 이용하려는 목적으로「동의보감」에서 유래한 ‘보감’ 혹은 ‘요감’이란 명칭을 차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 앞서 목차가 등장하는데, 역시 한자서명 아래 이어서 한글서명을 실어놓았다. 제1편에 의약상식편이 수록되어있는데, ‘온각거시경험편’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부인과, 兒小科, 안과, 이과, 비과, 치과, 口腔舌科, 手足科, 風科, 피부과, 인후과, 獸蟲傷科, 腫脹科까지 총 13장의 분과로 나누어 제법 상세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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