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663] 침뜸으로 세상을 救濟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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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663] 침뜸으로 세상을 救濟하다
  • 승인 2015.01.0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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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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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壽域篇」①
새해를 맞이하여 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에 비록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의원이지만 스스로 자신만의 의학세계를 꾸며놓은 자작 의서 1종을 살펴보기로 한다. 오래 동안 애지중지 써왔기에 앞뒤 표지가 반들반들 닳아있는 모양새가 얼마나 공력을 들여 작성하고 애용해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세수역편」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이전 시기에 비해 훨씬 다양한 의학서가 일반에게 알려졌고 「동의보감」 간행 이후 전문의학 지식도 폭 넓게 유포되었다. 이제 어느 한 책을 고집하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에 걸맞은 몇 종의 전문서를 스스로 개편하여 새로운 편람서로 꾸미는 것이 일반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 소개할 이 책 역시 창작성이 깊은 저술이라기보다는 자신만의 의학관을 반영한 자가용도의 편집서라 할 수 있다.
내용은 크게 보아 침구와 약방, 2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반부는 조선 전기 성종대에 간행된 「神應經」의 내용을 위주로 침구보사치법을 발췌하여 수록하였다. 이에 비해 후반부는 여러 가지 병증에 대한 단방치료약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앞쪽의 침구편은 작자가 임의로 차서를 개변하여 편차하였기에 刊本과는 많이 달라져 있다.

「神應經」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에 2차례에 걸쳐 소개한 바 있다.(10회 동양 삼국 합작 의서 - 「重刊神應經」, 1999년9월6일자, 306회 大同의 기치 아래 새로 찍은 침구서 - 「新印神應經」, 2006년9월11일자) 그렇기 때문에 원작에 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다시 거듭하지 않으려 하거니와 이미 소개한 조선판본과 비교하여 또 다른 특징이나 달라진 면모만을 종합하여 포괄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이 책은 진즉 「의방유취」 편찬시 인용제서로 중용되었고 성종때 내용을 개편하여 조선판을 간행한 이후, 조선 전기 침구분야에서 필독서로 쓰였다. 조선전쟁이 끝난 후 전란으로 멸실되어 이 책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大同法을 추진하던 내의원 도제조 金堉(1580~1658)이 앞장서 새로 간행을 추진하는데, 이것이 바로 「新印神應經」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 「동의보감」 침구편이 널리 보급되었고 특히 허임의 「침구경험방」 간행된 이후로는 점차 이 책의 활용도가 떨어지게 되면서 더 이상 간행 사실도 전해지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 간행된 판본은 보이지 않으며, 이와 같은 초사본류가 다소 전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사본에는 1860년경에 이르러 필사된 것으로 적혀 있어 비록 이 책이 주종은 아니라 할지라도 조선시대 전기로부터 말기까지 전 시기에 걸쳐 꾸준히 활용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본서에서 전반부를 차지하는 신응경 인용부는 원서와 다소간 차서가 바뀌고 발췌 내용이 달라져 있다. 우선 원서에서 권미에 붙어 있는 逐日人神所在가 권두로 나와 있다. 이러한 차이점은 대본이 된 간본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등사자의 취향에 따른 자발적인 취사선택의 결과라 여겨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八穴灸法에 대한 내용 역시 서문보다 앞서 등장하는데, 아마도 이 두 가지 부분이 이 책자의 작자가 가장 중시한 점이 아닌가 싶다.

한편 조선 세종조에 해당하는 洪熙년간(1425)에 쓴 原書는 그대로 옮겨 적었으나 성종대 韓繼禧가 쓴 重刊序는 들어있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이어 목차격인 砭焫科目은 들어 있으나 차서가 다소 달라져 있어 상당부분 변동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본문에서는 百穴法歌, 折量法, 補瀉手法, 瀉訣直說, 補訣直說, 診脈法, 穴法圖 등으로 목차와 또 다르게 드문드문 발췌하여 선록한 것으로 보아 애초부터 그대로 인용할 생각이 아니었던 듯싶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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