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의 도서비평] 따뜻한 눈길로 백석(白石)의 생애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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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의 도서비평] 따뜻한 눈길로 백석(白石)의 생애 복원
  • 승인 2014.11.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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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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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비평 | 백석 평전
얼마 전에 예쁘장한 제자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 받았습니다. ‘우리 시대 최고의 평전’이라는 선전 문구가 박힌 띠지가 요대(腰帶)마냥 책 허리를 감싼 「백석 평전」이었습니다. 떨어지는 낙엽 소리조차 허투루 흘려듣지 말고 시심(詩心)에 고요히 잠겨보라는 뜻일까요? 하기야 출근길에 수북하게 쌓인 노란 은행잎들을 보면서 환경미화원의 빗자루질만 떠올린다면 너무 삭막하겠지요.

「백석 평전」은 안도현 시인의 작품입니다. 자신이 깃들일 거의 완전한 둥지로 여기며 30년간 줄곧 짝사랑해왔다는 지은이의 고백처럼, 그가 시종일관 따뜻한 눈길로 백석(白石)의 생애를 복원해놓은 책이지요. 아 참, 흠모의 주체와 객체를 따로 소개할 필요는 없겠지요?
 안도현 著
다산책방 刊

끙끙 앓으며 사랑했다는 저자는 일본 특유의 전통 단시(短詩) ‘하이쿠(俳句)’가 아닐까 착각할 만큼 아주 짧은 시(“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로 유명한 분이잖아요.

또 애끓는 사랑을 받은 대상으로, 외롭고 쓸쓸하며 가난하게 살다 간 분은 자야(子夜) 여사와의 애잔한 러브스토리의 바로 그 주인공이잖아요. 자야, 아니 법명 길상화(吉祥花)가 누구입니까? 법정 스님에게 지금의 길상사(吉祥寺) 부지인 어마무시한 금액의 대원각 - 보시하겠다는 뜻을 밝힌 1987년 당시 시가 1000억원 - 을 시주하면서 까짓 백석 시 한 줄 값어치도 되지 않는다고 일갈했던 분이지 않습니까?

책은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룬 평전답게 연대기 순으로 백석의 삶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당대의 많은 시인들을 매료시켰을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후대의 시인들에게도 절대적이고 폭넓은 영향을 끼친 백석의 문학세계와 그의 인간상을 전체적으로 통찰하는 것이지요.

물론 제가 가장 재미있어 했던 부분은 학창시절 접했던 노천명 시인의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라는 <사슴>이 혹 백석이지 않을까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직업병 탓인지 이내 뇌추지기세(腦??之起勢)가 성장(盛壯)한 태양인(太陽人)의 모습이 그려졌거든요.

흔히 시는 청정한 마음에 투영된 1인칭 독백이라고들 합니다. 거짓된 삶에서 진실한 시가 나올 수 없다는 말이고, 아무나 시인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시 감상을 저어할 필요는 없을 것이기에,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백석의 시 한 편을 덧붙입니다. 엄혹한 일제시대에 친일 문학과는 철저히 담 쌓은 채 오로지 질박하고 아름다운 우리말만으로 시를 지었던 백석의 진실된 삶의 단면이 드러나는….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 우에 곱돌탕관에 약이 끓는다/ 삼에 숙변에 목단에 백복령에 산약에 택사의 몸을 보한다는 육미탕이다/ 약탕관에서는 김이 오르며 달콤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 나고/ 약이 끓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그리고 다 달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야 만년 넷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 손으로 고이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넷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어진다”<탕약(湯藥)>(값 1만8000원)

안세영 / 경희대 한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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