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분쟁 10주년 기념 기고 - 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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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분쟁 10주년 기념 기고 - 김효진
  • 승인 2003.08.2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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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분쟁 정신계승은 공공의료 확충으로부터


하루하루 시간은 지루하게 흐르는 듯 하여도 지난 날의 긴 세월은 일순간에 흐른 느낌이다. 문득 내가 대학 입학했을 때가 생각난다. 입학 전부터 어수선했다던 한의대 분위기는 입학하고 채 한 달의 수업도 채우지 못하고 수업거부라는 극단적 투쟁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리곤 거의 1학기동안 줄곧 수업을 못했다. 아니 안했다.

내가 93학번으로 대학에 입학을 했으니 꼭 10년 전 일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였다. 세월의 무상함을 함축한 옛말이지만 한편으로 10년의 세월은 뭔가 세상이 바뀔 수도 있고 따라서 세월을 돌아보고 역사를 평가할 수도 있는 기간임을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전한련 동우회에서 ‘한약분쟁 투쟁 10주년 기념사업’(가칭)을 준비 중인 것도 이런 의미에서가 아닌가 싶다. 그럼 이제 나도 한 번 10년을 돌이켜 볼까?

■ 굵직한 요구들 하나둘 실현

10년의 세월동안 개인적으로는 95~96년 또 한 번의 한약분쟁투쟁, 그리고 1년간의 유급. 우여곡절 끝에 한의대를 졸업하였고 동시에 한의사가 되었다. 곧바로 병원에서 수련의과정을 거치다 현재 공중보건한의사로 근무하고 있다. 한 인간으로서 10년동안 신분이 네 번이나 바뀌었으니 격동의 세월이라 할만하다. 물론 10년동안 국내외 의료계의 변화는 이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한약분쟁으로부터 인식되기 시작했던 의료인과 약사의 직능구분에 대한 화두는 의사와 약사간의 ‘의약분업 실시’에 따른 첨예한 대립 속에서 더욱 더 심화되었다. 게다가 ‘의료시장 개방’, ‘영리의료법인 설립 허용’, ‘의료광고 허용범위 확대’ 등은 의료계도 좀더 직능화되고 상업화되면서 철저한 자본주의에 입각한 신자유주의가 뿌리내리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런 첨예한 외부적 흐름 속에서도 다행스러운 건 한약분쟁이후 10년 동안 한의계 내부적으로는 ‘한약학과 신설과 한약사 배출’, ‘공중보건한의사 확대배치’, ‘한의약 육성법 제정’ 등 우리들의 굵직굵직한 요구들이 하나, 둘씩 성과를 이뤄가고 있다는 것이다.

93년 한약분쟁 당시에는 집단이기주의로 몰고가려는 언론과 사회시각 때문에 스스로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였고, 지리멸렬한 싸움양상에 스스로 지쳐가기도 하였다. 하지만 강산이 한 번 변한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분명 한의계를 하나로 단결시키고 한의학을 제도권내에서 발전시킬 수 있는 씨앗이었다. 뿐만 아니라 해방이후 파행적으로 고착되어 있던 한국의 의료제도에 대해 문제인식을 불러일으켰던 의료계의 화두이기도 하다.

1. 약사의 한약조제금지 2. 한약사의 신설 3. 독립적인 한의약법 제정 4. 첩약의료보험실시 5. 공중보건한의사 확대배치 등이 93년 한약분쟁 당시 한의계가 주장했던 내용들로 기억된다. 첩약의료보험에 대해선 학생과 선배 한의사 사이에 합의치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미세한 차이보다는 위의 주장들이 얼마나 시의적절하고 현 시대의 한의학에게 꼭 필요했던 주장인가에 대해 좀 더 비중을 두고 싶다. 사실 당시에만 해도 이런 주장이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까 스스로 의심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10년동안 끊임없는 선·후배의 노력으로 이제 이것들은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 식을 줄 모르는 사회 참여 열기

93년 한약분쟁은 이런 정치적이고 표면적인 요구사항만을 낳았던 것도 아니다. 대외적으로 한약분쟁을 겪으면서 우리 스스로는 한의학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였고, 동시에 한의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제시되었다. 한의학이 이처럼 어려움에 놓였을 때 사회적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평소에 한의사가 사회다방면으로 진출하고, 사회에 대한 기여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얼마 전 미국의 이라크 폭격 후 전쟁복구와 의료봉사를 위해 한의사 선·후배 몇 분이 직접 이라크로 날아갔던 걸로 알고 있다. 이전 같으면 한의사 능력의 한계부터 스스로 한정짓고 등돌리기 쉬웠을 일들을 이제 한의사들은 사회에 당당히 나서서 국제적 활동을 벌이기까지 된 것이다.

한의사가 국제 사회에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는 것은 바로 93년 한약분쟁 때 우리가 다졌던 정신과 결의를 이어가는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투쟁은 학생들이 교실로 들어오고 이마의 머리띠를 풂으로써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니라 언제까지나 이렇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역사란 중요한 것이고 세월이란 역사를 객관적으로 증명해 주는 역할을 하는가 보다. 하지만 반대로 세월은 역사를 묻어버리기도 한다. 우리의 한약분쟁 역사가 세월의 흔적에 묻히지 않기 위해서는 이즈음에서 다시 한 번 그 때의 맘가짐을 떠올려 봤으면 한다.

■ 세월에 묻히지 않기 위해서는

또 한가지 한약분쟁 10년 후 현재 공중보건한의사로서 내가 바라는 바는 한의학이 좀 더 공공의료부문을 강화했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의 뜻대로 공중보건한의사는 확대 배치되었다. 하지만 이게 결코 한의대생들의 병역편의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한의학의 사회적 역할을 넓혀가는 또하나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현재 공중보건한의사나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한의사는 진료업무가 대부분이며 극히 부분적으로 중풍예방사업, 금연사업, 산후산전관리사업, 기공교실, 사상의학교실 등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너무나 부실하고 준비되지 않아 실효를 거두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평가되어지고 있다.

거창한 장비가 있어야만 시술이 가능한 양방의학과 달리 쉽게 환자에게 접근할 수 있고, 따라서 예방의학사업이 수월한 한의학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준비되지 못하여 아직까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 빨리 한의학내에도 공공의학을 연구하는 인적, 학문적 자원이 충족되어 한의학이 좀 더 사회내에 튼실히 뿌리 박을 수 있는 주춧돌이 되었으면 한다. 이것이 또 하나의 93년 한약분쟁 투쟁정신을 계승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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