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의 도서비평] 만화, 문학, 미술, 역사로 읽는 고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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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의 도서비평] 만화, 문학, 미술, 역사로 읽는 고우영
  • 승인 2014.07.24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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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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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medi@http://


도서 비평 | 「고우영 이야기」
50줄에 다다르기 조금 이전부터 늙는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발빈반백(髮??半白)도 모자라 숱까지 줄어든 객관적 징후 탓이 아닙니다. 출퇴근길 전철에서 으레 앉기를 원하고, 횡단보도 신호등이 건너기 아슬아슬해도 뛰지 않으며, 무시로 발동되는 ‘귀차니즘’ 등 혼자서 느끼는 심리적 증상들 때문입니다. 물론 그 중의 으뜸은 자서전이나 평전처럼 한 인물의 삶을 다룬 책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저런 분들의 인생 역정을 톺아보면서 나는 어떤 이야기를 남기게 될까 고민하는 것! 이거야말로 늙어간다는 가장 뚜렷한 증거 아닐까요?
고우영, 이명석, 임범, 박인하,
이상수, 김낙호 외 著
씨네이십일 刊


해서, 이번에는 「고우영 이야기」를 골랐습니다.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 자서전」·「체 게바라(Che Guevara) 평전」·「백범일지」 등도 떠올렸지만, 아무래도 여름 휴가철이니 무더위를 한 방에 날려줄 만큼 재미있어야 하니까요. 사실, 저는 ‘고우영 빠’를 자처할 정도로 열혈 팬입니다(누군들 아니겠습니까마는 ^^). 초등학교 때 이미 5권짜리 「고우영 만화 삼국지」를 책장이 너덜거리게 열독했고, 졸저 「성학」에서는 화백님의 「초한지」를 보며 키득거렸던 경험까지 수록했으니, ‘오마주(hommage)’ 삼아서라도 이 책 한 권쯤은 소개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고우영 이야기」는 세 장으로 나뉩니다. 1장 ‘해석’은 임범·김낙호·이상수 등 만화 관련 기자·평론가들이 인간 고우영과 그의 작품세계에 관해 쓴 글입니다. 검열의 가위질이 서슴없이 자행되던 시절을 살아낸 천재 만화가와 그의 풍자·익살·해학 넘치는 만화를 자세하게 분석한 부분으로, 교양미 있게 표현해서 소위 ‘고우영 독법(讀法)’이지요.

2장 ‘전시’는 아르코미술관이 기획한 ‘고우영 만화 ; 네버엔딩 스토리’에 참여한 작가들이 2008년 7월 중순부터 두 달여 전시됐던 그들의 작품에 대해 친절하게 해설한 내용입니다. 모두 흥미진진하고 유쾌한 이야기들이었는데, 특히 주재환 님과 이순종 님의 글은 개그콘서트 뺨치는 수준이었습니다.
“조조, 화타의 죽음을 슬퍼하다”라는 제목의 동상이 의성(醫聖) 화타 기념상 공모 1등 수상작이라는 농담(옛 소련에서 푸슈킨의 동상을 세우려고 인민들에게 아이디어를 공모해 놓고, 1등상을 ‘팔짱을 끼고 푸슈킨 생각에 잠긴 레닌’에게 주었다는 유머를 비튼 것)에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고, ‘고 고우영 선생님께’라는 제목의 시(“… 선생님은 왜 자꾸 사람을 간질이셔요? 단정히 새침을 떨며 목을 빳빳이 세우려는데 왜 자꾸 옆구리를 간질이셔요? 크게 웃을 수도 없이 그저 킥킥거릴 만큼만 살살 간질이시는 무슨 까닭이라도 있나요? …”)를 접하며 빵 터졌으니까요.

3장 ‘연대기’는 부인 박인희 님과 신문수·이상무·박재동·방학기·허영만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만화가들의 인터뷰 모음 및 고인의 자필 원고를 수록한 부분입니다. 지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고우영 화백의 생전 모습을 그려가면서 그가 쓴 칼럼들을 음미하다보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장에 이르러 아쉬움을 느끼는 대목이지요. 만화뿐만 아니라 글도 명불허전임을 새삼 깨달으면서….

혹 휴가 때 볼만한 재밌는 만화책을 찾고 계시다면, 「십팔사략」을 강추합니다. 어쨌든 오등(吾等)은 한의사잖아요? (값 1만5000원)

안세영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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