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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세계와 관계 맺어야 해요”
한의학 미래 짊어질 젊은 연구자들 <17> / 남희선 (미국 뉴욕시립대 인류학 박사과정)
2014년 06월 27일 () 09:39:00 김춘호 기자 what@mjmedi.com

현대 한의학의 경계적 모호함에서 고민 시작

학문과 지식의 세계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에 눈 떠

 “한국에서 한의사로서 누릴 수 있는 안정된 삶을 등지고 인류학을 업으로 삼겠다는 결단을 내린 건 한의대에 한의사가 될 것을 바라보고 진학한 것이 아니라 무궁무진하고 다양한 연구 가능성에 매력을 느끼고 공부하려 했기 때문이죠. 또 한의학이 오직 한국에만 국한된 학문이라는 생각보다 외국에는 존재하기 않기에 스스로를 알리고 세계와 관계 맺어야 하는 학문이기에 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한의사로 인류학을 공부하기 위해 2013년 미국 뉴욕시립대 박사과정에 진학한 남희선 한의사(30). 그는 김용 세계은행(World Bank) 총재 역시 의사출신으로 인류학을 전공한 것을 예로 들며 한의사가 인류학에 관심을 두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 사람 중심의 학문 ‘한의학과 인류학’

2012년 상지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미국으로 간 남희선 한의사. 그는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발전시킨 비판적인 생각들과 세계적 차원의 건강불평등 문제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다양한 학문적 접근에 대해 고민한 끝에 인류학에 답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한의사로서 인류학을 연구하기 위해 미국 뉴욕시립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남희선 한의사.
“카프카는 타고난 의사가 지녀야 하는 자질에 대해 이야기 한 바 있는데 그것은 엄청난 양의 의학지식을 암기하는데 필요한 지적 능력도, 긴급한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순발력도 아닌 사람을 더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 대한 굶주림이라고 합니다.”

어느 학문이라도 사람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자세가 전제되지만 특히 인간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일일수록 전인적인 입장에서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접근이 핵심적이라는 데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의대에 입학하기 전부터 이런 시각을 갖고 있었기에 한의사로서의 행위가 진료실 안으로만 국한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단다. 더군다나 의대가 아닌 한의대에 진학했기에 의료와 사회라는 프레임 외에도 한의학이 현대 사회에서 위치하고 있는 독특한 맥락에서 다양하게 고민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고 한다.
고민의 첫 단추는 현대 한의학이 지닌 경계적 모호함에서 비롯됐다. 오늘날 과학적 근거를 축적해가고 있는 한의학은 이미 전통 지식과 최첨단 생명과학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다.

“한의학은 동아시아의 사상적 토대에서 출발해 지금은 서구 선진국에서도 적극적으로 의료체제에 편입하는 등 동서양의 가교로 작용하죠. 이는 한의학의 우수성이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사실 구체적인 연구현장에서 단순히 자긍심을 느끼기보다는 소위 ‘보편적’ 지식권력과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그가 말하는 복잡한 관계는 한의학을 과학, 정책, 경제성 등의 ‘보편적’ 지식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학문과 지식의 세계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이다. 그리고 거기에 눈을 뜬 것이다.

2006년, 예과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1년간의 휴학기간 동안 앙골라에서 현지 주민들과 같이 지내면서 지역보건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매우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왜 가까운 대륙이 아닌 아프리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프리카가 지닌 상징성 때문이에요. 기아, 사막화, 내전, 에이즈, 식민지배, 열강의 착취, 이 모든 것이 벌어지고 있는 곳, 미디어에 의해 과장되고 왜곡된 참상이 아닌 실상을 알고 머리로만 알고 눈으로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모든 감각으로 느끼고 싶었죠. 그러기 위해서는 그 곳에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NGO에서 6개월의 트레이닝을 마치고 8개월 가량 앙골라 현지에서 지역보건활동을 했다. 주로 에이즈 예방 캠페인 및 보건교육 등을 맡았지만 더 넓게는 일종의 마을 운동에 가까웠다.

 

■ 지식의 헤게머니 그리고 존엄성 회복

그가 어떤 인류학 연구를, 왜 하고자 하는 지는 그의 삶과 밀접하게 엮여 있다.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생긴 문제의식 그리고 책과 논문 등을 통해 접한 최신 연구동향이나 통계적 수치들이 실제 현장에서는 어떻게 펼쳐지는가에 대한 끈질긴 호기심이 인류학의 문턱까지 이끌어온 엔진이라면 또 다른 엔진은 휴학을 하고 국제개발 NGO에서 지역보건에 참여했던 경험이었다. 

앙골라 현지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복학 후에도 국내 의료인을 주축으로 한 국제보건 포럼에서 간사로 활동하며 개발과 보건에 대한 생각을 계속 발전시켰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품게 됐단다. 

“지식에는 위계가 있는 것인가? 한의학을 비롯한 비서양 학문 혹은 토착문화에 뿌리박은 지식들은 서양의 정통 학문에 의해서만 재해석되고 헤게머니적 학문의 기준에 의해 스스로를 재구성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이 정치, 경제, 사회적 권력 관계와 연결된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러한 관계들이 구체적인 지역사회 개발과 보건의 현장, 즉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지만 지식의 헤게머니에 관련된 연구는 한의학을 비롯한 서양에서 발생하지 않은 모든 학문들의 발전 양상과 관련될 수 있는 매우 근원적인 연구라고 느꼈다고 한다.

 “한의학을 통해 제가 더 능숙하게 개입할 수 있는 연구 지점이 부각될 것이므로 제 연구는 일차적으로 한의학과 관련된 연구가 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와 동시에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연구의 다른 축은 국제개발과 국제보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제공하는 것과 관련돼 있다.
한의사가 한의학의 현실과 맥락을 아는 상태에서 과학적인 연구를 기획하는 것이 더 성공적인 실험결과로 이어질 수 있듯이 내부 관점을 반영하는 것은 국제개발 및 보건사업의 성공에도 필수적인 요소다.

그가 현재 관심을 갖고 있는 인류학 연구지역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이들은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배를 받고 이후로는 북반구 국가들의 경제 원조를 받는 종속적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향후 목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인류학은 보편적 학문의 전지적 관점을 지양하고 당사자들의 관점을 중시하는 학문이에요. 국제개발과 의료원조 등의 외부적 영향으로 인해 건강과 질병 그리고 의료의 이해에 대한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현지연구를 수행하며 그들의 관점과 의견들을 대변하고 그들이 주체가 되는 역사를 쓰고 싶어요. 또 그런 시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그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도와줄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보다는 그들이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고 부당한 현실을 거부하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존엄성을 회복하는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그가 박사 공부를 시작한 지는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관심 분야의 연구에만 치중해 있었다. 하지만 첫 해에는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 중심으로 수업이 짜여 있어 좋아하는 과목을 들을 수 있는 자유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한의과 대학 6년 동안에 인류학은 물론 일반 사회과학 수업도 수강해 본 적 없어 고전 사회과학 이론부터 시작하여 현대 사상가들의 이론을 따라가려다 보니 역시 예상한대로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고생들은 한편으론 그가 기대하고 있었던 바다. 인류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해 본 적이 없는 만큼 제대로 이론적 기초를 닦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렵다는 첫 해를 마친 시점, 아직 얼마나 탄탄한 기초가 생겼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렇다고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박사 공부의 목표는 이론을 이용해서 본인의 독창적인 연구물을 생산해 내는 것이지 이론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즉 인류학의 핵심 논의들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의 독특한 경험과 관점들이 그것과 대화하도록 함으로써 양쪽에서 새로운 시각들을 끄집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김춘호 기자 what@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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