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문화적 층위의 ‘의학적 갈등’
상태바
수많은 문화적 층위의 ‘의학적 갈등’
  • 승인 2014.06.14 0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창운

정창운

mjmedi@http://


한의사 정창운의 ‘진화와 의학’ <10>


근거중심의 한방진료확립에 관심이 많은 초보 한의사
종교 서적이기는 하지만, 탈무드에는 의학적 갈등에 대한 잘 알려진 한 사례가 있다. 난산으로 인해 산모 혹은 태아 단 하나만을 구하여야 하는 경우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결과적으로 산모를 구하는 것이 낫다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아이는 다시 낳으면 되지만, 산모는 그럴 수 없다는 얘기다. 어떤 부분에서는 수긍이 갈 수도 있는 답이다. 반면, 가톨릭 문화권 시각에서 보자면, 이러한 견해는 전혀 납득할 수 없으며 세례 받지 않은 태아를 구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시될 수도 있다. 수많은 문화적 층위는 이 문제에 대한 복잡한 논의를 이끌어 내게 한다. 

의료현장에서는 더 복잡하다. 기독교적 서양 현대 사회에서 유대교 의사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 가족의 출산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단순한 의학적 소견과 판단에 의하여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반적인 삶에서도 이러한 윤리적 갈등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생명이 오가는 의료현장에 있어 이러한 윤리적 문제는 훨씬 첨예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누구의 생명을 구하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답이 제시될 수 있고, 그러한 주장들은 각각의 윤리적 기반을 통해 정당화 되겠지만, 또 다른 지평에 의해서 언제나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단 하나의 해답만이 내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출생의 문제(‘누구의 생명이 더 중요한가?’의 근인이 되는 ‘왜 이 출산은 어려운 상황이 되었는가?’)를 비롯한 모체와 태아의 갈등은 다양한 층차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애초 어머니와 태아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다양한 임신 중의 생리적 현상들의 기반이 되는 원리라 할 수 있다. 어머니는 이 태아와 함께, 앞으로 이미 성장 중인 다른 자손과 향후 번식에 따른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여야 하고, 태아는 일차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은 대단히 단순화 된 것이다. 이를테면 이미 출생한 형, 누나가 많을수록 태아가 사망하는 것이 이득이 될 개연성이 있겠으나, 태아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과 이들을 둘러싼 사회공동체적 환경이 여기에 어느 정도의 힘으로 개입하고 있는지 엄밀히 입증돼 있지는 않다. 진화론에서 언급되는 ‘이타적’ 행위들의 상당수는 이러한 문제들과 얽혀 있다.)

위 상황처럼 전통적인 혼인관계로 유지되는 가족에서 아버지의 경우, 어머니의 향후 임신, 출산 가능성과 양육을 위한 다른 자손들의 존재 등 생물학적 요인을 복잡하게 고려하게 될 것이며, 어머니의 경우에는 이러한 문제와 함께 자신의 생존 문제 역시도 심각하게 고려하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과는 유전자를 100% 공유하지만, 언제나 자손과는 50%만 공유하게 되기 때문이다.(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다태아의 경우에는 어떠한 변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던져볼 수 있다.) 이러한 생물학적 요인들은 윤리적 판단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익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신뢰의 문제까지 개입하면 더욱 내용이 복잡해진다. 번식에는 수많은 자원이 투자되지만, 정작 그것이 잘못된 대상에 대해서 이뤄지는 것이라면? 아버지는 이러한 사고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늘 의심하게 되며, 어머니와 태아는 필사적으로 아버지의 자손임을 입증하는데 노력(의식적인 것은 아니다)을 하게 될 것이다.

여성의 월경 현상의 조절(발현, 임신 중의 중단 그리고 회복 등)에서부터 조기 유산, 출산과 영아살해 등 번식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갈등은 이렇게 일종의 경제적인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진화의학적인 관점의 접근이다. 의학적 상황에서는 태반을 통해 이러한 갈등이 벌어지고 조절된다. 한정된 모체의 영양을 차지하기 위한 태아와 모체의 호르몬 분비를 통한 갈등은 잘 알려진 사례이며, 임신중독과 같이 드물지 않은 사례들은 바로 이 갈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모습을 보인다.

임신중독에서는 임신이 지속될수록 모체의 위험(사망률의 증가)은 높아지며, 태아는 덜한 위험(미성숙의 회피)을 맞이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이는 높은 혈압을 통해 태반에서의 영양 공급을 촉진하기 위한 과정으로 인해 벌어지는 하나의 결과이지만, 의학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는 아니다.

특정한 인센티브가 한 계(모체-태아)에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이고 있는, 일종의 ‘야구장의 비유(한두 사람이 야구 경기를 잘 보기 위해 일어서기 시작하면, 결국 모두가 일어서서 불편하게 경기를 관람하게 된다)’가 의료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동의보감」의 부인문(婦人門)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도덕적 관점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지만, 과학적 사실들은 이러한 ‘처참한 분석’을 지지하고 있다. 

계속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의학적으로 이러한 진화의학적 접근이 어떠한 치료법에 대한 결과를 보이지는 않지만, 질환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이 임신중독의 사례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외형은 질병에 대한 것이지만, 결국 자원을 둘러싼 분쟁이라는 경제적 이론의 틀로 치환되어 논의되는 바와 같이 진화의학은 풍부한 맥락을 통해 다양한 학문과 교류하는 창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결과물이 현상을 둘러싼 다양한 층차에서 만들어지고 논의되며, 이는 다시 새로운 문제들을 낳게 되며, 이들은 다시 진료 현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