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초 통해 접근… 「상한론」여행자들 위한 알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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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초 통해 접근… 「상한론」여행자들 위한 알찬 길잡이
  • 승인 2014.06.1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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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호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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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 「藥徵, 약의 징표」
한의사라면 누구나 「상한론」과 관련된 추억을 한두 가지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추억이라기보다는 탐험기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학부 시절 삼삼오오 모여 ‘한의학의 시원’을 찾아보겠노라고 한 줄 한 줄 「상한론」을 읽어본 기억이 있다. 이것이 탐험인 이유는 대부분 그 여정을 온전히 끝내지 못하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몇 번 도전에서 몇 번 실패했느냐 정도일까.

한의학 처방의 상당수가 「상한론」 혹은 「금궤요략」에서 기원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서적을 이해하는 것은 한의학의 정수를 ‘직지(直指)’하는 일이다. 하지만 「상한론」은 그 속살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낯선 표현들이 많이 등장하거니와 역대 의가들마다 의견이 분분해 이를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한의학의 많은 의학이론들이 「상한론」에서 영감을 얻어 생겨났지만, 그 난해함으로 인해 많은 이견과 논쟁이 생겨난 것을 보면, 오늘날의 한의사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吉益東洞 原著
김종오 編著
물고기숲 刊

역사 속에서 「상한론」에 대한 탐험은 크게 네 가지 경로로 진행되어 왔다. 첫째, 조문 자체에 주석을 달고 의미를 부여했던 여정들이다. 성무기의 「주해상한론」이나 진수원의 「상한론천주」 등이 대표적이다. 둘째, 처방을 중심으로 「상한론」을 이해하려던 시도들로써 손사막의 「천금요방」이나 서대춘의 「상한론류방」 등을 들 수 있다. 셋째, 병증을 통해 「상한론」의 맥락을 밝히려던 탐험들이다. 성무기의 「상한명리론」이나 도화의 「상한육서」 같은 책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넷째, 본초를 통해 「상한론」을 이해하려던 접근으로 가장 드문 경우이다. 추주의 「본경소증」과 요시마스 토도의 「약징」이 그러한 책이다.

최근 간행된 김종오 박사의 「藥徵, 약의징표」는 본초와 증상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상한론」을 탐험하자고 제안한다. 이 책은 요시마스 토도의 「약징」에 대한 번역서이자 주해서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상한론」이라는 ‘달’을 좇으며 기술되어 있다. 그간의 상한론 연구서들이 문헌에 침잠해 있거나 임상에 경도된 느낌이었다면, 이 책은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판본에 대한 이해와 문헌에 대한 통찰, 임상 경험이 적절하게 녹아들어 있다. 탁월한 임상가이면서도 문헌에 깊이 천착했던 요시마스 토도의 원작에 의사학을 전공하고 임상에 전념해온 김종오 박사의 고민이 더해진 결과다.

개인적으로 「상한론」이라는 난해한 텍스트를 ‘병리학 서적으로서의 상한론’과 ‘처방집으로서의 상한론’이라고 구분한 대목에서 단적으로 이 책의 노련함을 엿볼 수 있었다. 한의학 문헌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지식의 퇴적층을 이처럼 명료하게 표현하기 위한 필자의 탐험은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할 만하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자신의 여정에서 얻어진 현지 정보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두었다는 점이다. 마치 여기는 숙박비가 얼마고 저기는 교통편이 어떻고 하는 식의 지역정보를 방불케 한다. 물론 「상한론」에 무관심 했던 이들에게는 자칫 필자의 여정이 얼마나 화려했는지를 자랑하는 것처럼 어렵고 번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상한론」을 향한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더 없이 알찬 현지정보가 되어줄 것이다. 「약징」이라는 지도를 들고 「상한론」이라는 텍스트를 여행하며, 필자가 만났던 질문들과 그에 대한 대답들을 엿듣는 것은 설령 다른 경로로 탐험을 준비했더라도 그 여정의 피로를 줄여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값 7만5000원)

오준호 / 한국한의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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