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635] 韓蔘과 昆布, 약초에 얽힌 사연
상태바
[고의서산책 635] 韓蔘과 昆布, 약초에 얽힌 사연
  • 승인 2014.06.06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상우

안상우

mjmedi@http://


「先哲醫話」②
본문 가운데 다양한 이야기 거리가 많지만 흥미로운 사례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한다. “부인이 血塊가 있으면 비록 懷孕이 되어도 출산할 때 분만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 按語에서는 “이것은 일종의 橫骨이 협착하여 분만에 장애가 되는 경우로 수술하지 않으면 다스리기 어렵다”고 하였다.<後藤艮山> 아마도 ‘交骨不開難産’을 말한 것으로 보이는데, 임신 이전에 이미 산모의 하초에 어혈이 내재되어 원인이 되었다는 분석인 셈이다.
◇「선철의화」


또한 “두창에 日數대로 증후가 변하는 것은 그 이치가 상한병에 傳經하는 것과 동일한데, (두창 역시) 疫氣에 속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저자는 “隋唐시대 의서들이 모두 痘瘡이 역병에 속한다고 하였지만 宋元시대에 이르러 胎毒說이 제기되어 그 이치가 어두워졌다. 선생이 특별히 그 점을 밝힌 것이니 가히 卓見이라 할 만하다”라고 평하였다. <北山友松>

그런데 허준의 저술 「新纂辟瘟方」에 보면 “역질은 鬼厲의 기운이 섞여 어느 經이 동하는지 알 수 없다” 하였고 「의방유취」에서는 “상한과 傳變은 다르지 않으나 그 치법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를 섞어 사용한다”고 하였으니 즉, 전염병과 같은 열병의 치료에 삼음삼양 六經辨證에 따른 상한치법을 적용할 수 있지만 치료방법에 있어서는 다양한 변용을 구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서인의 기질 차이도 언급하고 있다. “西土人은 本邦人(일본인)에 비하여 장이 두텁고 위가 튼실하니(厚腸强胃) 가벼운 약재로 대적할 바가 아니다. 풍토와 인물이 서로 다른 것을 알아야만 한다.” 이에 대해 “서양에서 온 의원은 진찰을 마치면 곧바로 필요한 약방을 찾아서 병자에게 적어주고 직접 藥鋪에서 구입하여 복용토록 한다. 따라서 약품과 제량이 적정하며, 일본의원들이 약제분량을 줄이고 이득을 꾀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고 하였다.

경험처방의 임상적 효과에 대한 얘기도 있다. “복통에 여러 가지 약이 모두 효과가 없을 때 香蘇散에 청피와 생강을 가미하여 달여 먹이면 기발한 효과가 있다. 임신부의 大腹痛에 더욱 좋다”고 하였다. 주석에 말하길 “征韓役(임진왜란을 칭하는 듯)에 선인들이 이미 발명한 것인데, 세속의 의원들이 알아보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하였다. <和田東郭>

인삼 얘기도 빠트릴 수 없다. “韓參(한국산 인삼을 지칭)은 潤渴下氣하는 공효가 다른 약보다 과하다. 세간에서는 혹간 한삼이 불에 쪄서 약성을 잃었기에 野生만 못하다고 말하니 원통한 일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내가 대마도 사람에게 들으니 한삼은 잘 자란 것은 길이가 4∼5치나 되는데, 인삼을 물고 달리면 전혀 숨을 헐떡이지 않으며, 비록 연기에 휩싸여도 역시 숨이 막혀 죽지 않는다. 또 꺾꽂이 하는 사람에게 들으니 나팔꽃을 꺾은 다음, 한삼을 씹어 그 줄기에 붙여 매었더니 빨리 시들지 않았다고 한다”고 적으면서 저자도 이들의 말을 철석같이 신임하고 있다. 가히 조선인삼에 대한 전폭적인 경외감마저 전해진다. <永富獨嘯庵>

또 대개 海草는 梅氣를 막아주므로 京師의 妓院에서 흔히 靑海苔를 많이 먹는다. 「大和本草」에 말하길 楊梅瘡에 걸린 사람이 昆布를 먹으면 얼굴에 창이 돋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같은 증상이라고 평하였다. <福島愼獨軒> 영화 ‘力道山’을 보면 그의 후원자였던 야쿠자 두목이 다시마가 몸에 좋다며 가위로 잘라 먹는 장면이 나온다. 딱딱하게 굳으면 부러지니 적당히 굽히며 살아가라는 상징으로 넣었겠지만 실제 해초의 효능을 잘 인지하고 있었던 일본인들이 건강장수 식품으로 애용한 것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