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명의의안 219] 二十四味敗毒散案- 朴炳昆의 醫案(7)
상태바
[역대명의의안 219] 二十四味敗毒散案- 朴炳昆의 醫案(7)
  • 승인 2014.06.06 09: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남일

김남일

mjmedi@http://


내용: ① 天疱瘡病症 치험례: 이○○. 여자 57세. 1973년 7월 2일 필자의 진료소를 찾아와서 필자에게 진료를 원한 바 있다. 2년 전부터 現 病症이 발생되어 서울 시내 큰 종합병원에서 轉轉 치료를 받은 바 있고, 1972년 8월 某 병원에 약 1개월 간 입원가료 한 후에 퇴원을 하여 自家에서 계속 치료하였으나 別無差度라 한다. 각 병원에서 진단병명이 天疱瘡이라는 것만 공통된 사실이라 하였다. 주치증후로서 皮膚水疱, 口脣과 舌 潰瘍, 黃赤色의 膿疱를 형성하여, 물론 식사의 불편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동통으로 고생중이라 하였다. …外用藥을 써서도 別道理가 없으리라 생각되어 심사숙고 끝에 이 환자에게 二十四味敗毒散을 투여하기로 결심하고, 1973년 7월 2일 10일분, 같은 달 13일에 또 10일분, 7월 23일에 10일분과 그 후 100첩에 이르러 완치가 되어 참으로 신기한 일이라고 그가 거주하는 인근 동리 사람들도 감탄을 하고 있다.

② Behget 증후군의 치험례: 박○○. 여자 24세. 이 환자는 일본에서 출생한 재일동포로서 1970년도에 발병하여 일본 某 병원에서 Behget 씨병이라 진단이 내려졌다. 1974년 11월 2일 필자가 치료를 맡게 되어 初診한 바에 의하면 상술한 Behget 증후군이 구비되어 있으므로 二十四味敗毒散을 매일 1첩씩 水煎 1일 3회 分服케 하였음. 1개월 간 이곳 서울에서 치료해본 결과 순조롭게 호전되어 다시 5개월 분을 조제하여 일본 자택에서 계속 복용함으로써 완치된 사실을 아버지 되는 분이 금년 봄 필자에게 말해본 바가 있다. 이 병은 재발의 염려가 있어 장기간 치료를 要한 것이다. (「東洋醫學」제3권 제1호 통권 제6호, 동양의학연구소, 1977)

按語: 朴炳昆(1912-1989) 선생은 경희대 한의대 교수로 봉직하면서 동서의학연구소 제1연구실장, 한방병원 중풍센타실장, 부속시내한방병원원장 등을 역임한 인물로서 1971년에 40여년 간의 임상경험을 「漢方臨床四十年」이라는 책으로 엮어낸 바가 있다. 이 두 개의 醫案은 1977년 「東洋醫學」제3권 제1호에 ‘二十四味敗毒散으로 臨床應用에 卓效를 본 두 가지 皮膚病’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소개되어 있다. 당시 매독과 베제트 씨병의 치료에 대한 한의학계의 치료를 위한 노력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醫案일 것이다. 二十四味敗毒散의 구성과 용법에 대해 그는 당귀, 천궁, 생지황, 숙지황, 백작약, 우슬, 방풍, 형개, 백지, 방기, 인동, 길경, 강활, 독활, 백선피, 의이인, 연교, 목통, 진피, 감초, 황백, 지모, 치자, 황련 각 3.74g, 매첩을 土茯苓 150g 달인 물 1000cc에 煎至半하여 1일 3회 食遠分服한다고 하였다. 이 처방은 李常和 선생의 「辨證方藥正傳」의 增補方에 수재된 것으로서 주치는 楊梅瘡으로서 일명 梅毒이다. 朴炳昆 先生은 “天疱瘡은 楊梅瘡이 挾濕으로 인해 변한 것이며, Behget 증후군 역시 風, 濕, 熱毒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처방으로 「萬病回春」에 수록된 二十四味風流飮이 있는데, 「東醫寶鑑」에서는 三黃敗毒散이라 하였다고 하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