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의학 관점에서 본 모체와 태아 간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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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의학 관점에서 본 모체와 태아 간의 갈등
  • 승인 2014.05.3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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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운

정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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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정창운의 ‘진화와 의학’ <9>

 

근거중심의 한방진료확립에 관심이 많은 초보 한의사
중학교 생물 교과서를 들추다 보면, 의외로 잘 다루어지지는 않는 부분이지만, 생명체의 발생에 대해 소위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명제를 그림까지 그려가며 자세히 설명한 부분이 있다. 각 종간의 진화적 기원이 유사하며, 이들이 분화하여 나간다는 함의를 담고 있는 내용이지만 세부 사항에는 다소 오류가 있으나 전체적 의미, 각 종간의 진화적인 유사 기원과 발생과정의 과학적 가치는 충분히 확인되어 있는 부분이다. 이에 진화적 관점에서 발생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을 진화발생학이라 하여 최근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서 눈을 조금만 돌리면, 포유류에서 볼 수 있는 하나의 문제, 임신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고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산과, 부인과는 이미 의학의 주된 관심 분야 중 하나가 돼 있다. ‘우리는 대체로 어떠한 경우에 짝을 이루게 되는가? 남녀 사이에 이러한 과정 중에 발생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는 어떤 갈등을 만들어 내는가?’와 같은 문제들은 진화심리학과 같이 대중적으로도 그 양태에 대한 내용이 잘 알려져 가고 있으며, 이와 마찬가지의 관점에서, 모체와 태아 간의 갈등은 주요한 의학적 관심사가 될 수 있다.

도덕적 관점에서 보자면, 어머니는 자손에게 무한한 희생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으나, 어머니와 자손 간의 갈등은 남녀 간의 갈등만큼이나 매우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 진화적 지평에서의 관찰에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물론, 단순한 한 두가지 법칙만으로 환원하여 보기에는 사회 문화 경제적 층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요인이 개입하고 있어 결코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기에는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관점을 이해하고 있다면, 의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명확한 통찰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아살해나 임신우울증 등, 진화적 관점에서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은 도덕적으로도 일반적으로 매우 끔찍한 일로 생각이 되고 있지만, 남아선호사상 배경이 강한 국가, 경제적으로 곤란함을 겪는 계층의 여성, 미혼모 등에서는 그 비율이 더 높은 편이라는 것은 다양한 조사를 통해 알려져 있고, 그 이면에는 모체가 더 나은 생식 기회와 양육 기회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의료진은 이러한 경향과 비례하여 산모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조력을 제공해야 함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서 우리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게 된다. (다만, 과연 이것이 정말로 ‘옳은’ 일인지에 대해서는 윤리적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모체가 여러 요인으로 적절한 영양 섭취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일반적으로 전통적 사회에서는 흔함)에 태어난 자손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당뇨, 비만 등 대사성 질환에 이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으며, 우리는 다양한 대사, 내분비 질환이 사실은 생존의 극대화와 연관되어 있는 과정의 연장임을 파악할 수 있다. 즉, 태아 시기에 더 효율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발생상의 조절이 이뤄지며, 이에 영양의 효율적 축적을 위한 체내 환경이 만들어지게 돼 이것이 당장의 생존에는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인 생존의 관점에서는 비효율적이거나 해로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앞선 글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서 또다시 조절되게 되며, 질환에 대한 단순한 이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렇게 한 시점에서는 이득인 것이, 후기 생존 시에는 해악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 그리고 일반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그 역의 경우로 나타나는 것들도 충분히 상정해 볼 수 있다.(이를 테면 작은 키는 성 선택에서는 불리한 요인이 되지만, 영양 부족의 환경에서는 장기 생존에 이득이 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작은 키의 단점을 장수라는 이점을 통해 생식적 불리를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의학적으로 접근하는 경우에도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이 경우에도 유전자는 동일하여도 모체의 환경에 의하여 다양한 변이가 나타나게 된다)이 있으며, 그로 인해 질병현상의 표출이 있다 하여도 이것의 궁극적 득실을 단순하게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진화 의학의 난점이기도 하다.

이렇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풍요로운 사회적 환경이 이러한 질환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이미 인류는 생존을 걱정하던 과거에서부터 적절한 발생 후의 여러 요인들의 개입을 통해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유전 풀의 조절을 통해 더 적절한 형질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모체와 태아 어느 쪽 일방에 유리하게 작용하지만은 않으며, 결국 개체를 넘어선 한 종의 이익에 가장 크게 봉사하는 지점, 여러 질환에서 보이는 비용과 이득 간의 최적의 지점에서 타협이 나타나게 됨이 알려져 있다. 환경과 개체 간의 갈등보다 모체와 태아 간의 직접적 관계를 살펴보면 더욱 이러한 모습을 상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이해하여 냉엄한 자연을 ‘인간적인’ 목적에 봉사토록 하는 것이 의사의 임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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