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애와 NG튜브
상태바
시월애와 NG튜브
  • 승인 2014.05.22 09: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선행

이선행

mjmedi@http://


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

이 선 행
최초로 할리우드에 판권이 수출된 한국영화 시월애(時越愛·시간을 초월한 사랑)를 보면 1998년의 전지현은 이정재의 교통사고 장면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칩니다. 하지만 자초지종을 알게 된 2000년 이후의 전지현은 그 당시의 상황을 괴로워하면서 1998년의 이정재에게 교통사고 장소에 오지 말라고 간절하게 편지를 부치게 됩니다. 저도 그 당시에는 몰랐다가 나중에 절박성을 깨닫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근무 2일째. 직원식당에서 점심을 받자마자 스테이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XX 환자 비위관 삽입해주세요”

업무배분의 조정으로 첫날과 둘째날에 맡게 된 환자가 달랐습니다. 인계해주는 인턴은 밥 먹을 때마다 환자가 비위관을 제거하니까 여러번 꼽게 될 거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인턴은 굶어도 환자는 굶으면 안 됩니다. 식판을 식당에 내려놓고 환자에게 달려가서 비위관 삽입을 시도했습니다. tube에 윤활제를 충분히 발라주고 빼지 않은 쪽 콧구멍으로 살살 집어넣었습니다. 처음하는 일인데도 잘 들어갔습니다. 워낙 많이 끼워서인지 길이 나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tube의 끝이 위식도괄약근을 지났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주사기로 공기를 넣으면서 청진기로 위 안에서 bubble 소리가 나는지 체크하고 다시 점심을 먹으러 내려왔습니다.

“별로 어렵진 않군...”

하지만 문제는 술기의 난이도가 아니었습니다. 환자분이 시도 때도 없이 비위관을 빼버려서 많을 때는 하루에 5번이나 관을 끼웠습니다(이론적으로는 밥 먹기 직전과 한약 or 양약가루 먹기 직전 모두 tube를 뽑는 경우 최대 9번을 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아침 7시에 밥이 나오기 전에 뽑은 경우, self rounding을 돌아야 해서 바쁜 와중에도 관을 꼽아야 하니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다른 인턴들과 같이 식사를 받아도 따로 먹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보다 못한 간병인 분이 손을 bed에 묶어 놓은 이후에는 뽑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매번 꼽을 때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면서 원망의 눈초리로 저를 쳐다보는 것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병원에 있는 것을 너무 고통스러워했습니다. 하지만 밥을 먹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시행해야만 했습니다.
“끼우는 것이 고통스러우니까 한번 꼽으면 빼지 마시고 계속 끼워놓으세요”라고 알려드려도 거의 매일 관을 빼냈습니다. 아마 술기+액팅으로 그 당시 가장 많이 방문했던 환자였을 겁니다. 간병인분도 매번 같은 일로 부르기 미안해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액팅으로 전침이 있었는데 전침을 하러 갈 때마다 힘없이 쓰러져 있고, 소리내어 울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이후 증세가 호전이 되어 VFSS 연하검사 후 비위관을 제거하고 연식부터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NG tube를 꼽지 않게 되자 평온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재활의학과로 전과한 이후 3개월인가 지나서 보게 되었는데, 얼굴에 살도 붙어서인지 10년은 젊어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콧줄을 꼽고 있던 상황이 마치 지옥에 있었던 느낌이었나 보다…’

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그 후에 만난 다른 NG tube 환자들은 그렇게까지 심하게 제거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워낙 첫 환자의 impact가 커서 굉장히 고통이 큰 술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 2년이 지나서, 저는 개인적인 일로 복강경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근무하고 있는 병원에서 받아서 절반 가격에 받게 되었습니다. 병원 근무의 이득 중 하나입니다). 수술 시 장이 움직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수술 전날에 완하제로 장을 모두 비워내고 관장까지 받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초전에 불과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난 뒤, 물을 몇 종지나 토해냈습니다(까만 봉지에 뱉어서 양이 얼마나 되는 지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찾아든 것은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던 공복감이었습니다. 무엇이든 입으로 가기만 하면 씹어 삼킬 기세였습니다. 하지만, 수술 직후라 여전히 금식상태였으며, 저는 밥을 먹을 수 있을 때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아직 젊어서인지 당일 오후에 gas 배출이 되었고, 간호사에게 알렸으나 주치의는 너무 빠르다고 금식을 유지시켰습니다. 미칠 노릇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힘이 들었습니다. 물도 마실 수 없는 상황이라 더욱 절박했습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간호사에게 이야기하니, 물 정도는 조금씩 마셔도 된다고 해서 미지근한 물을 조금씩 마셨습니다. 다음 날에는 까만 물설사를 보았는데도 여전히 금식이 유지되었습니다. 그때 느낌은 이성이 조금만 마비되어도 뭐라도 찾아서 먹을 것이란 느낌이었습니다.

동시에 인턴으로 들어와서 처음 만난 NG tube 환자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틀만 원하는 대로 먹지 못해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1달 이상 입으로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격하게 공감이 되었습니다.

만약 내게 콧줄이 있다면 빼버리고 입으로 먹게 해달라고 항의하고 싶은 느낌이었습니다. 경구 식사 후에 인자하고 젊어진 얼굴을 되찾은 것도 동시에 이해가 되었습니다. 식사를 하게 된 이후부터는 지옥에서 돌아온, 다시 태어난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