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의계엔 나부끼는 깃발보다 내실 있는 정책 제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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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의계엔 나부끼는 깃발보다 내실 있는 정책 제언이 필요하다"
  • 승인 2014.05.2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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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욱

이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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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진욱 참의료실천연합회 회장

과거 정부 등 유관기관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한의계에게 도움이 될 정책들을 집행해온 바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당당한 주체로서 이러한 정책을 소화하여 성장동력으로 삼았어야 할 한의계는 언제나 준비가 부족했고, 이를 감당할 실력을 기르지 못해, 결과적으로 어설픈 결과물,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는 결론만을 반복해왔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의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려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 내실 없던 대표적인 정책 - 한의약 육성안
2004년 한의약육성법이 제정되고 2005년 1차 한의약육성발전안(2006~2010년) 기획안이 발표되었을 때 한의사들은 발전하는 현대한의약계의 미래를 꿈꾸었다. 그런데 1차 안이 시행되고 나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한의약계는 오히려 쇠퇴하게 되었다. 현재, 2차 육성안이 진행 중에 있지만, 뚜렷한 방향이나 중간 결과물이 보이는 것 같지는 않다. 과연 2차 육성안은 1차 사업의 결과를 냉정히 평가하고 기획되었던 것일까.

■ 한의약육성법 10년
2013년 11월 1일 국정감사 기간에 발표된 ‘한의약육성법 도입 10년 정책 평가 국정감사 자료집(이목희, 최동익 의원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의약육성안 시행 후 한방산업은 외형적으로 커진 것으로 정부와 언론을 통해 알려져 있으나 한방산업의 가장 기초가 되어온 한의약 의료서비스는 오히려 퇴보하였다. 이는 2003년 한의약육성법이 제정되고 시행되는 시점에 한의약계에서 꾸준히 제기했던 문제점처럼 한의약육성안을 통해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건강식품 분야에서 ‘한방’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산업이 활성화된 것으로 이것이 한의약육성법에서 정의한 ‘한의약’과는 무관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의약육성안에 의하여 지원을 받은 ‘생약제제, 천연물신약’은 그 취지와는 전혀 달리 한의약에서의 활용을 막고 오히려 한의약계가 아닌 곳에서 활용되어 직능갈등을 일으키고 있으며, 한약제제 분야는 오히려 쇠퇴하여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에서 한의약을 유일하게 활용하고 있는 한방의료서비스 분야는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 왜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것일까?
한의약육성안이 한의약 발전에 다양한 자극을 통해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최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오히려 참담한 결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여러 각도에서 반성해 볼 수 있다.

첫째, 한의약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근본적인 제도와 법령상의 문제 해결을 간과하였기 때문이다. 한약제제를 건강보험에 등재시키고 싶어도 시스템이 없다. 한약제제를 신약으로 세계에 수출하고 싶어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한약제제 허가 고시와 행정 관행 때문에 한약제제로의 신약 개발은 요원한 상태이다. 제도와 법령의 부재는 한의약계의 요구가 없어서가 아니다. 정부의 갈등 조정과 중재의 역할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기득권으로 힘이 기울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부분을 간과한 채 육성안에 따른 사업 집행은 결과적으로 타 산업계의 이권챙기기의 제물이 되어버렸다.
둘째, 정책을 시행할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의약육성안을 시행할 연구 인력과 교원, 유능한 행정인력의 확보가 거의 없었다. 또한, 지속적인 정책 시행을 보장할 수 있는 인력확보를 위한 선진 교육이 전무했다. 정책은 사람이 시행하는 것이다. 구호와 계획만 있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1,2차 한의약육성안 10년이 시행되었으나 한의계의 부족한 인프라는 여전히 미래를 불투명하게 그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한의계 내부에서는 ‘학문’이 실종되었다는 비판만 난무했지 아무도 이러한 ‘학문’을 세우는데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전략 없는 성과 과시형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재화와 이를 실행할 인력이 한정되어 있다면, 그에 맞게 전략을 세우고 좁은 문을 열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그런데 한의약육성안이 다루고 있는 영역은 주요 의약산업이 아닌 식품과 화장품 산업까지 커버하고 있다. 천연물신약 산업에만도 9000여억원의 개발비와 국민건강보험급여가 18조원이 들어가서 이 산업을 키우지 않았던가? 이러한 모호한 집행 영역을 결국 갈등이 없는 분야인 식품과 화장품 산업의 발전으로만 사용되어 결과적으로는 기존의 한의약 영역의 보완대체 상품만 만들어 내어 한의약계를 약화시키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물은 언제나 저항이 적은 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인데, 무조건 집행하면 잘 될 것이라는 아마추어리즘과 팡글로스 박사식 낙관주의가 한의계에 팽배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한의약 육성안 실패의 교훈

■ 제도와 법령상의 문제해결 간과
■ 정책시행 인프라 구축 미비
■ 성과 과시형 정책

 

 

 

■ 섣부른 정책 구호는 이제 그만
한의약육성안 외에도 한의계에는 이미 섣부른 정책 논의로 큰 갈등만 양산한 채 많은 현안의 본질을 해결하지 못하고 구호만 난무했던 정책 제안이 다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의약분업과 첩약의보이다. ‘시행하면 좋을 것이다. 시행하자’만 있었을 뿐 시행방안, 그에 따른 장단점에 대한 면밀한 평가, 정책을 시행하기까지 생겨날 수 있는 현상에 대한 시뮬레이션 검토는 부재했다. 이러한 제도가 시행되면 그간 한의계의 현안이 일거에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비합리적 논리만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 하는 논거였다. 

그런데 얼마 전, 의료통합의 화두를 두고 한의계 내에서 토론회가 있었다고 한다. 발전할 수 있는 내부 동력이 약화되고, 경영이 힘든 한의약계의 돌파구로 의료통합을 화두로 내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한의약계의 현황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잘못된 상태에서 나온 정책 구호일 뿐이다. 한의약계의 발전할 내부 동력은 인프라 구축이라는 기본 토대를 다져나가는 데에서 시작된다. 일선 한의원의 경영이 악화되는 것은 한의약 기술의 진보에 대한 홍보, 진단과 치료의 도구의 확대, 한의약계 내부의 진단과 치료 능력 고양을 필두로 돌파가 우선적으로 필요한데,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하려 하지 않은 채 엉뚱하게 의료통합을 끌어오는 모습에서 지난 20년 간의 실패가 오버랩 되는 것은 참실련만의 시각은 아닐 것이다.

의료통합은 단순히 한의약계의 경영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쉽게 언급할 만한 주제가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 의료와 한의약학 전반을 고려하고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중지를 모아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경영 상태 개선의 논리나, 이슈를 선점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 특정 이념추구세력의 과거 행적 지우기식, 개과천선식 행위로 가벼이 논의되어서는 안 된다.

■ 미래는 과거로부터의 교훈에서
과거의 뼈아픈 실패에서 알 수 있듯, 한의계 발전에 구호만 외치는 것은 더는 소용이 없음은 자명하다. 더 이상 광장에 부대끼는 깃발만 앞세워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녕 필요한 것은 냉철하게 논의되고 기초부터 쌓아올려 나간 정책의 제언과 충실한 집행이다. 정책연구에 구호만 있고, 각론과 충분한 시뮬레이션이 부족하다면 돈만 허비한 정책연구일 뿐이다. 한의약계가 구태를 벗고 미래를 위해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제 새로 준비할 3차 한의약육성안에 광범위하고 전략 없이 구호로만 그치는 한의약 발전이 아닌 실질적 미래를 담을 수 있는 각론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다.

과거에 그러했고, 지금도 일각에서 그러하고 있는 것처럼 순수한 학생들을 선동하며, 막무가내식으로 떼를 써가며 무리한 정책을 실행하려 드는 것은 정말이지 그만 두지 않으면 안될, 부끄러운 일이다.

이 진 욱/ 참의료실천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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