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633] 성인식의 단골 메뉴, 홍역과 두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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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633] 성인식의 단골 메뉴, 홍역과 두창
  • 승인 2014.05.2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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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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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痘門神方」
요즘 대학가 학생들 사이에 홍역이 번지고 있어 방역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 한다. 사라진 줄로만 여겼던 이 병은 아직도 막강한 전염력을 가지고 있으며, 상기도와 인후점막에 염증을 일으키고 온몸에 열꽃이 돋아나는 특징적인 소견을 갖고 있어 쉽게 감별이 된다. 하지만 일단 발병이 되면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고 영유아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조선시대에는 전 기간에 걸쳐 이 병에 걸리지 않고선 성인이 되기 어려웠고 설혹 요행이 면한다 할지라도 자라나서 제대로 된 어른 대접 받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사람은 태어나 언젠가 한번은 홍역을 앓아야만 한다고 일컬어졌으며, 오죽하면 무덤 속에 들어가서라도 홍역을 치러야만 한다는 우스개가 전해졌겠는가? 그만큼 인류 역사에 장기간 인간의 삶을 지배했던 질병이다.
◇「두문신방」

며칠 전 자신도 몹쓸 병에 걸려 1년여에 걸쳐 병원신세를 지며 고생해야 했던 지인이 오랜만에 전화를 하였다. 물론 안부나 물으며 격조했던 시간을 되돌려 그간에 밀렸던 회포나 풀어보고 싶은 심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구실은 서재 속에서 책 더미 사이에 파묻혀 지냈던 의약서 한권을 발견했단다. 제대로 모양새도 갖추지 못한 채 종이끈으로 질끈 묶어 맨 모습의 몇 장 되지 않는 간단한 필사본이다. 표지는 파랗게 쪽물을 들여 치장한 걸 보니 애초에는 그래도 제법 공들여 적은 모양이나 지금은 세월의 풍상을 겪으면서 여기저기 헐고 망가진 모습으로 남았다.

표지에 적힌 이름은 「痘門神方」, 두께도 얇고 몇 장 되지 않지만 부록으로 紅疹에 대한 治方이 덧붙여져 있다. 겉표지에는 서제와 함께 ‘黑鷄靑牝牛赤狗始造’라 적혀 있다. 이를 간지로 풀어보면 계유년, 을축월, 병술일에 처음 작성하기 시작했다는 셈이다. 년기를 이런 식으로 밝혀놓았기에 세월이 오래 흐르면 정확한 연대를 추정하기 어려워지게 되는데, 여러 가지 상태로 보아 아마도 1873년이나 1933년경에 작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분량이 많지 않으니 작성을 마친 것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진 않으리라.

본문 첫머리에는 ‘痘疫方’이란 소제목이 따로 붙어 있다. 목차나 서발 등은 애초에 계획이 없었던 듯하고 ‘痘疫方’이란 타이틀 아래 初熱三朝로부터 곧바로 본문이 시작하고 있다. 이어 出痘三朝, 起脹三朝, 貫膿三朝, 收靨三朝로 이어지며, 예의 「두창경험방」에 등장하는 傳變 순서를 따라 조문별로 간단하게 기술되어 있다.

허준의「두창집요」에서부터 명약으로 강조되어온 ‘猪尾膏’에 대해서는 채취법과 복용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나서 그 아래 “이 약은 기운을 흩어지게 하는 재료(散氣之材)이니 허약한 사람에겐 쓰지 말거나 많이 쓰지 않도록 하라”는 경고문이 달려 있어 경험지식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단순히 전습에만 얽매인 것이 아니라 당대에 습득된 새로운 지식이 보강되고 있음을 지켜볼 수 있다.

이어 痘後雜症에서 두창에 병발하여 생기는 다양한 질병증상들이 열거되어 있다. 내용상 기존의 창진 방역서와 대별되는 큰 특점은 없으나 전통의 두창과 홍진 치료법을 다루고 있어 전통적인 전염병 대책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엊그제가 성년의 날이라 여기저기 성인이 되는 대학생들이 축하모임을 벌였을 터인데, 갖가지 반가운 선물보다 예방접종을 권해야할 처지가 되었으니 안쓰러운 심정이 든다. 하지만 매서운 홍역을 이겨내야만 명실상부한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전통시대 통과의례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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